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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9.13 밥 대신 포도 드시는 할머니

어젯밤이었습니다.. 일요일 밤이네요..

일상적이라면 다가오는 월요일을 걱정하면서 일찍이 잠을 청하거나, 아니면 짧게만 느껴지는 주말을 좀더 느끼기 위해서 티비를 보던가, 책을 보던가 할 시간입니다..

그 시간에 오래만에 다들 바빠서 얼굴 보기가 힘든 친구들을 만나고 들어가는 길에 가로등 앞에서 할머니가 포도송이를 들고 맛나게 드시고 계시더군요..

술도 한잔하고,  과일 생각도 나서 할머니 앞에 앉았습니다..

"할머니 포도 얼마씩 해요 ?"

"그냥 떨이니까 만원에 가져가시구려.."

그말을 듣고나서 포도를 보니 멀쩡한게 몇개 없더라구요.. 물르고, 터지고, 포도를 감싼 하얀 종이가 포도물에 물들어서 찐듯거리고.. 도저히 살수가 없더라구요..

그래도 미안해서 옆에 쌓아놓은 감자를 쳐다보았습니다..

" 이건 얼마씩 해요 ?"

" 2천원에 가져가요..."

그리고나서 또 살펴보니 할머니가 도대체 어디서 물건을 가져오는것일까 의심이 갈정도로 상태가 좋지를 않았습니다.. 그래도 그냥 일어나면 마음이 그런지라서.. 그거라도 사들고 일어나려고 했습니다.

"이거 주세요...여기 2천원이요 ~"

그러자 할머니가 감자를 검정 봉다리에 넣더니,

"어차피 이거 오늘 지나면 못팔거 같아..."   하시면서 포도 한송이를 집어 넣더군요..

그러면서..

이 과일이 사실은 가락시장에서 불량품 받은거 사던지 받아오던지 하는거랍니다. 그러니 품질에 문제가 있을수밖에 없다고 하더라구요..

점심도 못먹고 저녁도 굶어서 그냥 포도를 드시고 계신거라고...

3,500원이면 앞에 있는 가게에서 해장국을 먹을수 있는데, 하루종일  판게 만원이 안된다고 하더군요..

내가 왜 여기서 할머니하고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는가 하면서 동시에 난 오늘 저녁 뭘 먹고 어떻게 놀다 왔는지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밤이었지만 가로등앞에서 확실히 보았습니다 ..  인생을 정말 힘들게 살아오신 주름살의 두께를 말입니다..

워낙 현금을 안가지고 다녔지만, 골프내기 하려고 현금을 좀 찾은게 있어서... 주섬주섬 꺼내서

"할머니.. 이건 거봉이라서 좀 비싼거네요...너무 싸게 파신것 같아요... "

그리고는 2만원을 드렸습니다...  "이제 식사하시고 들어가세요.. "

포도를 들고 집으로 들어가는길에.. 한송이를 꺼내들고는 씻지도 않은것일텐데 그냥 먹었습니다..

누군가에게는 한끼 식사고 누군가에게는 후식이 되는 이 볼품없는 포도한알이 씁쓸한 마음을 들게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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