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가 다시 재미있어집니다. 

 

왜 이 공부가 학창시절에는 그렇게 하기가 싫었었는지 모르겠습니다. 하나하나를 알아간다는 그 재미가 얼마나 큰 즐거움인지를 그때는 몰랐나 봅니다. 하지만 그 때 당시의 기억으로 돌아가자면, 도대체 내가 공부하고 있는 이 미분, 적분은 도대체 누가 언제 쓰는것인가 라는 생각만으로 지냈죠. 

 

사실 현재를 살아가면서 우리가 특이한 일이 아니고서는 미분적분이 필요하지는 않습니다. 단지 필요한건 가감승제 일뿐..

이것만 잘 알아도 직장, 사업 다 잘 할수 있다고 봅니다. 어디까지나 제 생각이지만 그렇네요

 

근데 지금 회계를 공부하면서 느끼는것은 가감승제라고 다 같은것은 아닌것 같습니다. 무엇을 도대체 어떻게 넣고 빼고 나누고 곱하는가가 결국은 위에서 말하는 잘할수 있는 근간이 된다고 봅니다.

 

연필을 하루에 8자루씩 깍아서 공부를 하는데 공부를 마칠무렵이면 심이 없어집니다. 그 어린시절 연필을 다시 사려고 멀쩡한 공책에 엄청나게 문질러댔던 기억도 새록 납니다.

 

공부.. 앞으로 자식한테도 그러하겠지만 절대 강요로 되는게 아닙니다. 강요로 이루어진 공부는 그냥 기억으로 남을 뿐입니다. 그걸 사용하는 방법을 배우지 않는다면 아니한만 못한것 같습니다. 

공부보다 인성이 되어야 할것 같습니다...  

 

다음주부터는 통계강의가 있습니다. 많은 사람을 모아두고 하는것보다 개별적으로 하면서 정말 필요한 부분들을 되새겨 주는 그런 강의를 하려고 하고 그리하고 있습니다. 

 

항상 글을 쓸때는 몇글자만 써야지 하면서도 마무리 하다보면 장문이 되네요.. 

 

혹시라도 공부하시는 분들 꼭 목적 달성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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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삶에 대해서 무단히도 무디지 않나 싶습니다.

 

오늘 하루가 우리 각자에게 어떠한 의미가 있는지를 한번 생각해봐야 할것 같습니다.

 

저요.. 전 그냥 오늘 하루가 오늘 하루입니다. 어제가 지나서 오늘이고, 오늘이 지나면 내일입니다. 생각없이 사는것 같다구요? 그럼 이런 대답은 어떤가요 ?

 

오늘은 내 인생 최대의 하루이다.  과거는 필요없다.. 미래도 필요없다 단지 오늘만이 소중하다... 책에서 많이 본 대답들 아닌가 싶습니다.

 

좀더 인생에 대해서 솔직해 질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항상 강요 받습니다.  올바른 생각만 하고, 올바른 행동만 하고, 올바르게 살아나가라고.. 그럼 올바르다는것은 무엇을 의미하나요 ? 누가 정하지요 ? 나라에서 ? 법에서 ? 법은 최소한의 지켜야할 도리라고 그러잖아요..

 

나를 숨겨야 하기 때문에 내 생각과 관계없이,, 올바르게 사는척, 올바른 생각만 하는척, 그렇게 살고 있지는 않나 한번 생각해봅니다.

 

서두가 너무 길었네요...

 

 

나를 누군가가 생각하고 기억해준다는건 참 좋은 일입니다. 물론 세상에 적이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 세상을 이롭게 하리라 노력하는 종교인들마저 적이 있는 상황에서 예수님, 부처님 모두 적을 가지고 있을겁니다. 단지 그분들의 드넓은 아량으로 포용을 했을 뿐이지요..

 

한번도 보지 못한 사람이 있습니다. 세상에는 없구요.. 근데 살아 있었다면 가족이었을 겁니다. 눈치를 채셨나 모르겠네요.. 와이프의 언니네요.. 처형이라고 하나요. 결혼하기전 짧은 세상 운명을 달리하였다 합니다. 처가집에 가면 동생들과 언니가 찍은 사진이 방에 걸려있고, 그 모습을 보면서 생전일면불식이었던 처형을 생각해보곤 합니다.

 

생각하고 기억한다는것에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기억을 하기위해서는 생각을 해야 하고,, 생각을 하다보면 기억이 나는게 우리 삶입니다. 삶에 있는 모든것들을 포용할수 있는 연습을 해야 하겠습니다. 하긴 이말도 어패가 있네요.. 인생에 연습이 없지요. 그냥 바로바로가 현실이니까요. 더 좋은 미래를 꿈꾸지도 않고, 과거의 기억도 내세우지 않고, 지금의 그대로를 인정하는 그런 기억을 가지고 싶네요.

 

뭔가를 자꾸 제어한다는거.. 슬픈일을 생각하지 않으려는거. 나쁜일을 기억하지 않으려는거, 그렇게 말처럼 쉽지는 않습니다. 아니 불가능에 가깝다고 봐야지요... 난 깨끗이 잊었어 라고 한들 그게 잊혀진게 아니라... 정말 잊고싶은 강렬한 메시지입니다.

 

그냥 오는기억, 오는 생각 막지마세요. 그래야 조금이라도 머물다가 또  떠납니다. 자꾸 밀어내면 더 오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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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상권 침해라고 하면 어쩔수 없지만 어쨋든 날 도와주셨던, 무진장 도와주셨던 내외분이다. 형님은 나랑 띠동갑이시고 형수님은 나이가 하여간 동안이시다.

 

큰집에 두분만 사셔서 나한테 1층의 방하나를 선사하셨다. 그래도 나름의 양심은 있는지라 최소한의 생활비는 내고 살았다. 그리고 가끔 시간 되면 스시집 가서, 새우도 튀겨주고, 캐셔도 봐주고, 어쩔때는 스시바에서 롤도 말았다. 말그대로 전천후였다고나 할까..

 

물론 시간당 일당도 두둑히 챙겨주셔서 그걸로 생활비도 하고, 차 기름도 넣고.. 참..여기서 차를 소개해줘야 하겠네.. 참으로 타고 싶었던 차를 미국에서 그것도 눈의 주 알라스카에서 타게 되었네요... 이름하여... 비틀... 뉴비틀

 

 

 

 

참 애지중지 잘도 탓던 차다.. 차 살때 딜러도 잘 만나서 얼마 타지 않은차 좋은 가격에 샀고.. 2년동안 아무런 문제없이 잘 굴러가던 차다..

 

그 큰 알라스카 땅 덩어리 거의 두번은 돌았었다.. 겨울에도 스노우타이어 없이 잘 달렸고, 여름에는 더할나위 없이 좋은 성능을 발휘해준 고마운 발이었다.

 

그 여름 대학교 은사이신 박재호 교수님 가족분이 오셨을때도 저 차를 가지고 멀리 여행도 했던 추억이 남는차다.

 

아마 그당시 5명이 저차에 타지 않았나 싶다.. 지금의 미니보다 공간구성은 훨씬 잘되어있다. 사실 이번에도 비틀을 살까 싶었지만, 집사람의 반대로 미니를 선택했고, 역시 선택에 만족을 하면서 지내고 있다.

 

 

 

방학이 지나고 가을학기가 시작되고, 차도 사고, 집도 안정되어서 이제 나름 알라스카인이 되어가고 있는듯 하면서 본토를 가고싶은 충동을 느끼게 되었다. 그당시 막역한 사이인 석이형이 시애틀에서 사업을 하고 있기에 시간을 맞춰서 한번 보러 가기로 했다.

 

 

시애틀에 있는 스타벅스 1호점이다. 로고도 지금하고 많이 다르지 않는가.. 옆에 있는 길거리 악사가 깝치고 있다... 깝친기념으로 적선좀 하였다... 좋단다..

 

커피는 따로 사먹지는 않았고.. 석이형 아는 사람들 만나러 근처 폭포호텔로 향했다.. 참 거대하더라.. 폭포 바로옆에 호텔을.. 발코니 문을 열면 바로 폭포다... 발코니까지 물이 튄다..

 

정말 밤새 술을 먹고 싶었지만..일정상 밤늦게 다시 시애틀로 향한다..

 

아직도 좀 아쉬웠던 술자리였지 싶다.. 나중에 그 사람들 다시 만나러 아침비행기 타고 시애틀을 다시 온적이 있다.

 

 

 

 시애틀에서의 일정을 마치고 지난번에 교수님이 오셨던관계로 이번에는 내가 교수님이 살고 계신 밴쿠버로 넘어갔다. 

 

시애틀에서 밴쿠버는 바로 옆이다.

 

그러다보니 제트기가 아니고 프로펠러 비행기가 뜨는것 같다.

 

우리나라도 제주도 저가항공 초창기에 프로펠러 항공기가 떠서 그옆에 앉으면 정말 시끄러웠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50여분을 날았다.. 밴쿠버 공항에 도착하였다..

 

그리고는 교수님 댁에 여정을 풀고 록키산맥으로 갈 준비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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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스카에 도착한 시간은 아침 10시정도 였다. 그런데 뭔가 이제 해가 뜨려고 한다.. 마중 나오기로 한 목사님이 기다리고 계신다.

 

" 형제님 반갑습니다. " 약간은 어색한 말투였지만, 어쩌겠냐 그래도 나를 도와주시겠다고 나오신분인데.  

 

알라스카 앵커리지의 그 첫느낌이란... 아마.. 무슨말로 표현을 해도 이해가 안될듯 싶다.. 백문이 불여일견.. 아는 한자가 없어서 그냥 한글로 쓴다

 

처음 도착했을때 왜 우울증이 오는가를 이해할수 있겠더라고.. 아침 10시넘어서 해가 뜨고, 다시 오후 3시면 해가 져서 밤이 온다.. 오로지 할수 있는거라고.. 일찍히 술을 한잔 시작하는거.. 그뿐이다.

 

내가 처음 묵었던 곳은 교회 전도사님 댁이었다. 가보니 전도사 한분, 젊은 목사한분, 그리고 필리핀 목사 한분이 같이 살고 있었고, 2층에는 버지니아에서 오신 아저씨 한분이 살고 계셨다. 또 지하 한켠에는 보호수용을 받고있는 한인 2세가 있었다. 사실 이친구 좀 무서웠다. 밤에 와이프를 때리기도 한다. 그래서 경찰도 몇번 출동했다. 결국은 집을 나가버렸다.

 

그 집에서 술을 먹는 오직 유일한 사람들은 2층 아저씨와 나였다. 당연히 가까워질수밖에 없었다. 온지 1주일 정도 지날무렵 아저씨가 날 부른다..

 

"미스터 리" 아... 이 아저씨 정말 미국에 오래 사셨나보다.. 근데 영어는 잘 못하신다고 한다. 한때 버지니아에서 공장도 했고, 요트를 두척이나 끌었으며, 벤츠를 두대나 가지고 있으셨단다.. 근데 왜 여기에 있냐고 ? 여기 앵커리지의 많은 사람들이 사연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다. 한때 본토에서 날리다가 나름의 사정을 가지고 들어와서 재기를 하는 사람도 있고, 사고치고 숨어 있는 사람도 있고, 말 그대로 돈 많이 벌어서 여생을 알라스카에서 보내고자 하는 사람도 있다.

 

암튼 그날의 술은 버드와이저 24캔이었다. 눈이 엄청나게 내리는 가운데 아저씨가 한캔만 하자고 해서 둘이 앉았는데, 정말 앉은자리에서 24캔을 다 비워버렸다. 안주는 냉동 미루가이.. 아저씨가 안주가 모자라니 고기를 굽는다고 하여 고기를 굽는동안 나는 술을 사러가고 싶었지만 이놈의 길을 알아야지.. 아저씨랑 같이 리쿼 스토어로 가서 내가 술을 샀다. 그리고는 아저씨하고 같이 집을 알아보기로 했다. 아무래도 목자 집안에서 자꾸 술을 마시는게 꺼름칙해서 말이다.

 

 

그렇게 둘이서 알아보던중 Low Income을 대상으로 집을 싸게 준다기에 아저씨는 영주권자라서 해당사항이 될거같아서. 관할구청가서 상황설명하고 했더니 바로 집을 구할수 있게 도와주더라고.

 

이게 참 차이인듯 같다.. 저소득자를 위한 집이라고 후지지가 않아.. 엄청 좋단 말이다. 방이 두개고, 발코니가 있고, 화장실이 두개고, 부엌도 있고, 전망도 좋고. 저게 내 방이었다. 책상은 아저씨가 일하는 목공현장에서 만든거고, 좀 지나서 나도 아저씨의 목공현장에서 알바를 하기로 했다. 일명 노가다... 침대 매트리스는 누군가가 사용하던거 깨끗이 빨아서 사용을 했고, 그러다보니 그다지 돈이 들어갈 일은 없었다.

 

 

 

 

 

이사한 집 발코니에서 찍은 동영상이다. 4월4일인데 아직 한겨울의 퐁경을 보이고 있다. 누군가 그랬다. 과거에 사무쳐 살지 말라고. 과거는 쾌쾌 묵은거라고. 근데 과거를 생각하면서 살짝이나마 마음의 전화을 느낀다면 그거 또한 마음의 리프레쉬가 되는거 아닌가 싶다. 꼭 누군가의 말이 맞는건 아닌듯 싶다. 뭐든지 과하면 안좋은 거지만, 적당히 자기만족을 할줄 알다면 그다지 자기계발이 필요하지는 않을듯 하다.

 

 

참... 날은 벌써 4월까지 왔는데, 내 학교 이야기는 하나도 없었네..옆사진이 학교도서관이다. 땅이 넓어서인지. 정말 참 잘 지어놓았다. 바닥에 쓰레기 하나 없이 카페트로 깔아져있고, 책상과 책상의 거리도 정말 넓고.. 암튼 우리내 독서실 칸막이는 찾아볼래야 찾아볼수가 없었다.

 

그래도 나름 유학비자 였던지라 공부를 꽤 열심히 했다. 장학금도 받았고, 시험보면 한국인 특유의 암기실력으로 거의 A를 받았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여름방학이 시작되었다. 5월부터가 여름방학으로 9월까지 거의 4개월을 쉰다..

 

정말 안나가려고 했는데, 연어들고 사업한번 해보려고 연어샘플 들고 한국으로 잠시 나간다. 유나이티드 에어라인을 타고 1주일 여정으로 간다. 여기서는 자세한 내용은 생략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 왜냐 결과가 그다지 좋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나름 계획서도 만들고 샘플도 들고 나갔지만 아직은 시기상조라는 답변만을 가지고 다시 돌아온다.

 

근데 아직도 무슨 계획만 하면 다들 제일 쉬운말이 시기상조 아니면 이제 너무 많다는 말뿐이다. 그럼 도대체 누가 어떤 시기에 들어가야 하는건가.. 그들도 알지 못한다. 컨설팅을 하는 교수님들이 직접 사업에 뛰어드는 경우 보았나 ? 아마도 절대로 하지 않을것이다. 왜냐하면 그냥 그 위치에서 말로만 명맥을 유지하면 되는 위치이기 때문이다.

 

알라스카 생활도 어느덧 익숙해질즘 참으로 좋은 인연을 만나게 되었다. 스시집을 운영하시는 사장님을 알게 되었는데 모든일을 마치고 귀국하는동안 참으로 많은 도움을 받고 왔다..

 

그 이야기를 이제 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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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생각해볼것이다. 내 시기에 다다른 사람이라면 ..

 

39세의 12월.. 돌이켜보면 29세의 12월이 생각이 난다. 그때도 이러한 감수성에 젖어 있었던것 같네. 대학원을 졸업하고 첫직장의 합격통보를 받았던 시기 정식으로 된 첫직장에서 번돈으로 맞이했던 첫 크리스마스..

 

그로부터 10년이 지났다.. 뭐가 변했을까.. 나에게.. 정리해본다.

 

나이계산이 안된다.. 30살이면 몇년도였는지를.. 지금이 2013년이고 내나이 39이니까. 9를 빼면 2004년이 되겠네.

 

2004년 1월즘에 어렵게 들어갔던 직장을.. 3차까지 면접을 보고.. 난생 처음으로 집단토론 등의 다양한 면접을 거쳐 입사를 했다.. 지금의 GS 리테일.. 1년남짓즈음에 개인적인 이유로 퇴사를 하게 된다. 그게 뭐냐면 블로그 헤쳐보면 다 나오는 알라스카행이다. 아직도 난 의아하다. 내가 왜 거길 선택했을까 ? 준비된 영어성적이 안되서 그랬을까 ? 아니면 정말 난 연어가 좋았던 것일까 ? 아님 30대 초반의 무모한 도전이라고해야 하나. 그러나 지금 시점에서, 아니 49살의 12월에도 마찬가지로 생각할것이다. 내 인생 최고의 경험은 알라스카의 2년이었다고...

 

집의 도움없이 2004년 1년을 버티었다.. 버티었다기보다는 준비를 했다는 말이 맞겠다. 토플을 보고, 회화학원을 다니고 지금도 유명한 삼육 외국어학원.. 끊기 때문인지 뭔지는 모르겠지만 4단계에서 그만두었다. 그리고는 학비를 벌어야 했기에 이일 저일 머리쓰는 일을 많이 했다. 내가 회사 차리면 꼭 직장에서의 경력만 인정해 주는 그런 실수는 하지 않을런다. 회사일이라는것은 매뉴얼이다. 아무리 바보를 갖다 놓아도, 할수 있다는 내 신념이 있기 때문이다.

 

2004년 7월에 I-20가 도착했다. 일명 학교입학허가서 그걸 가지고 비자준비도 해야하고, 이제 정말로 가는구나 싶은 생각이 든다. 모든것은 나혼자 준비했다. 알라스카에 접촉을 한것도 나 혼자, 비자를 신청하고 모든 과정을 진행한것도 나혼자, 그리고 짐도 나 혼자 쌌다.

 

2004년 12월1일 비자 인터뷰가 있는날이었다. 배운건 있어서 여권을 대사관에서 가져가면 합격, 그렇지 않으면 불합격이라고 하였다. 심사관 누구를 만나는가도 관건이라고 하였다. 근데 신경 쓰지 않았다. 심사를 약 3분간에 걸쳐서 했고, 여권을 가져가 버리더라고. 아 이제 합격인가 보다.. "1주일안에 도착할겁니다" 라는 말과 함께. 나는 광화문을 걸었다. 잘하는 짓이겠지.. 하긴 이제 다 결정된건데.. 집에 전화를 걸었다.  엄마는 반기는건지 내내 뭔가 아쉬운건지 모르겠고, 형은 나에게 편도 비행기표를 끊어준다고 하엿다.

 

2004년 12월 17일 저녁 6시30분 대한항공을 끊었다. 그 당시만 해도 인천발 뉴욕을 갈때 앵커리지를 경유해서 갔다. 기름넣고 간다고 하더라고...  이제 남은 시간은 2주정도.. 친구들과도 많이 놀았고, 나름 송년회 겸 이별.. 아니 환송이라고 하나.. 하여간 별의별 이름을 붙여서 술을 마셨다.. 그 당시 친한친구 한명이 강남역에 바를 하나 내었을때라 장소는 더없이 좋았다.

 

그 바 사진도 있었는데 그건 어디로 사라졌나 보다.. 아니 어딘가에 또 잠자고 있을 사진이다. 옆 사진은 그날 송별회를 하는날 2차를 가서 놀았던 사진이다. 내 어깨동무한 친구가 바 사장이고. 그옆이 아직도 변함없는 우정을 보이고 있는 친구, 그리고 그 옆에 학수는 그날 이후로 본적이 없다. 안친해서냐고 ? 볼기회가 없어서라고 말하고 싶다.

 

이날 오랜시간 술을 마신걸로 기억이 된다. 그리고는 떠난다.

 

 

 

 

 

 

 

 

 

 

아직 남아있는 KE 마일리지다. 유효기간 적용적에 쌓여진거라 평생 안없어진다고 한다. 근데 어쩌나 난 이미 아시아나만 타는걸, 카드적립도 아시아나만 한다는걸..

 

그렇게 한국을 떠난다.. 30살 처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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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를 둘이 여행가는건 아마 처음이지 싶다. 그간 매번 형네 가족과 함께 다니다 보니 결혼후 처음이 아닌가 싶다.

 

몇번 안되는 여행 그래도 매번 외국을 나가다 보니 국내는 말만 많았지. 사실 처음의 여행

 

간략한 기록을 남겨보려 한다. 물론 언제나 그랬듯이 사진은 많이 없다.

 

아침 일찍 (09:00) ㅋ 나와서 출발해서 겨울 옷좀 보려고 여주 아울렛 들렸더니 웬걸 10:00 오픈이라 약간 기다려야 함. 오랜만에 주차장이 텅빈모습을 보고 어디에 주차를 해야 할지 고민했음..

 

항상 가면 가는곳이 정해져 있어서 후다닥 가봤더니 오늘은 별거 없어서 스타벅스에서 크리스마스 음료랑 푸드 먹고 쿠폰받고 평창 시장으로 고고씽..

 

여주에서 평창시장을 가려는데 아무래도 초행길이다보니 네비를 틀었더니. 고속도로 조금 안내하다가 국도로 안내를 하더라고.. 근데 국도가 고지가 높아서 기름 많이 먹은거 같음..

 

평창시장 가서는 사진 몇컷 찍었는데 일요일이라 그런지 휑한 모습이었는데 시장 안쪽으로 들어가보니 몇군데 문을 열었더라구요..

 

 

 

할머니 사진 찍는거 보시더니 움찍 하시더라구요. 한두번 찍힌거 아니실텐데.. 그래도 일요일 시장에서 제일 분주한 집이더라구요.  

 

 

간판 한번 올려줍니다. 진짜 가격이 압권입니다.. 가보신분들은 알겠지만.. 안가보신분들 정말 깜놀하실 가격입니다..

 

 

 

저게 손맛인가요 ?  ㅋㅋㅋㅋ

 

 

 

제일먼저 맛본게 메밀 동동주.. 근데 큰 기대를 해서 그런지 일반 막걸리랑 맛이 똑같더라구요.. 알고보니 메밀 함량 3.5% ㅋㅋㅋ

 

 

요게 메밀전병.. 가장 맛있던것인데.. 신김치, 청양 등등 다져서 넣었는데 그맛이.. ^^

 

 

요것은 배부름에도 불구 하고 시켰던 묵사발..배부름에도 한그릇 다 먹음...

 

마찬가지 묵사발...

 

전체적으로 배터지게 먹었음에도 불구하고.. 가격이 10,000원 ....ㅠㅠ .. 이제 메뉴가격 계산 되시겠죠 ?

 

여기서 나와서.. 다시 이효석 생가 본다고 갔는데.. 진짜 볼게 없더라구요.. 아마도 메밀꽃이 없는 시기에 가서 그랬겠지요 ? 그래도 길따라 산책좀 하다가.. 숙소로 갑니다..

 

숙소는 알펜시아 홀리데이인 스위트로 햇는데 조식포함 할인 등등 ihg 멤버쉽해서.. 10만원에 해결했네요.. 객실이 처음에 들어갔을때 방충망이 떨어져서 프론트 전화하니 친절히 방을 바꿔주더라구요.. 은근 업그레이드 기대했는데.. 그냥 바로 윗방으로 안내해주더군요.. 뭐.. 둘이 자는데 업그레이드 까지 욕심낼 필요는 없다 싶구요..

 

가는날이 바로 스키장 가오픈 하는날이라서 몇명이 슬로프를 내려오는데 그다지 타고 싶지는 않고, 그 예전 알라스카에서 설원보드 타던게 생각이 나더라구요..

 

저녁시간이 다 되어서 그 유명하다던 대관령 한우타운으로 갑니다.. 호텔에서 한 7키로 정도 되는데 멀지는 않습니다만.. 가봤더니 가격이 우리집 옆 사송동 한우집보다 비싸더군요.. 그리고 맨 부채살만 늘어놓고.. 그러다보니 아무리 일요일이라지만 사람도 없고...

 

하여간 농협인가에서 한다던데... 그리고 소값도 많이 떨어졌다던데.. 좀 합리적인 가격이었으면 하는 바램을 가지고.. 다른 맛집으로 이동합니다.. 어디선가 본 오삼불고기를 파는 고향이야기로 가서. 정말 맛나게...^^ 먹고 호텔로 돌아왔습니다.

 

호텔에서는 미리 준비한 칭타오 큰병 3개는 있는데 안주가 없어서 특산물 매장에서 오징어 두마리를 사서 전기 오븐에 구워서 맥주를 먹습니다... 아 좋네요... 이게 힐링이지... 뭐 다른게 없네요...

 

먹다가 잠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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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일어나자 마자.. 배가 무진장 고파서 조식쿠폰을 들고 몽블랑 레스토랑으로 향합니다.. 오... 생각외로 음식이 많네요... 제가 좋아하는 만다린도 있고.. (한 3그릇 먹음) ... 우리는 ihg 멤버라서 체크아웃도 2시간 연장...그래서 조식을 한 두시간은 먹은거 같아요.. 배터질때까지..ㅋㅋ

 

그리고 객실 들어와서... 한시간 더 잡니다..ㅋ 그리고 12시가 다 되어서 출발을 하는데.. 정말 강풍이 부네요... 차가 밟아도 안나가는게 이런 느낌이구나...

 

하면서 집으로 향하고.. 또 다음을 기약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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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사람은 우선순위라는게 있습니다.

 

대부분의 우선순위가 뭘까요 ? 아마 처해진 상황에 따라 달리 생각이 들겠지요.

 

그래도 대부분의 경우 돈 버는 일이 우선순위가 아닐까 합니다. 그런 경우가 없어야 겠지만 아픈경우 돈이고 뭐고 몸이나 나았음 하는게 우선순위일테구요..

 

몸이 회복되고 나면 치유하는데 돈을 너무 써서 돈이 벌렸으면 하는게 또 우선순위구요..

 

부정하는것도 아니고 저도 당연히 그렇지요..

 

사진을 좋아한다고 사진기도 3개나 가지고 있으면서 지금 사진기를 꺼내보니 지난 7월에 부산에서 찍은 이후로 없네요. 정말 좋아는 하는건지 아니면 폼만 잡을려고 하는건지 모르겠네요. 그렇게 오래된 내 사진기를 보면 또 뭔가 측은한 생각이 들어서 몇컷 찍었습니다.

 

그 유명한 프랭크님이 그러시죠 사진을 잘찍는거랑 좋아하는건 다르다고요

 

이건 비단 사진뿐만이 아니라 무슨일에서도 마찬가지일것 같아요. 잘하는거랑 좋아하는거.. 무슨관계가 있을까는 뭐 굳이 설명을 안해도 다들 아실겁니다.

 

전 사진을 좋아합니다. 보는것보다는 찍는것을요.. 좋아하다보면 항상 애정이라는게 생기고 더 알려고 하고.. 그래서 조금씩 잘하게 되나봅니다.

 

그간 우선순위에 참으로 많이 밀려 있던 사진.. 겨울도 오고 조금씩 눈도 흩날리고.. 조금 찍어줘야 겠습니다.

 

 

폼잡는다고 산바닥에 엎드려뻐쳐 하고  찍은사진입니다. 온통 낙엽투성이더라구요.

 

 

이건 중간을 포커싱한거구요

 

 

이건 뭐 그냥 소나무 있길래 찍었는데 솔색이 안나오고 덕분에 하늘구경만 한 컷입니다.

 

뭐랄까.. 아직 필름 사진을 찍고 있다보니 디지털 카메라 한컷 누르는것도 쉽지는 않네요. 웬지 필름 한장이 날라가는듯 해서 그런가요.. 좀 아깝다는 느낌, 그래서 나름 한컷 한컷 심오하게 촬영은 하는데 결과물은 ㅋㅋㅋ

 

그래도 잼납니다..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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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대는 흣날리는데 그 위로 해는 강렬히 비춰지네요.


그 해사 미워서 흑백 처리 해버렸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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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를 잘 해놓으신분이 계셔서 좀 퍼왔습니다. ~ 제일밑에 출처 있습니다. 가서 보셔도 될듯이요 ~



1. 개념신뢰성과 AVE를 구하기 위한 선행계산

 

AMOS 출력물에서 표준화람다 값으로

표준화람다의 합의 제곱

표준화람다제곱의 합

측정오차분산의 합

출력물에는 표준화 람다값만 제시됨

 

 

2. 위의 결과물에서 요인 A 의 예시 

 

1) 표준화람다의 합의 제곱

결과물의  각 관측변수의 표준화람다 값을 모두 더한값 2.286 이고

이를 제곱한 값  5.226 


2) 표준화 람다의 제곱의 합

각관측변수의 표준화람다 값을 제곱한 것

첫 번째 관측변수 0.663 제곱하면 0.440 이 계산되어지고

각각의 관측변수 제곱한 값을 다 더하면 1.757


3) 측정오차

1 에서 표준화람다 제곱한 값을 뺀것으로

첫 번째 표준화람다 제곱한 값은 0.440  이고

1 에서 빼면 0.560 입니다.

각각의 계산된 값을 더하면 1.243 입니다.

 

 

4. 요인 A 를 공식에 넣어 계산

 

1) 개념신뢰성 공식

 


 

 

 

2) AVE 공식  




 

 

5.  요인 A 의 결과

 

개념신뢰성은 


 

AVE 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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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가 추웠다 따뜻했다. 옷 맞추어 입기가 힘드네요. 


코트를 들고 나가려니 오바고, 얇은옷은 추울것 같고.. 에이 그냥 참아버리자.. 라는 심상으로 감기가 걸린듯 합니다. ^^


아마 대부분 이시점에 논문심사 1차정도 되는것 같습니다. 


내내 손놓고 계시다가 급하게 번갯불에 콩 볶아 드시듯이 진행하시는분도 계시고, 본인이 책을 감싸안고 노력하시다가 안되서 메일 주시는 분도 계시네요. 간혹은 잠수부를 만나셔서 다시 통째로 연락주시는 분도 계시구요


저는 블로그 마케팅도 모르고, 네이버 앞에 어떻게 나와야 하는지도 잘 모릅니다. 그저 아는거라고는 태그를 써서 글 쓴다는거, 그거 하나네요. 간혹 저도 논문통계라고 치고 들어가보면 많은 분들이 진행을 하고 계시고, 이것도 규모의 경제인지 열심히 활동하시는 몇분들의 글이 몇페이지까지 올라와 있네요. 


블로그로 통계를 시작한지가 5년째 되어가는데 그때보다는 확실히 많이 늘어난게 사실입니다. 그러다 보니 의뢰주시는분들도 당연히 가성비라고 해야하나요..ㅋ 가격대비 질이 높은것으로 찾아다니시는것 같습니다. 


사실 통계 돌리시는분들 다 아시겠지만 데이터만 똑같다면 그 누가 돌린들 다른값이 나오겠습니까~ 다 같은 값 나오는거지요. 단지 거기서 어떤 해석을 하느냐가 아마 조금씩 상이하지 않을까 합니다. 그러나 설계는 다르다고 봅니다. 분석이야 똑같겠지만 분석에 대한 설계는 어떻게 잡느냐에 따라서 전체값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이 연구는 A분석을 통해서 B값을 산출해 내야하는데 B분석을 통해서 A값을 산출해 낸다면 난감하겠지요.


운이 좋으면 의뢰주시는 분도, 심사하는 교수님도 이 값이 맞는 값인지 틀린값인지 모른채 논문이 퍼블리쉬 될수도 있습니다. 근데 거의 인생의 한번의 학위인데 남이 봤을때 챙피한 논문을 만드는건 아니라고 봅니다. 


그래서 항상 저는 메일 주시는 분들께 강조합니다. 비용만을 생각하신다면 저보다는 다른 많은 분들이 저렴하게 진행하고 계시니 찾아보셔도 될겁니다. 저보다 더 잘해드리고 더 저렴한 가격을 받으시는 분들도 분명 있을겁니다. 하지만 세상에 공짜는 쉽지가 않더라구요. 저도 물건 하나 살때 꼭 이리저리 비교해보고 가장 저렴한것을 사곤 했는데. 그게 항상 좋은 결과를 내놓지는 않더군요. 


나름 지식산업구매와 제품구매와의 비교가 어색할지는 모르지만 모든것에는 다 이유가 있는것 같습니다. 


오늘 만난분이 조절회귀를 설계 하신분인데, 분석하신 분이 매개회귀결과를 보내놓고 조절회귀라고 내용을 써서 보내셨더라구요. 더군다나 만난분은 그걸 조절회귀로 알고 저한테 설명을 해달라 하시더군요. 여기서 만난분이 누군지 당연히 밝히지도 않았을뿐더러 그분을 험담하는것도 아닙니다. 그분에게 글로 써서 다른분들에게 도움이 되도 되겠냐는 허락까지 받고 올리는 글입니다. 


처음서부터 차근차근 설명해드리니 제말에 대한 이해보다는 본인 스스로가 한심스럽다며 자책을 많이 하시더라구요.


통계를 맡기는건 몰라서 맡기는 겁니다. 그러니 누구한테 맡기시더라도 알수있게 해석을 아님 설명을 꼭 해달라 하세요. 작은비용 들이는 거 아닌만큼 원하는 결과 나와야지요.


잠자기전에 일기쓰다가 주저리 했네요. 궁금하신 사항 언제든 메일주세요  chsoo.le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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