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에서 돌아온후 여행에 대한 재미에 더욱 빠져들었다. 본연의 일을 망각할 정도로 여행에 흥하여 버는 족족 여행을 떠났다. 라스베가스를 5번을 다녀왔는데 그중 3번을 골프를 치러가고 2번은 카지노를 위해서 갔던 기억이 난다.

 

갈때마다 다른느낌이 나는건 나만의 생각일까 ? 여기에서 놀지 않으면 마치 바보다 되는듯한 느낌의 도시 .. 라스베가스.. 그 일정중에 가장 기억이 나면서도 잼나게 놀았던 카지노에서의 잠시를 공개한다.

 

 

 

넓은 땅덩어리 알라스카에 인구는 50만명이며, 그중 앵커리지의 인구가 30만명이다.. 그중 한인이 대략 7,000명이라고 한다. 그러면 한인의 비중이 그리 작은셈도 아니다. 그중에 친하게 된 동생한명이 프로골퍼여서 베가스 모든 일정은 항상 같이 동행을 하였다. 지금도 생각이 나는 고마운 동생임이 틀림없다. 타이거우즈가 자주와서 연습한다던 골프장이다. 한여름을 피해서 갔는데도 9홀즈음에 날씨의 압박이 대단하였다.

 

 

다시 알라스카로 돌아와서 이제 겨울을 맞이한다. 알라스카 겨울 참 두려웠다.. 얼마나 추울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런 고민도 잠시 진정 알라스카의 겨울로 빠져들게 되었다. 눈을 사랑하는 나로서는 참 더할수 없이 좋은 알라스카의 겨울이다.

 

 

어디를 보면서 보드를 타고 내려가도 끝이 없다는 느낌밖에 안든다. 가고 가도 끝이 없다는 느낌.. 그리고 주변에 아무도 없다는 고요함을 느낄수 있었던 알라스카 겨울에 감사를  표한다.

 

이제 수많은 여행을 뒤로하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갈 시점이 다가온다. 2006년이 다지나가고, 2007년 새해를 맞이한다. 그간 정들었던 사람들과 인사를 하고, 한국에서의 삶을 살기 위한 사전준비도 하고, 알라스카하고도 작별인사를 하러 빙하근처로 떠난다.

 

 

 

 

이제 돌아갑니다.. 한국으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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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상권 침해라고 하면 어쩔수 없지만 어쨋든 날 도와주셨던, 무진장 도와주셨던 내외분이다. 형님은 나랑 띠동갑이시고 형수님은 나이가 하여간 동안이시다.

 

큰집에 두분만 사셔서 나한테 1층의 방하나를 선사하셨다. 그래도 나름의 양심은 있는지라 최소한의 생활비는 내고 살았다. 그리고 가끔 시간 되면 스시집 가서, 새우도 튀겨주고, 캐셔도 봐주고, 어쩔때는 스시바에서 롤도 말았다. 말그대로 전천후였다고나 할까..

 

물론 시간당 일당도 두둑히 챙겨주셔서 그걸로 생활비도 하고, 차 기름도 넣고.. 참..여기서 차를 소개해줘야 하겠네.. 참으로 타고 싶었던 차를 미국에서 그것도 눈의 주 알라스카에서 타게 되었네요... 이름하여... 비틀... 뉴비틀

 

 

 

 

참 애지중지 잘도 탓던 차다.. 차 살때 딜러도 잘 만나서 얼마 타지 않은차 좋은 가격에 샀고.. 2년동안 아무런 문제없이 잘 굴러가던 차다..

 

그 큰 알라스카 땅 덩어리 거의 두번은 돌았었다.. 겨울에도 스노우타이어 없이 잘 달렸고, 여름에는 더할나위 없이 좋은 성능을 발휘해준 고마운 발이었다.

 

그 여름 대학교 은사이신 박재호 교수님 가족분이 오셨을때도 저 차를 가지고 멀리 여행도 했던 추억이 남는차다.

 

아마 그당시 5명이 저차에 타지 않았나 싶다.. 지금의 미니보다 공간구성은 훨씬 잘되어있다. 사실 이번에도 비틀을 살까 싶었지만, 집사람의 반대로 미니를 선택했고, 역시 선택에 만족을 하면서 지내고 있다.

 

 

 

방학이 지나고 가을학기가 시작되고, 차도 사고, 집도 안정되어서 이제 나름 알라스카인이 되어가고 있는듯 하면서 본토를 가고싶은 충동을 느끼게 되었다. 그당시 막역한 사이인 석이형이 시애틀에서 사업을 하고 있기에 시간을 맞춰서 한번 보러 가기로 했다.

 

 

시애틀에 있는 스타벅스 1호점이다. 로고도 지금하고 많이 다르지 않는가.. 옆에 있는 길거리 악사가 깝치고 있다... 깝친기념으로 적선좀 하였다... 좋단다..

 

커피는 따로 사먹지는 않았고.. 석이형 아는 사람들 만나러 근처 폭포호텔로 향했다.. 참 거대하더라.. 폭포 바로옆에 호텔을.. 발코니 문을 열면 바로 폭포다... 발코니까지 물이 튄다..

 

정말 밤새 술을 먹고 싶었지만..일정상 밤늦게 다시 시애틀로 향한다..

 

아직도 좀 아쉬웠던 술자리였지 싶다.. 나중에 그 사람들 다시 만나러 아침비행기 타고 시애틀을 다시 온적이 있다.

 

 

 

 시애틀에서의 일정을 마치고 지난번에 교수님이 오셨던관계로 이번에는 내가 교수님이 살고 계신 밴쿠버로 넘어갔다. 

 

시애틀에서 밴쿠버는 바로 옆이다.

 

그러다보니 제트기가 아니고 프로펠러 비행기가 뜨는것 같다.

 

우리나라도 제주도 저가항공 초창기에 프로펠러 항공기가 떠서 그옆에 앉으면 정말 시끄러웠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50여분을 날았다.. 밴쿠버 공항에 도착하였다..

 

그리고는 교수님 댁에 여정을 풀고 록키산맥으로 갈 준비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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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스카에 도착한 시간은 아침 10시정도 였다. 그런데 뭔가 이제 해가 뜨려고 한다.. 마중 나오기로 한 목사님이 기다리고 계신다.

 

" 형제님 반갑습니다. " 약간은 어색한 말투였지만, 어쩌겠냐 그래도 나를 도와주시겠다고 나오신분인데.  

 

알라스카 앵커리지의 그 첫느낌이란... 아마.. 무슨말로 표현을 해도 이해가 안될듯 싶다.. 백문이 불여일견.. 아는 한자가 없어서 그냥 한글로 쓴다

 

처음 도착했을때 왜 우울증이 오는가를 이해할수 있겠더라고.. 아침 10시넘어서 해가 뜨고, 다시 오후 3시면 해가 져서 밤이 온다.. 오로지 할수 있는거라고.. 일찍히 술을 한잔 시작하는거.. 그뿐이다.

 

내가 처음 묵었던 곳은 교회 전도사님 댁이었다. 가보니 전도사 한분, 젊은 목사한분, 그리고 필리핀 목사 한분이 같이 살고 있었고, 2층에는 버지니아에서 오신 아저씨 한분이 살고 계셨다. 또 지하 한켠에는 보호수용을 받고있는 한인 2세가 있었다. 사실 이친구 좀 무서웠다. 밤에 와이프를 때리기도 한다. 그래서 경찰도 몇번 출동했다. 결국은 집을 나가버렸다.

 

그 집에서 술을 먹는 오직 유일한 사람들은 2층 아저씨와 나였다. 당연히 가까워질수밖에 없었다. 온지 1주일 정도 지날무렵 아저씨가 날 부른다..

 

"미스터 리" 아... 이 아저씨 정말 미국에 오래 사셨나보다.. 근데 영어는 잘 못하신다고 한다. 한때 버지니아에서 공장도 했고, 요트를 두척이나 끌었으며, 벤츠를 두대나 가지고 있으셨단다.. 근데 왜 여기에 있냐고 ? 여기 앵커리지의 많은 사람들이 사연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다. 한때 본토에서 날리다가 나름의 사정을 가지고 들어와서 재기를 하는 사람도 있고, 사고치고 숨어 있는 사람도 있고, 말 그대로 돈 많이 벌어서 여생을 알라스카에서 보내고자 하는 사람도 있다.

 

암튼 그날의 술은 버드와이저 24캔이었다. 눈이 엄청나게 내리는 가운데 아저씨가 한캔만 하자고 해서 둘이 앉았는데, 정말 앉은자리에서 24캔을 다 비워버렸다. 안주는 냉동 미루가이.. 아저씨가 안주가 모자라니 고기를 굽는다고 하여 고기를 굽는동안 나는 술을 사러가고 싶었지만 이놈의 길을 알아야지.. 아저씨랑 같이 리쿼 스토어로 가서 내가 술을 샀다. 그리고는 아저씨하고 같이 집을 알아보기로 했다. 아무래도 목자 집안에서 자꾸 술을 마시는게 꺼름칙해서 말이다.

 

 

그렇게 둘이서 알아보던중 Low Income을 대상으로 집을 싸게 준다기에 아저씨는 영주권자라서 해당사항이 될거같아서. 관할구청가서 상황설명하고 했더니 바로 집을 구할수 있게 도와주더라고.

 

이게 참 차이인듯 같다.. 저소득자를 위한 집이라고 후지지가 않아.. 엄청 좋단 말이다. 방이 두개고, 발코니가 있고, 화장실이 두개고, 부엌도 있고, 전망도 좋고. 저게 내 방이었다. 책상은 아저씨가 일하는 목공현장에서 만든거고, 좀 지나서 나도 아저씨의 목공현장에서 알바를 하기로 했다. 일명 노가다... 침대 매트리스는 누군가가 사용하던거 깨끗이 빨아서 사용을 했고, 그러다보니 그다지 돈이 들어갈 일은 없었다.

 

 

 

 

 

이사한 집 발코니에서 찍은 동영상이다. 4월4일인데 아직 한겨울의 퐁경을 보이고 있다. 누군가 그랬다. 과거에 사무쳐 살지 말라고. 과거는 쾌쾌 묵은거라고. 근데 과거를 생각하면서 살짝이나마 마음의 전화을 느낀다면 그거 또한 마음의 리프레쉬가 되는거 아닌가 싶다. 꼭 누군가의 말이 맞는건 아닌듯 싶다. 뭐든지 과하면 안좋은 거지만, 적당히 자기만족을 할줄 알다면 그다지 자기계발이 필요하지는 않을듯 하다.

 

 

참... 날은 벌써 4월까지 왔는데, 내 학교 이야기는 하나도 없었네..옆사진이 학교도서관이다. 땅이 넓어서인지. 정말 참 잘 지어놓았다. 바닥에 쓰레기 하나 없이 카페트로 깔아져있고, 책상과 책상의 거리도 정말 넓고.. 암튼 우리내 독서실 칸막이는 찾아볼래야 찾아볼수가 없었다.

 

그래도 나름 유학비자 였던지라 공부를 꽤 열심히 했다. 장학금도 받았고, 시험보면 한국인 특유의 암기실력으로 거의 A를 받았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여름방학이 시작되었다. 5월부터가 여름방학으로 9월까지 거의 4개월을 쉰다..

 

정말 안나가려고 했는데, 연어들고 사업한번 해보려고 연어샘플 들고 한국으로 잠시 나간다. 유나이티드 에어라인을 타고 1주일 여정으로 간다. 여기서는 자세한 내용은 생략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 왜냐 결과가 그다지 좋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나름 계획서도 만들고 샘플도 들고 나갔지만 아직은 시기상조라는 답변만을 가지고 다시 돌아온다.

 

근데 아직도 무슨 계획만 하면 다들 제일 쉬운말이 시기상조 아니면 이제 너무 많다는 말뿐이다. 그럼 도대체 누가 어떤 시기에 들어가야 하는건가.. 그들도 알지 못한다. 컨설팅을 하는 교수님들이 직접 사업에 뛰어드는 경우 보았나 ? 아마도 절대로 하지 않을것이다. 왜냐하면 그냥 그 위치에서 말로만 명맥을 유지하면 되는 위치이기 때문이다.

 

알라스카 생활도 어느덧 익숙해질즘 참으로 좋은 인연을 만나게 되었다. 스시집을 운영하시는 사장님을 알게 되었는데 모든일을 마치고 귀국하는동안 참으로 많은 도움을 받고 왔다..

 

그 이야기를 이제 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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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생각해볼것이다. 내 시기에 다다른 사람이라면 ..

 

39세의 12월.. 돌이켜보면 29세의 12월이 생각이 난다. 그때도 이러한 감수성에 젖어 있었던것 같네. 대학원을 졸업하고 첫직장의 합격통보를 받았던 시기 정식으로 된 첫직장에서 번돈으로 맞이했던 첫 크리스마스..

 

그로부터 10년이 지났다.. 뭐가 변했을까.. 나에게.. 정리해본다.

 

나이계산이 안된다.. 30살이면 몇년도였는지를.. 지금이 2013년이고 내나이 39이니까. 9를 빼면 2004년이 되겠네.

 

2004년 1월즘에 어렵게 들어갔던 직장을.. 3차까지 면접을 보고.. 난생 처음으로 집단토론 등의 다양한 면접을 거쳐 입사를 했다.. 지금의 GS 리테일.. 1년남짓즈음에 개인적인 이유로 퇴사를 하게 된다. 그게 뭐냐면 블로그 헤쳐보면 다 나오는 알라스카행이다. 아직도 난 의아하다. 내가 왜 거길 선택했을까 ? 준비된 영어성적이 안되서 그랬을까 ? 아니면 정말 난 연어가 좋았던 것일까 ? 아님 30대 초반의 무모한 도전이라고해야 하나. 그러나 지금 시점에서, 아니 49살의 12월에도 마찬가지로 생각할것이다. 내 인생 최고의 경험은 알라스카의 2년이었다고...

 

집의 도움없이 2004년 1년을 버티었다.. 버티었다기보다는 준비를 했다는 말이 맞겠다. 토플을 보고, 회화학원을 다니고 지금도 유명한 삼육 외국어학원.. 끊기 때문인지 뭔지는 모르겠지만 4단계에서 그만두었다. 그리고는 학비를 벌어야 했기에 이일 저일 머리쓰는 일을 많이 했다. 내가 회사 차리면 꼭 직장에서의 경력만 인정해 주는 그런 실수는 하지 않을런다. 회사일이라는것은 매뉴얼이다. 아무리 바보를 갖다 놓아도, 할수 있다는 내 신념이 있기 때문이다.

 

2004년 7월에 I-20가 도착했다. 일명 학교입학허가서 그걸 가지고 비자준비도 해야하고, 이제 정말로 가는구나 싶은 생각이 든다. 모든것은 나혼자 준비했다. 알라스카에 접촉을 한것도 나 혼자, 비자를 신청하고 모든 과정을 진행한것도 나혼자, 그리고 짐도 나 혼자 쌌다.

 

2004년 12월1일 비자 인터뷰가 있는날이었다. 배운건 있어서 여권을 대사관에서 가져가면 합격, 그렇지 않으면 불합격이라고 하였다. 심사관 누구를 만나는가도 관건이라고 하였다. 근데 신경 쓰지 않았다. 심사를 약 3분간에 걸쳐서 했고, 여권을 가져가 버리더라고. 아 이제 합격인가 보다.. "1주일안에 도착할겁니다" 라는 말과 함께. 나는 광화문을 걸었다. 잘하는 짓이겠지.. 하긴 이제 다 결정된건데.. 집에 전화를 걸었다.  엄마는 반기는건지 내내 뭔가 아쉬운건지 모르겠고, 형은 나에게 편도 비행기표를 끊어준다고 하엿다.

 

2004년 12월 17일 저녁 6시30분 대한항공을 끊었다. 그 당시만 해도 인천발 뉴욕을 갈때 앵커리지를 경유해서 갔다. 기름넣고 간다고 하더라고...  이제 남은 시간은 2주정도.. 친구들과도 많이 놀았고, 나름 송년회 겸 이별.. 아니 환송이라고 하나.. 하여간 별의별 이름을 붙여서 술을 마셨다.. 그 당시 친한친구 한명이 강남역에 바를 하나 내었을때라 장소는 더없이 좋았다.

 

그 바 사진도 있었는데 그건 어디로 사라졌나 보다.. 아니 어딘가에 또 잠자고 있을 사진이다. 옆 사진은 그날 송별회를 하는날 2차를 가서 놀았던 사진이다. 내 어깨동무한 친구가 바 사장이고. 그옆이 아직도 변함없는 우정을 보이고 있는 친구, 그리고 그 옆에 학수는 그날 이후로 본적이 없다. 안친해서냐고 ? 볼기회가 없어서라고 말하고 싶다.

 

이날 오랜시간 술을 마신걸로 기억이 된다. 그리고는 떠난다.

 

 

 

 

 

 

 

 

 

 

아직 남아있는 KE 마일리지다. 유효기간 적용적에 쌓여진거라 평생 안없어진다고 한다. 근데 어쩌나 난 이미 아시아나만 타는걸, 카드적립도 아시아나만 한다는걸..

 

그렇게 한국을 떠난다.. 30살 처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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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셀은 말했습니다. 불행의 심리적인 원인은 다양하지만 모두 공통점이 있다. 전형적인 형태의 불행한 사람은 어린 시절에 정상적인 만족을 누리지 못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 결국 그 사람은 어느 한가지 만족을 다른 만족보다 소중하게 소중하게 여기게 되고, 자신이 이룬 성과에 대해서도 자신에게 만족감을 주는 활동과는 상반되는 것이라고 과소평가하면서, 인생을 외골수로만 몰아가게 된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요즘에는  여기서 한발짝 더 나간 불행한 사람들을 볼수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절망의 늪에 빠져 어떤 만족도 추구하지 않으면서, 고통을 잊으려고 기분전환만을 추구합니다. 이런 사람은 '쾌락'의 광신자가 됩니다. 그는 자신의 생명력을 줄여서라도 고통스러운 삶을 견디려고 합니다.  예를들어 술에 취하는 것은 일시적인 자살이라 다름없다고 합니다. 술에 취해서 누리는 행복은 불행을 잠시 중단시키는데서 오는 순간적이고 소극적인 행복이라고 합니다.

동감을 할수도 있고, 부정을 할수도 있지만 개인적으로 기독교는 아니지만 러셀을 굉장히 존경합니다. 지금 하고 있는 일에 대해서 얼마나 만족을 하고 있는지 저한테도 여러분한테도 물어볼 일입니다. 만족하지 못하다면 못한 이유나, 혹은 더 만족할수 있는 방법이 있는지도 궁금합니다.

몇일전 힘들어하는 누군가에게 이런답장을 보냈습니다 ' 조금 버리고 사니까, 조금 욕심을 내려놓으니까  저 같은 경우는 마음이 나아지네요, 내리고 버린만큼 또 채워진답니다'

그랬더니 바로 답장이 오더군요 ' 요즘같은 세상 욕심따위도 없으면 무슨 낙으로 살아요' 이렇게요.. 전 생각 했습니다. 정말 가치관이라는것이 다들 틀리구나.. 공지영선생의 지리산 행복학교에서 연봉 200만원의 할아버지도 행복하게 살아간다는데 우리는 너무 많은걸 크게 생각하고 있는게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욕심 부리다가 저는 사람 많이 잃었습니다. 물론 얻은것도 많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결국은 조금 손해보면서 살아가는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어차피 인생은 사람끼리 살아가야 하니까요..

무조건 뭘 하든,  행복한 마음을 가지고 하세요... 생각하기 나름이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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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올 물건이 있어서 좀 부탁을 해서 우여곡절 끝에 보내주었습니다.

한때는 유통업에 종사를 했고, 물류에 관심이 많아서 물류학 공부도 했던지라, 그리고  웬지모르게 FedEx를 좋아하고 있는지라 내 물건이 도대체 어느 상공에 있는지가 궁금하여 tracking을 해보았습니다.

물론 페덱스 홈페이지 에 들어가면 쉽게 트랙킹을 할수가 있습니다.

저 또한 그렇게 트랙킹을 하였지요..


앵커리지에서 출발한 물건이 페덱스 본사인 멤피스에 갔다가 아시아 허브인 앵커리지로 다시 돌아와서 인천으로 오고 있습니다.. 재미나지요 ? 이게 참 물류의 매력인것 같습니다.

그냥 사람 같으면 가만히 내비뒀다가 멤피스에서 오는 비행기에 실어 버리면 되는데, 시스템이 엄청 복잡해진다고 하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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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여기가 제가 직접 보고온 앵커리지 페덱스 허브센터 입니다.


(앵커리지 국제공항 근처에 자리잡은 허브센터입니다 저 대기업 간판이 각목으로 만들어진게 잼나지요..^^)



(아마 제 물건도 저런 차디찬 공간안에 넣어서 배송이 되겠지요 저걸 컨테이너라고 하지요 ??)


(수많은 사람들이 근무 하는 본사 바깥풍경입니다. 안에도 견학을 하였는데 (굉장히 엄격함) 사진촬영은 금지라서요..)



(조기는 물류센터 입니다. 즉, 멤피스에서 오는 물건이나 아니면 아시아 지역에서 오는 물건들이 멤피스로 가기  위하여 분류작업을 하는곳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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ㅋㅋ... 잘들 보셨나요...

그럼 본론으로 들어가서..

도대체 내 물건을 실은 페덱스 비행기가 어떤 루트를 통해서 언제 출발하고 언제 정확히 도착을 하는지가 궁금해서...(절대 심심해서 찾아본거 아닙니다.. 관심분야입니다..^^) 구글을 찾아봤거든요..

근데 아래와 같이 나오더라구요...


위에 그림 보시면 인천공항 10월9일 내내 FX(페덱스 약어)의 비행스케줄입니다. 보아하니 원래스케줄은 1시11분 (몇분 안남았네요) 인데 일찍 떠났나봅니다  실제는 1시에 도착을 하겠네요... 지금 시간이 12시49분이니까 아마도 지금  김포공항 상공쯤에 있겠네요...  11분후에 랜딩을 하겠지요...

더 궁금해서 저 옆에 있는 track을 눌러보니 (테러 때문인지 회원가입하라네요) 어쨋든 회원가입하고 트랙해보니 ..


놀랍지 않으세요 ? 비행기 안에서만 볼수 있던 비행기 위치가 찍힙니다... 그리고 출발 도착의 정확한 현황까지 나옵니다. 페덱스 23편으로 10월8일 11시56분 떠났으면 한국시간으로 금일 1시에 도착예정입니다.

그리고 지도상의 비행기는 움직입니다... 실제로요.... 


보이세요 ? FX23 Position 이라고 뜹니다.. 와우.. 살짝 오버해서  관제탑에 관제사 같은 기분이 들어요...^^


현재 포지션에 대한 자세한 사항까지 나오네요... 앵커리지를 떠나서 943km를 왔고, 앞으로 5,178km가 남았으며, 고도는 9,754미터에, 시속  870키로로 달리고 있네요...

이제 무사히 공항에 도착후에 공항 페덱스 센터를 거쳐 통관을 마치면 일요일 푹 쉬고, 월요일날 제 품에 들어오겠네요..

이래서 저는 비행기가 좋고, 공항이 좋고, 물류가 좋답니다.... 세상을 알수록 불행해질수도 있지만 그보다는 행복해지는 것이 더 많은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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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본격적인 더위가 시작되었다고는 안하나.. 그래도 더위는 추위보다 싫습니다..

더우면 끼어 입을 옷이라도 있지만... 덥다고해서 한없이 벗을수는 없는일 아니겠습니까..~~

그러다 보니 떠난지 언 4년이 되어버린 또 하나의 고향 알라스카가 생각이 나네요..

요즘 들어서 버라이어티에 자주 등장하는 알라스카.. 제 블로그 유심히 보신분들은 (얼마나 되려나..-.-)  아시겠지만 거기서 약 2년넘게 살았습니다. 아직도 그 당시를 생각하면 가슴에 활력이 넘치는 기분을 느낍니다..

그래서 경험은 소중한것입니다.. 아무리  버라이어티에서 광활한 알라스카의 땅덩어리를 보여줘도 가서 마음으로 눈으로 몸으로 체험하기전에는 감히 말할수 없는 땅이 알라스카입니다.. 국토 전체가 미국땅의 5분의 1이라는 큰 영토에서 전체인구가 50만명밖에 되지를 않습니다.. 더군다나.. 주도는 아니지만 그래도 우리가 알라스카 하면 생각하는 앵커리지에 30만명이 살고 있습니다... 나머지 20만명이 미국땅의 5분의1이 약간 안되는 지역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속된말로 범죄 저지리고 알라스카 들어오면 찾는것을 포기한다고도 합니다. 찾아낼 방도가 없다고 합니다.. 한국분들중에서도 그러한 분들 꽤 되는걸로 알고 있습니다만....^^ 확인한것은 없습니다..

무더위에 그 당시 여름즈음에 찍은 사진들이 있어서... 몇장 올려봅니다.


 
앵커리지에서 북쪽 고속도로를 타고 약 2시간정도 가면 forage glacier 라고  나옵니다.
(정확히 남쪽이었는지 북쪽이었는지는 지금 헷갈립니다)
가는길 휴게소에 들러서 찍은 사진인데.. 위 사진을 포함해서 아래에 나오는 사진 모두는
4월에서 6월사이에 찍은 사진입니다..
절대로 겨울에 찍은 사진 아닙니다..^^


이거 정말 5월에 산에 올라가서 찍은 사진인데요..
저때 생각난거 딱 하나 있습니다.. 그게 아마도 지금의 제 마인드를 갖게 해준것 같은데요..
평화롭게 살자.. 조금만 버리면  평화로울수 있다..
가지려고 하니 싸워야 하고.. 싸우다 보니 피가 터지는것이다..
지금도 이 마인드는 변하지를 않습니다..



밑으로 조금더 내려가면 6월이 다가오는데 호수는 녹지 않습니다..
셀카도 찍었는데.. 영 사진기가 후져서 인물이 안나오네요..^^


그나마 고속도로변은 좀 녹기 시작하는 6월입니다..
저기 보이는 물은 호수는 아니고 알라스카 바다입니다..
해수욕 못하는 검정바다요...


저기로 산위에 보이는 구름 보이시지요 ?
아... 그냥 말이 필요없습니다.. 넋좀 나갑니다..


이 사진 유심히 지켜보세요... 사진 정 가운데 계곡 같은곳에 푸른색 얼음 보이세요 ?
그게 빙하랍니다.. 얼음이 아니라 빙하요...
정말 4차원 세계 같았아요......


여기는 빙하공원 주차장인데요...^^
차 한대도 없어요...  내 차라도 찍을걸...


이게 알라스카가 여름을 맞이할즘의 시점입니다..

근데 실제로 여름이 오면요... 아마도 전세계에서 가장 멋진 날씨가 아닐까 싶어요... 여름 사진은 또 올릴께요...

정말 정말... 다시 가고 싶은곳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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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괜한 핑계로 이리저리 책 읽는것을 소홀히 하게 되었습니다. 책을 읽어도 그냥 잠깐 누구 기다리는 동안 서점에 들어가서 들척거리는 정도.. 아니면 책 디자인만 보고 휘리릭 넘기는 정도의 싸구려 책 읽는 습관이 몸에 배었습니다.

사실 어릴적부터 책을 좋아했던것은 아닙니다.. 대학에서도 학교교재 이외에는 책을 별로 보지 않았는데 언제였던가 누군가의 선물로 책을 선물받고 그 뒤도 책에 심취해서 일주일에 평균 두권의 책을 사고 읽고를 반복하다보니 어느새 벽장이 책으로 가득차게 되었습니다.

그리고는 이렇게 책들을 보면  사실상 기억이 뚜렷이 나는 책은 몇권 없습니다.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럴만한 책중에 저는 오래된 미래라는 책을 참 감명깊게 읽었습니다. 지금은 양장판이 나오고 했지만 그 당시에는 환경관련 책인지라 노란종이에 나온 책이었습니다.

그리고 요즘 서점을 가면 책들이 너무 많고..(항상 그렇지만요) .. 디자인들이 너무 화려해서 쉽게 책에 손이 가지를 않습니다.. 그럴듯한 제목에 표지 디자인은 사람들로 하여금 책장장식을 하기 좋게끔 만들어 주는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러면서 제 자신도 무언가에 대한 책을 한권 써보고 싶은 마음이 또 들곤 합니다. 내가 이렇게 쉽사리 다른 사람의 책을 판단할만큼의 지식을 가지고 있는가에 대한 생각도 들곤 하지요..

항상 옛말에 그러잖아요.. 남을 판단하기 전에 내 자신을 먼저 돌아보라고.. 어떤 작가는 책을 약 2,000여권을 빌려보고 나서 자기 책을 한권 썻다고 하네요...그런면에서 나를 살펴보면 ^^.. 저는 우스을 따름입니다.

다름이 아니라 봄이 독서하기에 딴 적당한 계절이라고 생각을 하는데 이번년도에 봄은 없나 봅니다.. 이번주도 쌀쌀한 날씨가 계속된다고 하고 이제 그렇게 4월이 지나면 5월부터는 여름이 오지 않을까 하네요..

제가 약 2년간 살았던 알라스카 앵커리지는 참으로 조용한 도시입니다. 아침에 조깅을 해도 맑은 공기와 몇 안되는 주민들과 인사를 하고 학교를 가도 드넓은 교정의 잔디밭에서 아무런 방해 받지 않고 책도 읽을수 있었고.. 저녁이면 조용히 선술집 찾아서 한잔 할수 있었던 마음이 평온했던 곳입니다..

그래서 해마다 거기를 찾아가는게 아닌가 합니다...

오랜만에 주제가 삼천포로  빠져버렸는데.. 여기 우리나라에서도  마음의 여유를 좀 찾고 싶습니다.. 뭔가에 항상 뒤쫒기는 듯한 삶보다는 삶이 나와 함께 유유히 흘러갈수 있는 그런 생활을 하고 싶습니다.

울타리 안에서 발버둥 치지 말고... 울타리를 걷어찰수 있는 그런 지혜를 배우려고 합니다..

그 울타리를 벗어나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모르지만... 울타리 안에서  벌어질 일은 너무나도 명백히 알기에.. 나아가고 싶은 바램입니다..도전적으로 살아가되 항상 뒤를 돌아보면서 가세요..어디를 어떻게 가고 있는지 보면서 나아가세요.. 앞만보고 가다가 주변에 뭐가 있는지 아무것도 모르게 됩니다.. 그때는 이미 늦습니다..


쉬세요...  그리고 나아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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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거 아시죠 시간의 허무함.. 그리고 시간의 소중함이요.. 한국에서 대만가는 비행기에서 이 이야기의 1탄을 쓴게 정말 어제 같은데 이제 다시 마지막을 준비하네요.. 근데 이번 일정에서 저한테 마지막이라는 단어는 없습니다.. 시작을 위한 준비단계였습니다. 지난 약 3주간에 걸쳐서 많은 조사를 하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생각하고자 했던 그리고 이번 일정의 모토였던 버림 떠남에 대해서는 크게 생각을 하지 못한게 사실입니다. 그나마 첫 깨달음을 얻었다는것에 감사하지만 언제까지 가려나는 두고 볼일입니다.. 전편에 언급했듯이 나란 놈이 나란놈한테 자꾸 도전을 해서 말입니다.

지금은 한시대를 풍운하다가 조용히 지내는 김우중 회장님께서 히트를 시키신 말씀이 있지요... 너무나 유명한 어구지만 그당시만 해도 글러벌이니 해외파니 뭐 그런게 없었을때 참 존경스러운 말씀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세계는 그다지 넓지 않습니다... 정복을 하고자 하는 사람도 많고.. 그 와중에 피해를 입는 사람도 참 많이 있습니다.. 리스를 못내서 모든걸 포기하고, 리스만 넘기겠다는 사람부터 시작해서... 야반도주에... 그렇게 잘 나가던 사람들도 한 순간이더군요...

이때가 기회라고 생각하고 뭔가를 움직이는 사람들도 적지 않습니다.. 아마 이 사람들이 부자가 될 사람들이라 생각합니다.. 이번 일정에서 대부분이 신사업 분야로의 모색이 되었습니다.. 이걸 제 모토중에서 가져옴에 해당이 되는 말일까요... 아니면 결국 한국을 버리고 여기를 택하게 되는 버림을 뜻하는 말일까요... 저도 지금 이시간까지 잠이 안옵니다.. 여러가지 생각이 참 많습니다.. 하지만 중요한건 이제는 결코 생각만 할때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많은 결정을 가지고 들어갑니다.. 그리고 생각에 대해서는 버린것도 참으로 많습니다..

이제 남은 3일... 정말 제 일정의 모토대로 한번 지내보려 합니다.. 꼭 뭔가를 얻는다기 보다는 마음을 좀 내려놓고 싶습니다.. 요즘 그렇지 않아도 복잡한 이 마음에.. 일들이 참 많습니다... 그러나 앞으로 누군가를 부러워 하는 삶은 없을것입니다.. 이게 아마도 깨닫게 된다면 두번째 깨닫음이 되지 않을까 합니다..

어차피 태생이 다르고 성격이 다르고... 운명을 많이 믿는편은 아니지만 운명이 다른 각자의 사람끼리 부러워한다는것은 제 마음의 또 하나의 사치라고 생각합니다.. 이제 왜 내가 돈을 벌어야 하는지를 알았습니다.. 엄청나게 많이 번다거나.. 10억 100억을 목표로 하지는 않을것입니다.. 단지 지금 해왔던 내 방식 그대로... 벌어 나갈것입니다.. 제 그동안의 삶에 있어서 가끔 후회도 했었지만... 다른 사람들이 보는 저는 지극히 잘 살고 있는 사람입니다.. 저 또한 그걸 느끼고 있습니다...

저 자신과 항상 싸우면서... 이기면서도 그러면서도 사랑하면서 그렇게 제 자신을 꾸려 나가렵니다... 싫어도 내몸 좋아도 내몸입니다.. 그러니 가급적이며 저를 존중하면서 살되... 엄할때는 엄하게 다스리도록 하렵니다..

이제 정말 실행할때입니다.. 이 말이.. 언젠가는 회고가 될수 있는 그날이 오리라 생각됩니다.

밤늦은 시간 .. 아니 새벽 무렵에... 앵커리지에서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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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컴퓨터를 멀리해보는구나 한국에서도 그리고 여기에서도 컴퓨터를 떨어뜨리지를 못하고 지냈는데, 오늘 모처럼 그냥 나왔다. 참으로 뭔 현실일까나 ! 중독은 아니다 누구나가 겪는 현실이기 때문이다. 언젠가 부터 우리는 컴퓨터 없이는 아무것도 못하는 삶을 살게 되었다. 나 역시도 이게 없이 왔더라면 기회비용을 많이 놓쳤을테니 말이다. .. 그러면서 생각해보는 것은 나는 도대체 무엇을 위해서 여기에 왔는가 하는것이다. ... 모르겠다.. 사실 솔직해지려고 온곳이다.. 그리고 지금 지극히 솔직해져가고 있다.. 솔직하다는 것은 무엇인가.. 거짓말을 안시키면 솔직한것인가 ..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행복하지 않으면 불행하다는 말과 똑같은 이야기다..

나는 뭔가를 해결하기 위해서 온것이다.. 근데 뭔가가 뭔지를 아직 모르는것일 뿐이다... 광활한 바다와 빙산을 쳐다보면서.. 내 여행의 모토를 생각해 봤다.. 버림, 떠남, 가져옴 이다.. 결국은 = 등식이 성립되는거 아닌가 싶다.. 근데 현 상황은 버린것 보다는 얻어가는것이 더 많은게 아닌가 싶다.. 그렇다고 넌 뭘 얻었니? 라고 반문을 하시단 그 또한 모르겠다는 것이다.. 자꾸 내 자신이 답을 찾으려고 하니 더 답답한것 같다.. 우선은 버려야 한다.. 버릴수 있다는 것이 얼만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인줄 알고 있는가.. 반대로 버렸다 다시 주워오는건 참으로 할짓이 못되는것이다.. 그래서 버릴때는 신중해야 하는것이다.. 그러다 보니 버린다는 것이 용기를 필요로 하기에 두려운것도 사실이다.. 두려움을 극복해야 하는 것이 바로 용기인데 말이다..
 
나 본연의 모습은 과연 어디에 있는 것일까 .. 대학교 3학년때 어떤 수업시간에 조별 발표주제로... "나를 찾아 떠나는여행" 이라는 리포트를 작성한 일이 있다. 그래서 나를 찾았는가.. 아니다.. 그 당시 난 복수전공이었고 복수전공끼리 모인 4명의 조원중에 나만 남자였다.. 그래서 나머지 여자들이 나한테 술을 사주기로 하고 리포트는 나 혼자 작성하였고.. 결과는 A+ 였다.. 여하튼 난 나를 찾아 떠난게 아니라 학점을 찾아 떠났나보다... 그 내용이 아직도 잊혀지지는 않는다..

사람은 누구나 그렇다고 생각하지만 나 역시 항상 생각하고 걱정한다.. 주변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다보면 나만 또 유별난 것은 아닌데.. 세상 근심 나 혼자 가지고 사는 사람처럼 생각될때가 있다.. 근데.. 우리집 냉장고에 붙어 있는 말처럼.. 내가 누군가를 부러워하듯 누군가는 나를 부러워 한다는 사실이다.. 나보다 직장도 좋고, 나보다 돈도 많고, 나보다 잘생기고.. 등등의 다양한 주변사람들이 나를 부러워 한다.. 이유는 단 한가지다..가는대로 살수 있다는 걸 부러워 한단다.. 나도 반문은 할수가 있다.. 너희들도 해봐라 하고 말이다.. 하지만 사람한테는 누구나 처해진 상황이 있다.. 그러기에 누군가를 부러워 하는것이고.. 누군가의 부러움의 대상이 된다는 것이다..

난 알고 있다.. 내가 누구를 부러워 하는지를 뭘 부러워하는지를 말이다.. 하지만 내가 버리고 가야할 제 1호가 바로 그러한 과욕이다.. 과욕의 삶이 아니라 희망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자기 자신을 항상 구속시키는 일이 없어야 할것이다. 그러나 난 지금 내 자신을 구속중이다.. 구속을 풀기 위해서는 보석금이 필요하다.. 보석금... 그건 돈인가... 솔직히 돈일것이다.. 아무리 돈이 전부는 아니다 하면서 사람들이 좋은말을 한다 해도... 우선은 돈이 인간생활에 있어서 필요하지 않나 싶다.. 그리고 나서.. 시간이고.. 등등이 되는게 아닌가 싶다.. 그러나 돈이 전부는 아니라는 말에는 동의를 한다.. 돈... 그거 따지고 보면 나도 있을만큼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자꾸 자신이 남과 비교를 하기에 내가 없어 보일수도 있고, 많아 보일수도 있는 것이다.. 요즘 tv에 선전을 보면 모 통신사 선전인데.. 한살에는 걸음마를 해야하고중학교에는 영어를 해야하고.. 대학졸업후에는 대기업을 가서... 내나이때는 외제차를 타야한다는 선전을 한다... 물론 다른 사람 인식하지 말고 살라는 광고라 생각한다.. 근데 그 광고와 우리나라 현실과의 이미지가 과연 맞는것인지 싶은 생각이 든다... 그 나이에 그렇게 해야만 인정을 받는 우리나라에서 .. 나처럼 이 나이에 차 없이 걸어 다니면 친구들 마저 신기해 한다.. 어떻게 차 없이 데이트를 할수 있냐고... 돈 갔다가 어디다 쓸래... 젊었을때 즐겨야지 하는 등의 사탕발림을 한다.. 사실 요즘 많이 흔들린다.. 차가 필요없음에도 불구하고.. 자꾸 그런 말을 듣다보니.. 아.. 나도 차가 필요한가보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예전처럼... 기름값.. 보험료.. 세금... 이런거 따지지 않고 그냥 단순히 한번 생각을 해본다.. 그래... 내가 한국땅에서 살라면.. 광역버스보다 3-40분 느리게 회사에 도착해도..나들이길에.. 몇시간을 고속도로에 버려도..차는 있어야 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어버린다.. 아마 한국 가면 곰곰히 생각을 해볼 일이다...

말을 하다보니 여전히 삼천포르 빠지는 우를 겪고 있는듯 하다.. 그냥 나 자신이 컴퓨터 없이 사케를 마시면서 종이에 지적거렸던 내용을 정리하면서 올리는 글이다.. 이제 약 1주일 정도 남았다.. 그나마 첫깨달음은 얻었다.. 과연 얼마나 실천이 될지는 모르지만.. 사람은 한번에 변하지 않는다.. 그리고 지금 나는 변화해 가고 있다.. 남과의 싸움에는 별 흥미가 없다... 주먹질도 못할뿐더러 ^^.. 그러고 싶지도 않다... 단지 나하고의 싸움에서는 이기고 싶다... 그게 제일 어려운 것 같다...그래도 해야만 하고 그래서 이겨야만 한다... 어느순간 승리를 계속하다 보면 내 자신이라는 존재도 나한테 계속 도전을 하지는 않으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지금 난 내 자신보다 나약하다..

어차피 내가 가지지 않을것은, 가지지 못할것에는 욕심을 부리지 말자.. 가지고 싶은 것에 대한 희망으로도 벅찬 세상이다.. 버려야만 얻는단다...

재미 없는글 끝까지 읽어 주신 기념으로 동영상 올립니다... 음량 낮추어 주세요.. 기본음량이 너무 크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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