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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11.23 전 재산 털어서 가족과 세계여행
언젠가 뉴스에 서울시청 공무원이 휴직을 하고 전세금을 빼서 가족과 함께 세계여행을 갔다는 기사를 보았습니다. 그 당시에 대단하다고 생각은 했지만, 역시나 갔다와도 비빌 언덕이 있기에 가능하다고 그냥 넘겼습니다.

근데 아래글을 보니 정말 모든걸 걸고 가나봅니다..존경을 표하고.. 정말 저도 결정할 그날만 남았나봅니다..

아래글은 http://by0211.x-y.net/ 의 안젤로 님이 쓰신글입니다... 제 생각과 참 맞는 분인것 같아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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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학교 교실에 새뜻하게 급훈이 걸려있는 걸 보았다. ‘꿈꾸지 않으면 사는 게 아니다.’ 반 아이들에게 물어보니 공부를 하든, 운동을 하든, 점심을 먹는 그 순간에도 자신의 꿈을 되새기며 학교생활을 해나가라는 담임교사의 좌우명이라고 한다.


돌이켜 보니 20여 년 전 고등학교 시절, 우리 반 급훈도 그와 비슷한 ‘Boys be Ambitious!’였다. 지금 생각하면 식상하고 유치하기 그지없지만, 그땐 하루에도 몇 번씩 고개 들어 올려다보며 되뇌곤 했다. 열심히 공부해서 반드시 내 꿈을 이룰 것이라 다짐하며 하루하루를 성실히 보냈다.

그러나 지금, 열심히 공부했다는 기억은 또렷한데, 반드시 이루고야 말겠다고 다짐했던 그때의 꿈이 뭐였는지는 가물가물하다. 과학자? 대학 교수? 아니면 사업가? 교사? 아무리 기억해보려 해도 쉬이 떠오르지 않는다. 학창시절 밤낮으로 책과 씨름하면서, 또 사회생활을 해나가면서 정작 꿈은 시나브로 잊어버린 것이다.

내년이면 나이 마흔. 대학을 졸업해 취직하고, 서른 즈음에 결혼한 후 단 한 번도 내 나이를 구태여 헤아려 본 적이 없다. 결혼 즈음 아내가 나보다 연상인 까닭에 주변에서 나이에 관한 얘기를 종종 했던 걸 제외하면, 나이는 물론 올해가 무슨 띠 해인지도 모른 채 보냈다. 동문회에 나가 선후배 따질 일도 없는데, 살면서 별 의미가 없다고 여긴 탓이다.

공자는 마흔을 두고, 일찍이 세상의 번다한 일에 정신을 빼앗기지 않아 판단이 흐려지는 법이 없는 나이, 곧, 불혹(不惑)이랬다. 요새는 마흔이나 40보다도 더 흔한 나이 표현이 됐다지만, 호사가들의 말장난쯤으로 여겼다. 누구는 또 인생을 돌아보게 되는 때이고, 삶을 책임질 나이이며, 요즘 들어서는 재테크와 성공에 베팅하는 마지막 기회라고도 호들갑 떨지만, 모두 다 남들 얘기로 치부했다. 나이 마흔이 별 건가.

그러던 지난 5월 어느 날, 대학 시절 ‘절친’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그 전화는 내게 나이와 삶을 순간 되돌아보게 한 계기이자 일대사건이었다. 전화를 끊고 나서 한참 동안을 멍하니 앉아있었고, 그 날 저녁엔 새삼스레 마흔을 되뇌며 술 몇 병을 연거푸 비웠다.

너무나 행복한 목소리로 출국 인사차 전화한 거라고 했다. 회사에서 출장가게 된 건지 물었더니, 다니던 회사에 사표를 냈고, 아내와 초등학교 3학년인 아들 녀석을 데리고 세계 일주를 떠난다고 했다. 대략 1년 남짓한 여정이 될 것이고, 여행 경비를 위해 퇴직금만으로는 부족해 집까지 내놨다고 했다.

멀쩡하게 학교 잘 다니던 아이는 어떻게 하고, 또 돌아와서는 집도, 직장도 없이 어떻게 생활할 거냐고 따지듯 물었다. 근심과 걱정이 가득 담긴 질문이었지만, 답변은 어린 아이마냥 천진난만했다. “그때 가서 고민하면 되지, 뭐. 지금 고민한다고 해서 뾰족한 수가 있는 것도 아니고. 가족과 여행계획 짜는데도 정신없는데 1년 후의 고민을 미리 할 필요는 없잖아.”

“한두 살 먹은 얘도 아니고, 너 제대로 미쳤구나.” 전화를 끊는 순간, 하도 답답해서 나도 모르게 악담(?)이 튀어나왔지만, 그는 여전히 싱글벙글하며 여행 중에 혹 여유가 생기면 전화할 테니까 늦은 밤이라고 투덜대지는 마라며 작별 인사를 했다.

그 후 벌써 6개월이 지났고, 지난 8월 포르투갈과 에스파냐를 여행 중이라는 전화를 받았으니, 아마도 지금은 유럽을 벗어나 적도 넘어 아프리카 어딘가를 돌아다니고 있을 것이다. ‘한심한 녀석’이라고 나무라긴 했어도, 지금 나는 달력을 수시로 쳐다보며 그와 가족이 지금 어디쯤 여행하고 있을지 궁금해 하곤 한다. 처음엔 걱정스러운 마음 때문이었지만, 지금은 부러운 마음에 달력을 만지작거리고 있는 것이다.

아닌 게 아니라 대학 시절 그의 꿈은 ‘세계 일주’였다. 돌이켜 생각하니, 철부지 아이들이 나중에 커서 대통령이 되고 싶다고 말한 것만큼이나 나와 친구들은 황당해했지만, 그는 자못 진지했다. 무슨 철학자라도 되는 양, ‘어차피 한 번 사는 인생, 죽기 전 꿈은 이뤘다고 말할 수 있도록 살겠다’고 잘라 말했던 걸 기억한다.

어쨌건 그는 각오했던 ‘죽기 전’보다 훨씬 더 일찍 꿈을 이루게 됐다. 그의 아내와 아이 역시 비록 바란 건 아닐지라도 꿈만큼 값진 경험을 얻게 될 것이고, 돌아와 다시 일상생활을 하게 될 때 그 어떤 것보다 귀중한 재산이 되어 삶을 풍요롭게 해 줄 것이다.

말만 들어도 가슴 벅찬 세계 일주. 모든 꿈이 대개 그렇듯, 기실 그것을 이루기 위해서는 시간과 돈과 지식보다도 남다른 용기가 필요하다. 마흔을 코앞에 두고, 나이듦이란 어쩌면 용기를 잃어가는 과정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무모한’ 그와 ‘초라한’ 나. 지금껏 누구를 이토록 부러워해본 적이 없다.

철딱서니 없게도 나이 마흔에 다시 ‘꿈’을 꾼다. ‘꿈꾸지 않으면 사는 게 아니다’는 급훈은 입시를 앞둔 어린 학생들보다 바쁜 삶에 허덕이는 기성세대에게 더 어울리는 말이다. 학창시절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던 ‘네 꿈이 뭐냐’는 질문을 대학 졸업 후엔 받아본 기억이 없다. 하물며 마흔을 앞둔 지금, 꿈 이야기를 하면 철없다며 손가락질 받기 십상이다.

물론, 지금 난 행복하다. 고마운 아내와 듬직한 아들, 예쁜 딸이 늘 곁에 있고, 경제적으로 넉넉하진 않지만 그렇다고 쪼들리지도 않는다. 비록 아들이 아토피를 앓고 있지만, 그런 까닭에 외려 식탁이 간소해졌고 가족 모두가 꾸준한 운동을 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시쳇말로 ‘대한민국 표준 가정’으로 생각하며 늘 감사하게 생활하고 있다.

그런데, 안락한 행복감은 삶의 변화를 두려워하고 그대로 안주하게 만드는 것 같다. 이른바 ‘중년의 보수성’은 이렇게 시작되는 것 아닐까 싶기도 하다. 모두가 행복해지기 위해서 산다지만, 지금 나의 ‘행복’이 어렸을 적 나의 ‘꿈’은 아니었을 게다. 순간순간 최선을 다하며 열심히 살았고 불행하다고 여겨본 적 단 한 번도 없지만,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지는 미처 생각지 못했다. 그렇게 어느덧 마흔을 맞은 것이다.

누군가 말했다. 살면서 가장 허망할 때는 열심히 노력했는데도 꿈을 못 이뤘을 때가 아니라, 피땀 흘려 이룬 꿈이 정작 자기가 바라는 게 아니었다는 걸 느꼈을 때라고. 귀 너머로 흘려들었던 이 말이 이제야 가슴에 꽂힌다. 그의 전화 한 통이 잊어버린 나의 꿈을 일깨워준 것이다.

지금 나는 새로운 꿈을 꾸고 있다. 정확히 말하자면 꿈 꿀 용기를 되찾았다. 다른 이들은 모두 늦었다고, 또 남우세스럽다고 할지도 모르지만, 괘념치 않을 배포도 생겼다. 혼자 속으로 간직해야지, 꿈을 남들에게 말하면 안 된다고 하니 여기에 적진 않겠다. 하나 분명한 건 늦깎이 마흔에 꿈과 함께 새 삶이 시작된다는 거다. 가슴 설레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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