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매일 매 순간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제가 가장 좋아하고 가장 강조하는 '지금 이 순간' 이 글을 쓰면서도 생각나는 게 있습니다. [엊그제 환율이 좀 떨어지길래 바로 딸라 환전을 좀 했거든요. 내일이면 다시 오를 거야 하면서 나름 선방을 했다 생각했는데, 뭡니까 이게 3일 연속 하락하고 있네요. 이래서 저는 똥 손인가 봅니다.]라는 생각을 하면서 이 글을 시작하고 있습니다.

생각을 하고 나니 감정이 듭니다. AC 그냥 모르는 척 내버려 둬볼 걸 하루에 1%씩 빠졌으니 환율로만 3%가 빠졌네. 주식도 아니고 나 이거 참.. 하면서 아쉬운 마음이 드네요. 이때 드는 마음은 생각일까요? 감정일까요?

생각을 하다 보니 감정이 생기는 걸까요? 아니면 감정이 들어서 생각으로 가게 되는 걸까요? 이 두 가지가 요즘 명상의 주제인 것 같아요.

쉽게 말해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의 논리가 적용될 수도 있겠네요. 우리가 하루에 생각하는 것들이 가지 수로 따지면 수만 가지라고 하네요. 그걸 누가 카운트해봤겠어요 1분에 생각하는 것들에 대한 평균치를 내 본 것이겠지요. 꿈에서 꾸는 내용들은 생각일까요? 아니면 그 무엇일까요? 사실 완전 관련 없는 것들에 대한 꿈도 꾸지만 말 그대로 개꿈, 저 같은 경우는 대부분 아는 공간, 아는 사람들이 많이 나와요. 그렇다면 머릿속에 묻혀있던 생각들이 수면 중에 슬며시 나오는 건 아닌지 싶기도 해요. 그러면서 감정까지 들어가면 놀라서 깨기도 하고, 기분 좋게 꿈을 되새김질하기도 하고 그러지 않나요?

그렇게 따지고 보면 생각이 먼저 일어나고, 그 생각으로 말미암아 감정이라는 게 일어나는 것 같기도 한데요

반대로 뜬금없다는 말 있잖아요. 그저 아무런 일도 없는데 뜬금없이 드는 감정 한 번씩 느껴보셨을 거 같은데요. 그냥 아무 이유 없이 화가 나고, 아무 이유 없이 웃음이 나고, 그럴 때 생각이 들게 됩니다. 내가 왜 기분이 화가 나지? 아무 일도 없는데. 내가 왜 기분이 좋지? 좋을 일이 없는데 하면서 감정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런 경험 있나요?

저는 반백년 살아가다 보니 꽤나 그런 경험이 있고, 명상을 하면서는 더 많은 경험을 하게 된 거 같아요. 항상 말씀드리지만 명상이 어떠한 경험을 하는 과정은 아니에요. 바라보다 보니 내가 이런 감정과 생각을 가지고 있구나를 보게 될 뿐이지요.

이렇게 주저리 생각과 감정에 대해 이야기를 쓰고 있지만, 무엇이 먼저인지는 결코 중요하지 않다는 나름의 결론을 내리고 있습니다. 굳이 따지자면 생각이 먼저 들어서 그 생각으로 감정이 좋아지고, 상하고 그런 경험이 더 많기는 하지만, 생각이 나 감정이나 그저 그대로 바라보고 보낼 수 있다면 무엇이 먼저인지 그건 중요하지 않다고 봅니다.

남자들 흔히 가을 탄다고 하잖아요. 여자들은 봄을 탄다고 하는 거 같기도 하고, 암튼요 그거 계절의 변화에 따른 온도 변화로 인한 인체의 호르몬이 변하면서 일시적으로 생기는 증상의 일부라고 하네요. 저도 가을 탑니다. 같은 하늘을 봐도 뭔가 가슴이 공허한 느낌, 같은 햇살인데 가을 햇살은 뭔가 고독한 느낌, 같은 비가 내려도 봄비와 가을비는 다른 느낌. 뭐 많은 감정들이 있겠지요

이러한 감정들이 들면 사람들은 그에 맞는 생각이 나 과거의 경험을 돌이키곤 합니다. 이럴 때는 감정이 먼저이겠네요. 그러니 빈도의 차이지 뭐가 먼저인지 중요한 게 아니라 그 생각과 감정을 그저 바라보고 보낼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합니다.

생각이 든다고 생각에 파묻혀서 그 생각이 다른 생각을 가지고 오는 꼬리에 꼬리를 물게 하지 말고, 그 생각으로 인해 드는 감정이 좋다고 해서 그 감정이 놓기 싫어서 붙잡으려 하지도 말고, 그 생각으로 인해서 화가 난다고 해서 빨리 떨쳐버리려고 머리를 흔들지도 마시길 바랍니다. 그럴수록 더 안 떨어져 나갑니다. 붙잡고 싶은 건 빨리 떨어져 나가 거 떨어뜨리려고 하는 것은 의외로 한참을 붙어 있습니다. 굳이 아인슈타인을 들먹거리지 않아도 충분히 알 것입니다.

이렇게 글을 쓰고 나면 제가 생각해 왔던 것도 정리가 되고, 혹여나 어느 누군가에게는 일말의 도움이 될 수도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생각으로 시작해서 생각으로 글을 마무리하고 있는데요. 생각은 당연히 하고 살아야 합니다. 간혹 우둔하신 분들이 상대방에게 '생각 좀 하고 살아'라는 말을 하는데, 생각 다 하고 살아갑니다. 정도의 차이일 뿐입니다.

마무리이자 다시 한번 강조 드리자면 생각을 하시되 붙잡으려 하지 마시고, 떨치려고 하지 마세요. 강물 흐르듯 그저 지나가게 해주세요. 생각이 흐르지 않고 자꾸 머물기만 한다고 생각이 되어도 그저 바라보세요. 강물이 멈춰 있는듯해도 항상 흐르고, 생각이 멈춰 있는듯해도 지나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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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말을 처음 보고 들었던 순간이 생각납니다. 위의 문구에 의하면 이 또한 지나가고 없는 것이지만, 우리의 마음은 하드디스크처럼 리셋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기억을 못한다고 하는것은 기억을 못하는 것이 아니라 어딘가에는 숨겨져 있는데 의학적, 과학적으로 찾아내지를 못할 때 기억을 못한다고 합니다.



의학, 과학을 운운하자고 정초부터 글을 쓰는건 아닙니다. 요즘 그레이 아나토미 다시보기를 하고 있어서 의학에 더 관심이 많아지고는 있기는 합니다. 그러나 새해 이튿날에 쓰고 싶은 이야기는 지금을 살고자 하는 것입니다.



지금이 아니면 도대체 언제란 말인가요는 제 기억에 의하면 어느 명상가가 이야기를 하였고, 그걸 많은 작가들이 책에 옮겨 적은 문구 입니다. 머리로는 쉽게 이해가 되는데 마음으로 몸으로 참 이해하기 어려운 말입니다.



우리가 빈번하게 사용하는 생각이나 대화중에는 앞으로, 언젠가 이런것들이 많이 들어갑니다. 그 예전 이상은 씨의 노랫말 중에 "언젠가는 우리 다시 만나리 ~" 참 좋아 했습니다. 그리고 가끔 복수영화에서는 "언젠가 꼭 되갚아 주겠어" 이 둘다 언젠가 라는 단어를 사용하네요.



반대로 녹색지대의 노랫말중에 "지난시절 내곁에서 멀어진 ~" 의 노래가 있고, 마찬가지로 드라마 대사중에 단골도 나오는 것이 바로 "지난 과거를 잊지 않을 겁니다" 여기도 둘다 지난 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네요



우리가 바라는 언젠가와 지난은 무엇일까요 ? 사실 언젠가의 일이나, 지난일을 변화를 바란다는 자체가 우스운 이야기 입니다. 왜 우습냐고요 ? 자신한테 한번 물어보세요.



1초후의 일을 알수 있습니까 ? 아마도 대부분 알수 있다고 합니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벌써 수 초가 지나가고 있으니까요 ? 그렇다면 1분후의 일은요 ? 아마도 알수 있다고 하겠지요 ? 그럼 한시간후의 일도 하루후의 일도 알수 있겠습니까 ? 이제부터 대답이 흐려질겁니다.



1초후도 미래고, 1년후도 미래입니다. 그 미래가 바로 언젠가 입니다. 바랄수 있습니까 ?



반대로, 1초전의 일을 알수 있습니까 ? 1분전의 일을 알수 있습니까 ? 아마도 안다고 하겠지요 ? 만일 이걸 모른다고 하면 거짓이거나 아니면 의학적인 조언을 얻어야 할 상황입니다. 그럼 한시간 전의 일도, 하루전의 일도 알수 있겠습니까 ? 이제부터 대답이 흐려질겁니다. 아는것도 모르는것도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이것은 아는것이 아니라 경험에 대한 기억입니다.



1초전도 과거고, 1년전도 과거입니다. 그 과거가 바로 지난 입니다. 변화시킬수 있겠습니까 ?


위의 글들이 바로 머리로 아는 것들입니다. 머리로는 당연히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마음으로 몸으로는 어떻게 이를 알아가야 할까요 ? 지금 안에 살려고 노력하면 되지 않을까 합니다. 지금을 시간적으로 정의할수 있겠습니까 ? 지금은 몇시입니까 ? 라고 묻는다면 우리가 말하는 그 시간은 지금입니까 ? 과거입니까 ? 미래입니까 ?


지금에는 시간이 없습니다. 그것은 과거일수도 있고, 미래일수도 있지만, 지금일수는 없습니다. 그러니 시간은 허상이며, 동시에 우리와의 약속일뿐입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은 그저 지금입니다.

우리는 수많은 걱정과 생각을 하고 삽니다. 생각을 안하고 사는 시간은 없다고 합니다. 심지어 꿈속에서도 생각을 하니까 말입니다. 생각에는 마찬가지로 과거의 생각이 있고, 미래의 생각이 있습니다. 여기서 또 등장하는 지금입니다. 지금을 생각할수 있습니까 ? 개인적으로 포지션의 애수 를 너무나 좋아합니다. 10년전에도 들었고, 지금도 듣고 있습니다. 10년전 mp3 음원 그대로 듣고 있습니다. 10년전에 애수를 듣고 있을 시절에 들은 애수와, 지금 듣고 있는 애수와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 아마 살아 있다면 10년후에도 이 음악을 들을겁니다.



과거에 무엇을 했고, 미래에 무엇을 할것인가에 대한 생각은 우리에게 건설적일수도 있습니다. 옛것에서 배울수도 있고, 그 배움을 가지고 미래에 발전을 가져올수도 있으니까요 ? 그 건설적인 과거와 미래를 오가는 시점이 바로 지금입니다.



그 지금에 부정적이고 암울한 생각으로 과거와 미래를 오가는 것은 서글픈 일입니다. 생각으로도 서글픈데 몸과 마음까지 서글퍼 지는 이유입니다.



생각없이 지금을 살라는 것은 아마도 아니었을겁니다. 그 분이 지금을 이야기 했을때는 말이지요. 생각이 없다는 것은 신의 경지입니다. 그렇게 살수 없거든요. 생각하는 지금을 바라볼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럼 자신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보일것 같습니다. 생각이 우리를 송두리째 잡아먹기 전에 그저 우리가 생각을 봐주었으면 합니다.


그건 지금에만 가능 한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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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히 기억합니다. 어린시절 서점 응모에서 선물로 받은 #어린왕자 그저 그림책인줄 알았는데 그안에서 30여년이 훌쩍 지난 지금까지도 간직하는 문구를 발견합니다. 이제는 너무나도 유명한 그 글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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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4시에온다면나는3시부터행복해지기시작할거야 .
그간 수십권의 개정판을 봐오면서 여전히 그 페이지를 펼칠때면 가슴이 설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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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기다리고있다면복입니다
#누군가를기다리고있다면행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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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왕자가 가르쳐준 그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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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한해는 100km 걷기로 시작을 했습니다. 오래된 친구들 셋이 사흘동안 매일 걸었네요. 걷는다는 것은 그저 걷는게 아닙니다. 무의식의 걸음은 그저 신체의 노화만 불러옵니다. 걷는다는 그 순간을 알아차리고 걸어야 합니다.

그러다보면 순간순간 눈이 아닌 마음으로 주변이 보이게 됩니다. 그 순간을 위해 걷고, 또 걷습니다.

#누군가안부를물었다 #걷기여행 #산책여행전문가 #마당여관남주인 #걷는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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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는 것을 보기만 하고,

들리는 것을 듣기만 하고,

느끼는 것을 느끼기만 하고,

인식하는 것을 인식하기만 한다면,

그대는 그것과 함께하지 않을 것이다.

그것과 함깨하지 않을때 거기에는 그대가 없다.

거기에 그대가 없을때 

그대에게는 이 세상도  없고. 저 세상도 없고,

그 둘 사이의 어떤 세상도 없다.

이것이 고통의 소멸이다


[우다나 자설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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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가실것을 알고 있었지만, 막상 가시고 나니 그 허탈함이 이루 말할수가 없습니다.


가시고나서 후회할일 만들지 말자고 살아생전 가급적 최선을 다했지만, 막상 가시고 나니 더 할수 있었음을 알수가 있었습니다.


아파하는 엄마에게 “ 엄마 누구나 아프고, 누구나 생을 마감해야해” 라고 말을 하였지만, 막상 가시고 나니 엄마는 아니었었으면 하는 바램이 있었음을 알수가 있었습니다.


엄마가 가지고 간것은 엄마를 걱정하였던 나의 간사한 마음입니다. 그러나 막상 그 걱정이 없어지니 또한 허탈합니다. 


무엇이 없어지면, 마음이 편해지고, 행복해질거라 우리는 생각합니다. 그러나 막상 그 대상이 없어지는 것을 바라보세요. 그러면 뭐가 남는지를요. 마음이 편해지고 행복해지는것은 순간입니다. 곧 다시 돌아옵니다.


그러니 부디 어딘가 있지도 않을 그곳을 향해 세상을 살지 않을것입니다. 알아차릴수 있는 순간은 오직 지금 뿐입니다.


엄마의 육신은 떠나갔지만, 하루에도 몇통씩 전화를 걸어서 대화를 나누던 우리는 서로의 마음속에 남아 있습니다. 슬프지만 슬퍼하지 않습니다. 이 눈에서는 물이 흐리지만, 엄마의 눈에서는 웃음이 보입니다.


아픔속에서도, 섬망속에서도, 기력이 떨어져가는 상황에서도 아들을 보면 웃음을 주었던 당신의 마지막 웃음을 영원히 간직합니다.


“엄마 내가 누구야 ?”


“내 이름이 뭐야 ?”


정말 엄마만은 병상에서 가시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는데, 이런 물음을 엄마에게 할줄은 생각도 못했습니다.


간혹 눈을 뜨면 이야기 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아들”


몇일동안 물도, 밥도 못먹어서 혀가 말려들어간 상황에서도 가급적 또박또박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너무 누워만 있어서 허리가 아팠는지, 일으켜달라고 하는 엄마를 등뒤에서 한참을 안아주었습니다. 거친 숨을 내쉬는 엄마의 체온을 한 껏 느꼈습니다.


그렇게 안아주었던 그시간, 좀 더 희망을 가지고 치료를 하고자 내려간 중환자실에서 엄마는 더 이상 이승의 끈을 붙잡지 않았습니다. 중환자실로 내려간지 20분만에 그렇게 68년의 물리적 시간을 마치고, 이제 시간 없는 평온한 세상으로 여행을 떠났습니다.


우리는 울었지만, 엄마는 울지 않았고, 떠나는 모습은 아프지 않고 평온했습니다. 그러니 우리도 더이상은 울지 않아야 합니다. 그걸 알면서도 계속 눈물이 나옵니다. 얼마지 않아 우리도 곧 만나리라는 다짐을 하면서 육신의 형상과도 이별을 합니다.


이제는 재가 되어 흙과 어우러져 다시 우주에서 또 다른 역할을 하게된 엄마, 


나비가 되어 오시고,

꽃이 되어 오시고,

바람이 되어 오세요

 

몇해전 엄마는 아들이 살고 있는 제주도에 오셨네요.

저 하늘 어디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면서 둘은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손가락으로 가리키던 그곳으로 엄마는 먼저 떠났습니다.

이 아들도 열심히 살다가 함께 하겠습니다.

사는동안 삶을 알아차리면서 그리 살아가겠다고 약속합니다.

미워하고, 시기하고, 화내는 어리석은 삶이 아니라,

진정  이 안의 내가 바라고, 엄마가 바라는 삶으로 나아가겠습니다.

우리의 육신은 영원하지 않습니다.

엄마의 육신이 흙이 되었듯, 이 몸의 육신도 흙이 될것입니다.

그러나 마음만은 저 구름 너머의 환한빛으로 살아가겠습니다.

구름이 마음을  채울때는 빛이 있음을 알아차리고 살아가겠습니다.

 Rest in Peace M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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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 우리는, 아니 종종 자신이 맺고 있는 관계들에서 어떤 부분이 달라진다면 행복해질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바라는 이유는 관계를 통해서 행복해지고 싶기 때문입니다. 배우자를 바꾸거나 관계를 변화시키면 완벽해지고 행복해지리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실로 어리석은 생각입니다

우리의 행복은 상대방을 ‘더 좋게’ 바꾸는 곳에 달려 있지 않습니다. 진실은 이렇습니다. 우리는 상대방을 바꿀수 없으며, 바꾸려 해서도 안됩니다.

그들이 절대로 변하지 않으면 어떻게 할겁니까 ? 또 그들이 변할 생각이 없다며? 우리가 진정한 자신이기를 원한다면, 그들도 진정한 그들로 있도록 해주어야 하지 않을까요 ?

진정한 그들을 판단하는 것은 당신이 아닙니다. 그들입니다. 마찬가지로 진정한 나는 진정한 나만이 판단할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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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을 피할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드리는 대신
위험에 처했을 때 두려워 하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하게 하소서

고통이 사라지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대신
그 고통을 이겨낼 강인한 마음을 달라고 기도하게 하소서

삶의 전장에서 함께 싸울 동지를 갖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대신
내 자신이 힘을 갖게 해달라고 기도하게 하소서

불안한 마음으로 구원을 기다리는 대신
내 힘으로 자유를 찾을 인내심을 갖게 하소서

오직 성공에서만 당신의 자비를 느끼는 겁쟁이가 되는 대신
실패에서도 당신의 손길을 느낄수 있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라빈드라나스 타고르, [열매줍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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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죽음을 두려워 하고
죽음후에 지옥을 또 두려워 한다
그러나 막상 도착해 보면 낯설지는 않을것이다
이미 삶에서 많은 경험을 해본 곳이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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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막 태어났을때 당신을 울었고
온 세상은 기뻐했습니다
당신이 죽을때 제상은 울고
당신은 기뻐 할수 있는 그런삶을 사십시오

작자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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