꾸밈과 진실 (알라스카 생활_1)
작은것을 사랑하는 나 2009. 3. 1. 14:04 |가끔은 글을 쓰기에 앞서 이런생각을 합니다.. 이 글을 소수나마 볼수 있겠구나.. 그러니까 약간은 재미성을 넣어야 겠구나.. 하는생각요... 그래서 제 진실된 이야기에 아니면 진실된 생각에 약간씩의 허구가 들어가기도 하는거 같습니다..
그러나 이건 여자들한테 군대 이야기 하는거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듣는 여자는 하나도 재미없게 생각하는데 정작 본인은 군대에서 자기 생활을 너무나도 화려하게 장식한다는거죠.. 남자분들 경험해보셨겠지만.. 휴가전날 군복을 엄청나게 다림질하고.. 전투화를 광이 나도록 손질하고.. 몰래 사들도 들오온 사제팬티를 입고 나름 뿌듯하게 휴가를 나갑니다.. 모든사람이 자신을 쳐다보는듯한 그런 느낌을 받죠..
그러나 실제 우리가 제대하고 사회인으로서 보는 군인은 어떠합니까.. 그냥 군인입니다.. 줄세워 옷입고 광나는 전투화를 신은 멋있는 군인이 아니라.. 그냥 힘들게 군생활 하는 군인일뿐입니다. 이게 아마도 꾸밈과 진실이 아닐까 합니다..
제가 아무리 여기서 제 인생을 꾸미어 본들 제 진실은 진실된 모습은 꾸미어 지지 않습니다.. 제 인생의 발자취를 남기기 위해서 쓰기 시작한 블로그입니다.. 단지 남들에게 공개를 하고 발행을 하는 이유는 나란 사람이 이렇게 살고 있고, 이런 고민을 가지고 있으니 혹여나 공감이 가시는 분들은 같이 한번 생을 생각해보자는 차원입니다..
어느 순간에 자기 자신을 부끄러워하고 숨긴적이 있는지 한번 생각해 봐주세요.. 저요.. 저는 부끄럽게도 자주 저 자신을 속이고 부끄러워 한답니다. 저란 작품은 누구의 작품도 아닌.. 물론 형체는 부모님의 힘을 빌렸지만.. 그 이후의 작품은 저 자신의 몫입니다.. 자기 자신이 얼마나 아끼고 잘 다루어 가느냐에 따라서 사랑받을수 있는 작품으로 거듭날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런 이야기 누구나 할수 있답니다. 실제로 그럴수 있는가가 문제입니다. 제가 처한상황, 하는일, 외모, 경제력 등등 한번도 자기 자신에 대해서 부끄러워 한적이 없다면 아마도.. 사이보그가 아닐까합니다.. 잠깐 내얘기 들어볼래..^^
내가 처한상황~~ 난 나이가 30중반인가.. 아직 결혼은 안했고.. 인원수로 보면 대기업이지만 매출로 보면 아직은 중견기업에 근무를 하고 있지.. 나름 내 성격은 자유방임주의라고 생각을 해.. 30초반에는 그냥 생각만으로 모든것을 행동으로 실천으로 옮겼어.. 실제로 그래서 미국내 오지라는 알라스카 에서 2년간 생활을 했고, 지금 솔직히 그 2년이 내 생애 마지막까지 잊혀지지 않을 시간이 될거야.. 만일 그 당시 생각만으로 멈추어 버리고 직장생활을 했다면 어찌되었을까.. 우린 이걸 If 심리학이라고 하지.. 근데 아마도 돈 얼마 더 벌었을테고.. 결혼을 했을수도 있겠고.. 지금에서까지 그때 가지 못한 알라스카를 그리워 하고있을수도 있겠지.. 뭐가 더 좋은 것일지는 각자의 판단이야.. 난 절대적으로 전자를 택하고 있어... 2년간의 나의 생활.. 30년간의 내 마인드와 생활을 바꾸기에 충분한 나날들이었어.. 알라스카의 겨울은 춥고.. 어두워... 그리고 겨울은 볼것도 없고.. 그러다보니 술들을 많이 먹지.. 알콜릭도 많이들 있고.. 그래서 난 2년간의 겨울은 활기찬곳으로 나아갔지.. 첫해 겨울은 캐나다 밴쿠버에서 지냈고.. 두번째 겨울은 라스베가스에서 지냈지..
누군가는 팔자좋은 소리라고 할수 있겠지.. 내 얘기 더 들어볼래 ?.. 나 떠날때가 직장생활 1년차 였어.. 통장에 보니.. 1,000만원 정도 있고.. 월급통장에 한 500 있던거 같아.. 1,000만원으로 정기예금에 넣어놓고.. 500만원만 들고 떠났어.. 비행기 값 그 당시 앵커리지 편도가 한 70만원이었는데.. 형이 내주었어.. 그리고 바로 학비를 내야하는데.. 그게 한 200만원 되었지.. 나 조금 지원받고 갔지.. 그러다 보니.. 남은돈 300만원.. 그 당시 환율이 거의 1:1 이었거든.. 그러니 한 3,000불 남은거야.. 갑자기 아는 사람 하나도 없는데 너무나 막막하더라고.. 무슨 배짱으로 이걸들고 여길 왔는지.. 당장 미국 땅이라는곳 그중에서도 이곳 앵커리지는 정말 차 없이는 못사는곳인데..
학교가는 첫날.. 아는사람도 없고.. 말도 안통해서.. 학교를 걸어서 갔어... 눈이 내리는 날이었지.. 지나가는 모든사람들이 날 쳐다보더라고..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눈길에 걷는 사람은 거지 아니면 원주민 밖에 없다고 하더라고.. 그래서 학교 근처까지 가는데.. 한시간 걸리더라고.. 애써 도착했는데.. 캠퍼스가 두개라더군... 나는 제2캠퍼스로 온거고.. 제1캠퍼스까지는 차로 한 15분가야 한다고 하더라고.. 난 다시 걸어서 눈을 맞으면 걸었지..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셔틀버스가 5분에 한대씩 있었더라고.. 어쨋든 첫날부터 지각을 해서.. 문을 열고 들어갔는데.. 전공수업이라 그런지.. 학생이 10명정도 .. 교수를 포함해서 날 빤히 쳐다보더라고... 교수의 첫마디.. 아직도 기억에 생생해... 유 머스트 총~~ 내 이름이 Choong 인데.. 이걸 총이라고 발음을 하더라고.. 2시간 남짓을 걸어서.. 얼굴은 안면홍조증 걸린아이같지.. 옷은 눈에 많이 젓었지.. 지각했지.. 하여간 창피했어.. 거기다가 남은자리는 제일 앞자리 하나.. 그 3시간의 수업동안 난 뭘 생각했는지도 모르겠어...단 하나 생각 나는거.. 집에 가고싶다..
한국가서 다시 일하고 싶다... 울고싶다.. 도망가고 싶다.. 암울하다.. 그렇게 내 알라스카 생활은 시작이 되었어..
그게 2005년 1월 초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