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저하게 현지화로 도전하라 (보도자료)
음식 그리고 인생 2009. 2. 10. 19:31 |캘리포니아롤·명란파스타에 답있다…
전통 비틀어라, 그리고 창의성 얹어라
일본의 경우 자국 음식 세계화를 위해 1960년부터 국가 차원의 프로젝트를 실시해 왔다. 81년 농림수산성 산하 외식산업실에 외식산업총합조사연구센터를 설립했다. 2010년까지 전 세계 일식 애호 인구를 12억 명으로 확대하자는 '일식 인구 배증 5개년 계획'과 올바른 일식 문화를 보급하자는 '트라이 재팬스 굿 푸드(Try Japan's Good Food)'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다. 민간기구인 일식당 해외 보급 추진기구(JRO)까지 나서 정부가 하기 껄끄러운 해외 일식당 인증제를 추진하고 있기도 하다.
2001년 '글로벌 타이 레스토랑 프로젝트'를 입안해 자국 음식 세계화에 나선 태국은 세계화 추진기구인 '키친 오브 더 월드(Kitchen of the World)'를 세워 정쟁·정권 교체·쿠데타와 상관없이 자국 음식 세계화를 꾸준히 해 나가고 있다. 각국은 자국 음식을 알리고 품질을 유지하기 위해 다양한 전략과 제도를 마련하고 있다.
◆고전을 넘어서는 퓨전 개발=일본 음식을 미국에 널리 퍼뜨린 공신 가운데 하나가 캘리포니아롤이다. 오이·게살·게맛살·아보카도를 밥에 둘둘 말아 만든 것으로, 기존의 일본 전통 마키(말이)와 반대로 밥이 안에 들어가고 재료가 밖에 자리 잡는다. 겉부분에 깨나 날치알을 뿌려 장식하기도 한다. 아이로니컬한 것은 미국의 대다수 일식당에서 취급하는 캘리포니아롤은 사실 전통 일식에는 없다는 점이다. 일식을 바탕으로 미국 현지의 재료와 수요에 맞춰 새롭게 만들어낸 퓨전 음식이다. 60년대 로스앤젤레스의 일식당 도쿄 가이칸이라는 일식당의 주방장인 마시타 이치로가 창안해 미주 전역으로 퍼져 나갔다고 한다. 지금은 해외는 물론 일본에서도 취급할 정도가 됐다. 전통 음식인 스시를 넘어서는 새로운 퓨전 요리를 개발해 일식당의 인기를 더한 것이다.
태국의 똠양꿍도 해외에서 자국을 대표할 음식으로 정부가 키워낸 것이다. 외국인들이 좋아할 만한 허브 향과 신맛이 매력적인 음식을 해외 진출의 주력 상품으로 내세운 것이다.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파스타·피자도 현지 입맛에 맞춘 퓨전 버전이 끝없이 나오고 있다. 한국에서 불고기 피자, 일본에선 명란 파스타가 나오는 식이다. 한국도 김치·불고기만 앞세운 기존의 세계화 전략을 수정해야 하는 이유다.
◆식당·인력 인증제=주요 국가들은 음식 수준을 지키기 위해 맛·재료·위생 등에서 기준에 충족하는 식당에 인증마크를 부여하는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이탈리아는 2002년부터 '리스토란데 이탈리아노 인증제'를 실시하고 있다. 6만여 개에 이르는 세계 각국의 이탈리아 음식점에 조사원을 파견해 이탈리아적 특성을 갖추고 있는지를 심사하는 것이 목표다. 태국은 2004년부터 '타이셀렉트' 인증 프로그램을 실시하고 있다.
일본에선 독특한 인력인증제를 운영하고 있다. 지난해 '밥 소믈리에' 인증제를 처음 도입했다. 밥 소믈리에가 되려면 쌀의 품종과 밥맛 등 기본사항과 밥의 영양과 건강, 과학적 근거 등을 일본취반협회가 여는 이틀짜리 연수에서 배운 뒤 필기와 시식 시험에 합격해야 한다.
◆해외 식당 종사자 교육=일본은 지난해 해외 일본 음식점에 대한 교육 서비스를 제공하기 시작했다. 첫 대상지는 일식당 600여 개가 있는 중국 상하이. 상하이 음식점협회 일본요리전업위원회가 관리 차원에서 일본식 강습회를 시작한 것이 지난해 4월이다. 강습의 이름은 '화(和)의 기본'. 도마와 칼 관리, 냉장고의 온도, 식자재 관리 등 기법을 현지인 식당 경영자와 요리사들에게 전수했다. “일본 음식을 전 세계에 확산시키는 열쇠는 위생 관리”라는 게 협회의 입장이다. JRO에 따르면 전 세계 4만 개가 넘는 해외 일식당 가운데 일본인 요리사가 있는 곳은 20% 정도다.
특별취재팀 : 팀장=채인택 피플·위크앤 에디터, 홍콩·뉴욕·도쿄·파리=최형규·남정호·김동호·박소영·전진배 특파원
유지상·권혁주·이도은 ·이영희·전수진·송지혜·한은화 기자, 사진=권혁재 전문기자
중앙일보 & Joins.com
“해외 요리 프로서 뛸 엔터테이너 셰프 키워야”
-한식 세계화를 시도하면서 원칙이 있다면.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라고 믿고 싶지만, 현실은 가장 세계적인 것이 한국적인 것이 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두바이에서 음식 축제를 할 때 아귀찜을 냈는데 아무도 안 먹더라. 빨간 색깔부터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다고 하더라. 그래서 음식에는 문화적 접근성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다가가기 쉬워야 한다. 나는 국가와 지역에 따라 한식을 20% 정도 변형해서 내놓는다. 예로 돌나물에 사과식초를 써서 샐러드를 만들었다. 누가 그것을 외국 음식이라고 하겠는가.”
-외국인에게 어떤 한식이 잘 먹히나.
“잡채와 전 종류를 많이 내고, 불고기·갈비찜에 가끔 떡볶이도 낸다. 고추장 떡볶이도 해봤는데 잘 안 먹혀서 간장 떡볶이로 바꿨다. 닭강정, 생선조림 등 간장 베이스 음식을 많이 내는 편이다. 매운 음식도 가끔 내기는 하는데, 그렇게 좋아하는 것 같지 않다. 한식을 변형해 덜 맵게 만드니 외국인들이 좋아했다. 예로 닭고기 초고추장 샐러드를 만든 뒤 소면을 튀겨서 넣고 콩나물과 오이를 곁들여 덜 맵게 했더니 잘 먹더라. 이젠 불고기와 김치를 넘어 외국인의 입맛에 맞는 국가대표급 한식 요리를 창의적으로 개발해야 한다.”
-김치와 불고기 말고 어떤 음식이 있을까.
“한식을 바탕으로 현지 식사 방식에 맞춰 변형하면 수많은 음식이 경쟁력을 새롭게 얻을 수 있다. 예를 들어 비빔밥을 김밥처럼 롤로 만드는 방법이 있겠다. 김에 고추장을 깔고 비빔밥을 얹은 뒤 계란 올리고 말면 전 세계 어디에 내놔도 맛·건강·모양·색깔·식감에서 나무랄 데 없는 요리로 인정받을 것이다. 서양 사람들이 더 잘 먹게 하고 싶으면 고추장에 칠리 마요네즈를 좀 섞어 강도를 조절하면 된다. 일본이나 태국 음식이 이런 식으로 세계화했다. 튀김이나 전도 통째로 내지 말고 썰어서 모양도 좀 내고 잣이나 참깨를 뿌려 장식을 하면 더 멋져 보일 것이다.”
-한식을 해외에 많이 알리려면.
“많은 외국인이 '왜 한국 음식 가르쳐 주는 유명 프로그램이 없느냐'고 묻는다. 태국 음식만 해도 서구 방송에서 하는 요리 프로그램이 꽤 있다. 우리가 그렇게 하려면 외국어가 되고 국제적으로 먹히는 엔터테이너 셰프가 있어야 한다. 팔리지도 않는 요리책을 외국어로 만들어서 내놓을 게 아니라 재미있는 요리 오락 프로그램을 영어로 만들어 세계에 돌리는 게 더 효과적일 것이다. 유명 외국 방송의 광고시간을 15초만 사서 한식에 관한 자료를 내보내면 큰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 한국 관광도 홍보하는데, 음식은 왜 안 하나.”
특별취재팀 : 팀장=채인택 피플·위크앤 에디터, 홍콩·뉴욕·도쿄·파리=최형규·남정호·김동호·박소영·전진배 특파원
유지상·권혁주·이도은 ·이영희·전수진·송지혜·한은화 기자, 사진=권혁재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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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식과의 인연은.
“대학 시절 뉴욕 근처에서 한식당에서 비빔밥을 먹고 반했다. 김치의 강한 맛도 좋았다. ”
-한식 요리는 자주 하나.
“한식 재료를 구하기 어렵고 조리 과정도 복잡해 자주 해먹진 못한다. 쉽고 수준 있는 한국 요리책을 뉴욕에선 구할 수 없다. 태국이나 일본·중국 음식처럼 요리쇼에 한식이 자주 등장하면 도움이 될 것이다.”
-뉴욕의 한식당에 자주 가나.
“자주 다닌다. 괜찮은 곳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대부분 바비큐(불고기)를 하는 곳이어서 항상 매캐한 연기가 가득 차 있어 느낌이 별로다. 갈 때마다 꼭 내가 바비큐 되는 거 같은 느낌이랄까. 또 다른 문제는 메뉴가 천편일률적이라는 점이다. 바비큐 ·김치·잡채, 어떤 곳은 스시도 함께 취급하더라. 김치와 불고기 외에 외부에 잘 알려지지 않은 맛있는 한국요리를 보고 싶고 맛보고 싶다.”
-일본 음식이 세계화에 성공했는데.
“뉴욕 주민들은 일식은 건강에 좋고, 한식은 기름지고 무겁다고 느낀다. 한식에 대한 이런 이미지를 바꾸고 다양화하는 게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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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채인택.최형규.남정호.김동호.박소영] 프랑스 파리의 부자 동네인 16구 파시 광장 부근의 한국 음식점 '우정'은 한국 음식과 잘 어울리는 포도주를 손님들에게 제공해 호평을 받고 있다. 1994년 문을 연 우정의 조만기 대표는 180여 종, 8000여 병의 와인을 갖추고 손님들에게 개별 한식 요리에 어울리는 것을 권한다.
부르고뉴의 유명 와이너리인 도멘 몽 뤼상의 장 마르크 뒤플뢰르 사장이 찾아오자 명란젓과 보르도의 소비뇽 품종으로 빚은 화이트 와인에 이어 모듬전과 부르고뉴산 레드 와인, 돼지불고기와 랑그독 루시옹산 레드 와인을 곁들여 식사를 대접했다. 뒤플뢰르는 “한국 음식이 프랑스산 와인과 이렇게 잘 어울리는지 처음 알았다”며 만족해했다.
해외에서 성공한 한식당 대표들이 말하는 공통적인 요인의 하나가 포도주다. 술과 함께 식사를 하는 경우가 많은 서양인에게 한식과 어울리는 포도주를 찾아주고, 주류사회에서 인정할 정도의 훌륭한 포도주를 갖춰 놓는 일은 식당이 고급으로 인정받기 위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현지화의 기본이 포도주 컬렉션인 것이다.
조 사장은 프랑스인 소믈리에들과 교류하면서 와인과 한국 음식의 궁합을 연구했다. 그는 “다양한 향이 나는 한국 음식은 묵직한 느낌을 주는 코트 뒤 론이나 라 발레 뒤 론 쪽의 시라 품종이 대체로 잘 어울린다”고 말했다. 매운 음식에는 알자스 지방의 화이트 와인을 시원하게 내면 프랑스 손님들이 만족스러워한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특히 5∼6년마다 한 번씩 빚는 알자스의 캥테쇠스 드 그랭 노블 같은 와인은 미슐랭 가이드에서 별 두세 개를 받는 프랑스 최고급 식당에서도 보기 힘들다”고 자랑했다.
파리 15구에 위치한 한국 음식점 '권스 다이닝'에선 뚝배기 불고기와 대구 매운탕, 불고기와 돌솥 비빔밥에 맞는 포도주를 권해 주고 있다. 권스 다이닝의 권유철 사장은 “홍어회 무침이나 매운 갈비찜과도 맞는 포도주가 있다”고 전했다.
오스트리아 빈에 있는 한식당 킴코흐트의 김소희 대표는 자신과 남편이 소믈리에인데도 젊은 소믈리에를 직원으로 고용까지 하고 있다. 소믈리에인 타마라 빌트는 “깔끔한 맛의 오스트리아산 와인이 한국 음식에 잘 맞는 편이라 음식 종류에 맞춰 다양하게 권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김 대표가 수많은 포도주를 시음하다 매운 맛의 한식과 잘 어울리는 포도주를 빈 근처의 포도원에서 발견해 '아시아'라는 브랜드를 붙이기까지 했다”고 소개했다.
특별취재팀 : 팀장=채인택 피플·위크앤 에디터, 홍콩·뉴욕·도쿄·파리=최형규·남정호·김동호·박소영·전진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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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갈비 레스토랑을 내겠다. 오래전부터 생각하고 있었다. '크레이지 펑키 코리안 다이너(Crazy Funky Korean Diner)'라는 식당 이름도 미리 생각해뒀다. 서울 신촌의 왁자지껄한 닭갈비 식당 분위기를 그대로 가져갈 거다. 주요리인 닭갈비에 현지식 사이드 메뉴를 추가해 한식의 강렬한 맛과 느낌을 조금 '톤 다운'시키겠다. 이미 전통 한식을 바탕으로 많은 새로운 요리를 시도해 왔다. 최근 만들어본 '토끼도리탕'이 한 사례다. 닭도리탕의 양념과 조리 방식을 응용해 프랑스 요리에서 많이 쓰는 토끼 고기를 조리해봤다. 기가 막히게 맛있어서 주방 식구들이 모두 뼈까지 쪽쪽 빨아먹었다.
이와 함께 야심 차게 준비 중인 또 다른 프로젝트가 있다. 요리 이름은 '12가지 고급 한식 코스 요리'다. 자세한 사항은 극비지만 일부 공개한다면 테이스팅 플레이트(맛보기 상)에 각종 김치를 조금씩 맛볼 수 있도록 하고, 잡채부터 갈비까지 다양한 요리를 코스로 내는 것이다. 이를 위한 식기 디자인부터 하고 있다. '한국 음식을 서양식으로 내는 것(Korean food in Western presentation)'이 비밀의 열쇠다.
서양식 불고기 식당 종업원 영어 잘해야
'코리안 다이너(The Korean Diner)'라는 이름으로 서양식 불고기 식당을 열겠다. 테이블마다 숯불구이를 할 수 있는 도구를 갖추고, 불고기·갈비·닭고기를 각각 다른 소스에 재워 내놓아 손님들이 직접 구워먹을 수 있도록 하겠다. 국수와 밥, 한국식 샐러드(나물)도 제공하겠다. 쌀밥과 잡곡밥을 고루 준비해 건강에 신경 쓰는 손님들의 눈높이에 맞추겠다. 중요한 건 김치인데, 서양이라는 점을 고려해 순한 맛의 물김치나 아삭아삭한 오이소박이에 주력할 거다.
맛이 강한 김장 김치도 조금은 곁들이겠다. 하지만, 젓갈이 많이 들어간 김치는 배제하겠다. 김치는 적응 기간이 필요한 음식이기 때문이다.
메뉴엔 지역명 넣고 강한 냄새는 없앨 것
한국 음식은 풍부한 지역색이 매력적이다. 지역마다 독특한 음식이 있고, 개성있는 양념과 맛내기 비결도 있더라. 전통주도 지역마다 특색이 있다. 이걸 적극 활용해야 한다. 예로 '안동 스타일 산적 요리' '전주 스타일 비빔밥' '무안 스타일 갈비 요리' 등등의 코스요리를 만들고, 음식에 얽혀 있는 재미있는 이야기를 곁들여 제공하겠다.
수많은 나라의 레스토랑을 겪어봤지만 한국만큼 음식의 지역적 특성이 뚜렷한 나라는 그리 많지 않았다. 이를 최대로 살려 다양화하는 게 한식당이 외국에서 성공하는 비결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자갈치시장 할머니의 초고추장 맛도 좋아한다. 이 개성 있는 소스는 세계 어디에 내놔도 손색 없는 맛이다. 이런 다양한 맛을 활용해 한국의 팔도 코스요리를 낸다면 그 맛에 수많은 외국인이 매료될 것이다. 한식의 가장 큰 약점은 냄새다. 김치나 청국장의 냄새는 너무 강해 처음 접하는 외국인에게 거부감을 줄 수 있다. 식당의 통풍 시스템을 획기적으로 개선하 는 등 해결 방법을 궁리해야겠다.
특별취재팀 : 팀장=채인택 피플·위크앤 에디터, 홍콩·뉴욕·도쿄·파리=최형규·남정호·김동호·박소영·전진배 특파원
[중앙일보 채인택.최형규.남정호.김동호.박소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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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예영준.정용수] 외교관들에게는 밥 먹는 것도 업무의 연장이다. 공식 협상으로 풀리지 않는 난제들이 식사 테이블에서 풀리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고유의 맛과 멋이 담긴 한식은 훌륭한 외교의 수단이다. 국력의 요소로 군사력과 경제력 못지않게 문화의 힘과 매력(소프트파워)이 강조되는 시대엔 더욱 그렇다. 지구촌 구석구석까지 109개국 153개 공관에 파견된 우리 외교관들은 한식 세계화의 첨병인 셈이다.
◆한식은 훌륭한 외교 자원=2006년 6월 이태식 주미대사는 마이크 조핸스 미 농무장관을 관저로 초대했다. 미국산 쇠고기에서 뼛조각이 발견돼 수입 물량 전체를 반송한 일로 한·미 관계가 경색됐던 때였다. 이 대사는 불고기 등 한식을 차린 식탁에서 조핸스 장관에게 한국 입장과 정서를 설명했다. 당시 농무관으로 배석했던 김재수 농촌진흥청장은 “험악하던 분위기가 만찬을 계기로 누그러졌다”며 “미국의 무역 대응 조치를 막는 데 한식 접대가 일조한 셈”이라고 회고했다.
양성철 전 주미대사는 재직 당시 관저에서 직접 담근 김치를 콜린 파월 전 국무장관에게 몇 차례 선물로 보냈다. 파월 장관이 1970년대 동두천에서 주한미군 대대장으로 근무한 시절부터 한국 음식을 좋아하는 것으로 소문나 있었기 때문이다. 파월이 뜻밖의 선물에 감사를 표시해 왔음은 두말할 나위 없다.
한식 접대를 외교 자원으로 활용하는 건 주일 대사관도 마찬가지다. 특히 한류 붐이 거센 2004년 이후엔 관저 접대가 더욱 빈번해졌다. 주일 대사관 근무 경력을 가진 외교부 간부는 “아소 다로 총리는 현직 외상 재직 중일 때를 포함해 여러 차례 우리 대사관저로 와서 식사를 하며 친분을 돈독히 했다”고 말했다. 파나마 대사를 역임한 문태영 외교부 대변인은 “한국산 홍삼의 위력으로 파나마 정부가 발주한 구급차 40대와 이동 진료차 등 300만 달러어치의 수출 실적을 올린 일이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부통령 겸 외무장관이 감기가 들었다는 말을 듣고 홍삼을 선물한 적이 있는데 어느새 파나마 정계 인사들 사이에 소문이 파다하게 퍼져 홍삼을 구해 달라는 부탁을 여러 차례 받았다”며 “그렇게 맺은 인맥으로 외교 활동에 큰 도움을 받았다”고 말했다.
◆재외 공관은 한식 세계화의 전진기지=김성은(46) 외교부 통상진흥과장은 “캐나다 정부가 주관한 오타와 튤립 축제기간에 한식 부스를 별도로 운영한 것을 비롯해 일본·브라질·홍콩 등 지난해 20여 곳의 재외 공관에서 한식 홍보 행사를 열었는데 준비한 음식이 일찌감치 동날 정도로 반응이 좋았다”고 전했다. 김 과장은 “올해는 멕시코·콜롬비아·두바이·이집트 등으로까지 확대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김홍우(54) 농림수산식품부 식품산업진흥팀장은 “농림부와 외교부·문화체육관광부·무역협회 등이 지난달 협의회를 열고 한식 수출에 힘을 모으기로 했다”며 “2012년 농식품 100억 달러 수출이 목표”라고 말했다.
◆한식은 훌륭한 외교 자원=2006년 6월 이태식 주미대사는 마이크 조핸스 미 농무장관을 관저로 초대했다. 미국산 쇠고기에서 뼛조각이 발견돼 수입 물량 전체를 반송한 일로 한·미 관계가 경색됐던 때였다. 이 대사는 불고기 등 한식을 차린 식탁에서 조핸스 장관에게 한국 입장과 정서를 설명했다. 당시 농무관으로 배석했던 김재수 농촌진흥청장은 “험악하던 분위기가 만찬을 계기로 누그러졌다”며 “미국의 무역 대응 조치를 막는 데 한식 접대가 일조한 셈”이라고 회고했다.
양성철 전 주미대사는 재직 당시 관저에서 직접 담근 김치를 콜린 파월 전 국무장관에게 몇 차례 선물로 보냈다. 파월 장관이 1970년대 동두천에서 주한미군 대대장으로 근무한 시절부터 한국 음식을 좋아하는 것으로 소문나 있었기 때문이다. 파월이 뜻밖의 선물에 감사를 표시해 왔음은 두말할 나위 없다.
한식 접대를 외교 자원으로 활용하는 건 주일 대사관도 마찬가지다. 특히 한류 붐이 거센 2004년 이후엔 관저 접대가 더욱 빈번해졌다. 주일 대사관 근무 경력을 가진 외교부 간부는 “아소 다로 총리는 현직 외상 재직 중일 때를 포함해 여러 차례 우리 대사관저로 와서 식사를 하며 친분을 돈독히 했다”고 말했다. 파나마 대사를 역임한 문태영 외교부 대변인은 “한국산 홍삼의 위력으로 파나마 정부가 발주한 구급차 40대와 이동 진료차 등 300만 달러어치의 수출 실적을 올린 일이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부통령 겸 외무장관이 감기가 들었다는 말을 듣고 홍삼을 선물한 적이 있는데 어느새 파나마 정계 인사들 사이에 소문이 파다하게 퍼져 홍삼을 구해 달라는 부탁을 여러 차례 받았다”며 “그렇게 맺은 인맥으로 외교 활동에 큰 도움을 받았다”고 말했다.
◆재외 공관은 한식 세계화의 전진기지=김성은(46) 외교부 통상진흥과장은 “캐나다 정부가 주관한 오타와 튤립 축제기간에 한식 부스를 별도로 운영한 것을 비롯해 일본·브라질·홍콩 등 지난해 20여 곳의 재외 공관에서 한식 홍보 행사를 열었는데 준비한 음식이 일찌감치 동날 정도로 반응이 좋았다”고 전했다. 김 과장은 “올해는 멕시코·콜롬비아·두바이·이집트 등으로까지 확대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김홍우(54) 농림수산식품부 식품산업진흥팀장은 “농림부와 외교부·문화체육관광부·무역협회 등이 지난달 협의회를 열고 한식 수출에 힘을 모으기로 했다”며 “2012년 농식품 100억 달러 수출이 목표”라고 말했다.
◆이런 점은 개선해야=외교관들은 그러나 한식 세계화를 위해선 과제들이 적지 않다고 지적한다. 최형찬 재외공관담당 과장은 “일본은 1970년대부터 외무성이 정책적으로 대사관 전속 요리사를 파견해 일식 세계화에 큰 보탬이 됐다”며 “우리는 예산의 제약으로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제대로 된 한식 요리책을 외국어로 만들어 전파하는 것도 시급하다. 한 외교관 부인은 “한식을 맛본 외국인이 집에서 만들어 먹고 싶으니 요리책을 소개해 달라는 부탁을 받고도 대답을 못해 무안한 적이 있다”고 말했다.
해외에서 한국 음식에 쓸 재료 구입이 힘든 것도 고충이다. 대사를 지낸 한 외교부 간부는 “선배 외교관의 부인이 70년대 유럽의 한 야채가게에서 무청을 사러 갔다가 상점 주인에게 '토끼를 많이 키우나 보죠'라는 얘기를 들었다는 일화도 있다”며 “최근 한식에 대한 인식이 좋아지고 수요도 느는 만큼 농수산물유통공사 등을 활용해 한식 재료 보급망을 개척하는 것도 절실하다”고 말했다.
예영준·정용수 기자
중앙일보 & Joins.com
재외 공관 안주인들 경험담 [중앙일보]
“김치에 한번 맛들이면 계속 찾아”
“한식 레시피 계량화해야 세계화”
대사관저에서 독일 외교관들을 초청해 만찬을 열 때면 항상 불고기·잡채·김치는 넉넉하게 준비했다. 항상 제일 먼저 접시가 비워져 나중에 모자라 당황하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2003∼2005년 독일 대사를 지낸 권영민 전 대사의 부인 황문숙(62)씨가 전하는 경험담이다. 한식을 지구촌에 전파하는 첨병은 해외 공관의 안주인들이다. 한식을 대접하는 공관 만찬은 한식 품평회이자, 외교관 안주인들은 한식에 대한 세계인의 반응을 최일선에서 접하는 감별사들이다. 이들에 따르면 불고기·잡채 등 대표적인 한식 메뉴는 이미 세계화돼 있다. 김중근 주싱가포르 대사의 부인 오향애(54)씨는 “싱가포르에선 ‘불고기’나 ‘비빔밥’은 따로 설명을 달 필요가 없는 고유명사”라고 말했다.
신각수 외교통상부 제2차관(전 유엔대표부 차석 대사)의 부인 홍소선(51)씨는 “한식의 또 다른 경쟁력은 발효식·건강식에 있다”며 “발효 음식은 처음엔 낯설어도 일단 익숙해지면 중독성이 있어 김치에 맛들인 외국인들은 계속 찾게 된다”고 말했다. 또 “뉴욕 시절 숙주나물을 대접하니 웰빙 푸드라며 채식주의자는 물론 육식을 즐기는 사람들까지 반응이 괜찮았다”고 기억했다. 황문숙씨도 “독일 대사관 시절 만찬 뒤 김치를 싸달라는 독일인들이 많아 아예 따로 포장을 해서 나눠줬다”고 소개했다.
한식의 세계화엔 한계도 여전하다. 홍소선씨는 “전도 꽃무늬를 내서 부친 뒤 전통 식기에 담아 내면 시각적으로 느끼는 맛이 달라진다”며 “일본 스시가 처음엔 서구인들에게 ‘날것’이라는 거부감을 불러일으켰지만 보는 멋으로 상류층 메뉴로 자리 잡은 게 대표적 사례”라고 지적했다. 맛만 아니라 멋까지 챙겨야 지구촌 음식으로 대접받는다는 것이다.
경험과 감에 의존하는 조리법도 세계화의 장애물이다. 추규호(전 시카고 총영사)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장의 부인 송정원(50)씨는 “예컨대 ‘데친다’는 표현은 몇 그램, 몇 티스푼을 따지는 외국인들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며 “한식의 세계화에는 레시피(조리법)의 계량화가 필수적”이라고 조언했다. 가령 몇 도의 물에 몇 초 동안 담가야 하는지를 설명하지 않으면 외국인이 따라 할 수 없다는 것이다. 황문숙씨는 “음식엔 한국 문화도 담아야 한다”며 “독일 외교관들에게 은수저를 소개하며 ‘옛날 한국 임금님들이 식사 때 은수저로 음식의 독성을 파악했다’고 설명하면 ‘그런 게 있었느냐. 재미있다’며 고개를 끄덕거리곤 했다”고 말했다.
현지인의 기호와 음식 문화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것도 중요하다. 송정원씨는 “(시카고) 공관 만찬 때 수정과·식혜를 냈는데 톡 쏘는 콜라에 적응한 외국인들에게 통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홍소선씨도 “이스라엘에선 코셔(유대교 율법에 따른 음식)를 지키는 정통파 유대인들은 돼지고기가 조금만 들어가도 손대지 않더라”고 기억했다.
채병건·정용수 기자
2003∼2005년 독일 대사를 지낸 권영민 전 대사의 부인 황문숙(62)씨가 전하는 경험담이다. 한식을 지구촌에 전파하는 첨병은 해외 공관의 안주인들이다. 한식을 대접하는 공관 만찬은 한식 품평회이자, 외교관 안주인들은 한식에 대한 세계인의 반응을 최일선에서 접하는 감별사들이다. 이들에 따르면 불고기·잡채 등 대표적인 한식 메뉴는 이미 세계화돼 있다. 김중근 주싱가포르 대사의 부인 오향애(54)씨는 “싱가포르에선 ‘불고기’나 ‘비빔밥’은 따로 설명을 달 필요가 없는 고유명사”라고 말했다.
신각수 외교통상부 제2차관(전 유엔대표부 차석 대사)의 부인 홍소선(51)씨는 “한식의 또 다른 경쟁력은 발효식·건강식에 있다”며 “발효 음식은 처음엔 낯설어도 일단 익숙해지면 중독성이 있어 김치에 맛들인 외국인들은 계속 찾게 된다”고 말했다. 또 “뉴욕 시절 숙주나물을 대접하니 웰빙 푸드라며 채식주의자는 물론 육식을 즐기는 사람들까지 반응이 괜찮았다”고 기억했다. 황문숙씨도 “독일 대사관 시절 만찬 뒤 김치를 싸달라는 독일인들이 많아 아예 따로 포장을 해서 나눠줬다”고 소개했다.
한식의 세계화엔 한계도 여전하다. 홍소선씨는 “전도 꽃무늬를 내서 부친 뒤 전통 식기에 담아 내면 시각적으로 느끼는 맛이 달라진다”며 “일본 스시가 처음엔 서구인들에게 ‘날것’이라는 거부감을 불러일으켰지만 보는 멋으로 상류층 메뉴로 자리 잡은 게 대표적 사례”라고 지적했다. 맛만 아니라 멋까지 챙겨야 지구촌 음식으로 대접받는다는 것이다.
경험과 감에 의존하는 조리법도 세계화의 장애물이다. 추규호(전 시카고 총영사)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장의 부인 송정원(50)씨는 “예컨대 ‘데친다’는 표현은 몇 그램, 몇 티스푼을 따지는 외국인들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며 “한식의 세계화에는 레시피(조리법)의 계량화가 필수적”이라고 조언했다. 가령 몇 도의 물에 몇 초 동안 담가야 하는지를 설명하지 않으면 외국인이 따라 할 수 없다는 것이다. 황문숙씨는 “음식엔 한국 문화도 담아야 한다”며 “독일 외교관들에게 은수저를 소개하며 ‘옛날 한국 임금님들이 식사 때 은수저로 음식의 독성을 파악했다’고 설명하면 ‘그런 게 있었느냐. 재미있다’며 고개를 끄덕거리곤 했다”고 말했다.
현지인의 기호와 음식 문화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것도 중요하다. 송정원씨는 “(시카고) 공관 만찬 때 수정과·식혜를 냈는데 톡 쏘는 콜라에 적응한 외국인들에게 통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홍소선씨도 “이스라엘에선 코셔(유대교 율법에 따른 음식)를 지키는 정통파 유대인들은 돼지고기가 조금만 들어가도 손대지 않더라”고 기억했다.
채병건·정용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