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찰법 : 조사대상 통제하지 아니함 / 일정한 시점에 걸쳐 시각, 청각을 통해 기록 함 

 

장점 

 단점

 행동상의 자료수집

관찰자 주관적 편견개입 가능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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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에서 돌아온후 여행에 대한 재미에 더욱 빠져들었다. 본연의 일을 망각할 정도로 여행에 흥하여 버는 족족 여행을 떠났다. 라스베가스를 5번을 다녀왔는데 그중 3번을 골프를 치러가고 2번은 카지노를 위해서 갔던 기억이 난다.

 

갈때마다 다른느낌이 나는건 나만의 생각일까 ? 여기에서 놀지 않으면 마치 바보다 되는듯한 느낌의 도시 .. 라스베가스.. 그 일정중에 가장 기억이 나면서도 잼나게 놀았던 카지노에서의 잠시를 공개한다.

 

 

 

넓은 땅덩어리 알라스카에 인구는 50만명이며, 그중 앵커리지의 인구가 30만명이다.. 그중 한인이 대략 7,000명이라고 한다. 그러면 한인의 비중이 그리 작은셈도 아니다. 그중에 친하게 된 동생한명이 프로골퍼여서 베가스 모든 일정은 항상 같이 동행을 하였다. 지금도 생각이 나는 고마운 동생임이 틀림없다. 타이거우즈가 자주와서 연습한다던 골프장이다. 한여름을 피해서 갔는데도 9홀즈음에 날씨의 압박이 대단하였다.

 

 

다시 알라스카로 돌아와서 이제 겨울을 맞이한다. 알라스카 겨울 참 두려웠다.. 얼마나 추울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런 고민도 잠시 진정 알라스카의 겨울로 빠져들게 되었다. 눈을 사랑하는 나로서는 참 더할수 없이 좋은 알라스카의 겨울이다.

 

 

어디를 보면서 보드를 타고 내려가도 끝이 없다는 느낌밖에 안든다. 가고 가도 끝이 없다는 느낌.. 그리고 주변에 아무도 없다는 고요함을 느낄수 있었던 알라스카 겨울에 감사를  표한다.

 

이제 수많은 여행을 뒤로하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갈 시점이 다가온다. 2006년이 다지나가고, 2007년 새해를 맞이한다. 그간 정들었던 사람들과 인사를 하고, 한국에서의 삶을 살기 위한 사전준비도 하고, 알라스카하고도 작별인사를 하러 빙하근처로 떠난다.

 

 

 

 

이제 돌아갑니다.. 한국으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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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에 록키산맥을 볼수 있다는 것은 운이요.. 여름에 록키산맥을 볼수 있다는 것은 천운이라고 했다.. 누가 그랬냐고.. 내 느낌이다.

 

온통 사방이 눈이다. 눈을 그렇게나 좋아해서, 알라스카를 갔건만, 이곳 록키산맥의 겨울 눈은 그 거대함이 또 남다르다. 뒤에 보이는 호텔의 이름은 이제 기억이 안나지만 겨울철 1박에 5,000불은 기본이라는 가이드의 설명을 들은 기억이 난다.

 

눈의 나라에서 눈의 고장을 보면서도 느끼는 아름다움 감정.. 굳이 과거라고 표현할 필요는 없는것 같다. 단지 내마음속이라는 표현이면 충분하다.

 

 

 

잠시나마 여행을 같이 했던 무리들. 오른편 두번째에 백발의 젊은 분이 내 은사님이시다. 대학시절 인연으로 하여 대학원졸업후 지금까지도 종종 연락을 드리며 지내는 건방지지만 내가 인정하는 몇 안되는 은사님중의 한분이다.

 

나머지 동행들은 이제 이름도 모르고, 하는일도 모른다. 기억나는건 어떤 부부가 오셨는데, 나한테 자기딸 소개시켜준다고 연락처 받아가고, 어떤 선생님 커플은 자기학교 선생님 소개시켜준다고 메일주소 받아갔다. 그리고는 연락이.....

 

 

있었다.... 하지만 이몸 알라스카에 묶여있는몸 초대를 하고 싶어도 그러하지 못하여 만남으로 까지 이루어 지지는 못하였다. 그러한 불운(?) 때문에 지금의 와이프를 만난건지도 모를일이다..

 

 

캐나다에 오면 밴쿠버에 오면 반드시 들려야 한단다.. 랍슨 스퀘어라고 교수님 내외분과 가족들. 주현이 주희랑 같이 .. 이 아이들이 그당시 고등학생 대학생이었는데 벌써 졸업을 해서 귀국해서 나름 사회에서 자리를 잡고 있단다.

 

가서 보고싶은데, 인천이면 얼마 멀지도 않은데, 교수님한테 인사도 드릴겸 찾아가면 되는데, 마음의 거리는 그렇게 큰가보다.

 

그래서 의례적으로 하는말이

 

' 언제한번 들릴께... 언제한잔해... 자주 연락드리겠습니다...' 이말 자주하면서도 참 싫은 말이다.. 그냥 말없이 행동하는 사람이 었으면 하는 내 자심의 바램이다. 책을 읽다보니 세계 각국의 저자들이 하는말이 참 다르다.. 교수, 심리학자, 정신과 전문의, 행복전문가 등의 글을 읽어봐도 마땅히 답을 주는게 없다는건 누구나가 알것이다. 단지 그러한 책의 제목을 통해서 우리가 뭔가 얻을수 있다는 또 하나의 욕심으로 책을 접해서 그런게 아닌가 싶다.

 

30대를 마무리하면서 지금 드는 생각은 앞으로 인생의 반을 살았는지, 다 살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지금까지의 과다한 생각들이 과연 내 인생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었는가를 생각해보면 결론은 미미한 수준이다라는것이다. 너무다 과다한 생각이 가끔은 육체적으로 두통이라는 짐도 주어줄뿐 실질적으로 그렇게 과다하게 생각했던 걱정들이 아직까지 일어나지는 않았다.

 

단지, 그러한 면을 알면서도 또 과다한 생각을 하고 있다는 점이 아이러니 하면서도 내가 인간이기에 이럴수 있다는 점을 가간과하지 않으려고 한다.

 

생각나면 생각하면 된다.. 생각도 나의 일부인데 어찌 떼어버릴려고만 하는가. 나의 몸과 나의 정신은 하나지 결코 따로 분리할수가 없다는 너무나 당연한 논리를 가지고도 우리는 많은 생각에 접어 들기만 한다.

 

...... 아마 30대 마지막 한달의 글에서 미국생활 2년의 글이 가장 많을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제 라스베가스로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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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상권 침해라고 하면 어쩔수 없지만 어쨋든 날 도와주셨던, 무진장 도와주셨던 내외분이다. 형님은 나랑 띠동갑이시고 형수님은 나이가 하여간 동안이시다.

 

큰집에 두분만 사셔서 나한테 1층의 방하나를 선사하셨다. 그래도 나름의 양심은 있는지라 최소한의 생활비는 내고 살았다. 그리고 가끔 시간 되면 스시집 가서, 새우도 튀겨주고, 캐셔도 봐주고, 어쩔때는 스시바에서 롤도 말았다. 말그대로 전천후였다고나 할까..

 

물론 시간당 일당도 두둑히 챙겨주셔서 그걸로 생활비도 하고, 차 기름도 넣고.. 참..여기서 차를 소개해줘야 하겠네.. 참으로 타고 싶었던 차를 미국에서 그것도 눈의 주 알라스카에서 타게 되었네요... 이름하여... 비틀... 뉴비틀

 

 

 

 

참 애지중지 잘도 탓던 차다.. 차 살때 딜러도 잘 만나서 얼마 타지 않은차 좋은 가격에 샀고.. 2년동안 아무런 문제없이 잘 굴러가던 차다..

 

그 큰 알라스카 땅 덩어리 거의 두번은 돌았었다.. 겨울에도 스노우타이어 없이 잘 달렸고, 여름에는 더할나위 없이 좋은 성능을 발휘해준 고마운 발이었다.

 

그 여름 대학교 은사이신 박재호 교수님 가족분이 오셨을때도 저 차를 가지고 멀리 여행도 했던 추억이 남는차다.

 

아마 그당시 5명이 저차에 타지 않았나 싶다.. 지금의 미니보다 공간구성은 훨씬 잘되어있다. 사실 이번에도 비틀을 살까 싶었지만, 집사람의 반대로 미니를 선택했고, 역시 선택에 만족을 하면서 지내고 있다.

 

 

 

방학이 지나고 가을학기가 시작되고, 차도 사고, 집도 안정되어서 이제 나름 알라스카인이 되어가고 있는듯 하면서 본토를 가고싶은 충동을 느끼게 되었다. 그당시 막역한 사이인 석이형이 시애틀에서 사업을 하고 있기에 시간을 맞춰서 한번 보러 가기로 했다.

 

 

시애틀에 있는 스타벅스 1호점이다. 로고도 지금하고 많이 다르지 않는가.. 옆에 있는 길거리 악사가 깝치고 있다... 깝친기념으로 적선좀 하였다... 좋단다..

 

커피는 따로 사먹지는 않았고.. 석이형 아는 사람들 만나러 근처 폭포호텔로 향했다.. 참 거대하더라.. 폭포 바로옆에 호텔을.. 발코니 문을 열면 바로 폭포다... 발코니까지 물이 튄다..

 

정말 밤새 술을 먹고 싶었지만..일정상 밤늦게 다시 시애틀로 향한다..

 

아직도 좀 아쉬웠던 술자리였지 싶다.. 나중에 그 사람들 다시 만나러 아침비행기 타고 시애틀을 다시 온적이 있다.

 

 

 

 시애틀에서의 일정을 마치고 지난번에 교수님이 오셨던관계로 이번에는 내가 교수님이 살고 계신 밴쿠버로 넘어갔다. 

 

시애틀에서 밴쿠버는 바로 옆이다.

 

그러다보니 제트기가 아니고 프로펠러 비행기가 뜨는것 같다.

 

우리나라도 제주도 저가항공 초창기에 프로펠러 항공기가 떠서 그옆에 앉으면 정말 시끄러웠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50여분을 날았다.. 밴쿠버 공항에 도착하였다..

 

그리고는 교수님 댁에 여정을 풀고 록키산맥으로 갈 준비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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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스카에 도착한 시간은 아침 10시정도 였다. 그런데 뭔가 이제 해가 뜨려고 한다.. 마중 나오기로 한 목사님이 기다리고 계신다.

 

" 형제님 반갑습니다. " 약간은 어색한 말투였지만, 어쩌겠냐 그래도 나를 도와주시겠다고 나오신분인데.  

 

알라스카 앵커리지의 그 첫느낌이란... 아마.. 무슨말로 표현을 해도 이해가 안될듯 싶다.. 백문이 불여일견.. 아는 한자가 없어서 그냥 한글로 쓴다

 

처음 도착했을때 왜 우울증이 오는가를 이해할수 있겠더라고.. 아침 10시넘어서 해가 뜨고, 다시 오후 3시면 해가 져서 밤이 온다.. 오로지 할수 있는거라고.. 일찍히 술을 한잔 시작하는거.. 그뿐이다.

 

내가 처음 묵었던 곳은 교회 전도사님 댁이었다. 가보니 전도사 한분, 젊은 목사한분, 그리고 필리핀 목사 한분이 같이 살고 있었고, 2층에는 버지니아에서 오신 아저씨 한분이 살고 계셨다. 또 지하 한켠에는 보호수용을 받고있는 한인 2세가 있었다. 사실 이친구 좀 무서웠다. 밤에 와이프를 때리기도 한다. 그래서 경찰도 몇번 출동했다. 결국은 집을 나가버렸다.

 

그 집에서 술을 먹는 오직 유일한 사람들은 2층 아저씨와 나였다. 당연히 가까워질수밖에 없었다. 온지 1주일 정도 지날무렵 아저씨가 날 부른다..

 

"미스터 리" 아... 이 아저씨 정말 미국에 오래 사셨나보다.. 근데 영어는 잘 못하신다고 한다. 한때 버지니아에서 공장도 했고, 요트를 두척이나 끌었으며, 벤츠를 두대나 가지고 있으셨단다.. 근데 왜 여기에 있냐고 ? 여기 앵커리지의 많은 사람들이 사연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다. 한때 본토에서 날리다가 나름의 사정을 가지고 들어와서 재기를 하는 사람도 있고, 사고치고 숨어 있는 사람도 있고, 말 그대로 돈 많이 벌어서 여생을 알라스카에서 보내고자 하는 사람도 있다.

 

암튼 그날의 술은 버드와이저 24캔이었다. 눈이 엄청나게 내리는 가운데 아저씨가 한캔만 하자고 해서 둘이 앉았는데, 정말 앉은자리에서 24캔을 다 비워버렸다. 안주는 냉동 미루가이.. 아저씨가 안주가 모자라니 고기를 굽는다고 하여 고기를 굽는동안 나는 술을 사러가고 싶었지만 이놈의 길을 알아야지.. 아저씨랑 같이 리쿼 스토어로 가서 내가 술을 샀다. 그리고는 아저씨하고 같이 집을 알아보기로 했다. 아무래도 목자 집안에서 자꾸 술을 마시는게 꺼름칙해서 말이다.

 

 

그렇게 둘이서 알아보던중 Low Income을 대상으로 집을 싸게 준다기에 아저씨는 영주권자라서 해당사항이 될거같아서. 관할구청가서 상황설명하고 했더니 바로 집을 구할수 있게 도와주더라고.

 

이게 참 차이인듯 같다.. 저소득자를 위한 집이라고 후지지가 않아.. 엄청 좋단 말이다. 방이 두개고, 발코니가 있고, 화장실이 두개고, 부엌도 있고, 전망도 좋고. 저게 내 방이었다. 책상은 아저씨가 일하는 목공현장에서 만든거고, 좀 지나서 나도 아저씨의 목공현장에서 알바를 하기로 했다. 일명 노가다... 침대 매트리스는 누군가가 사용하던거 깨끗이 빨아서 사용을 했고, 그러다보니 그다지 돈이 들어갈 일은 없었다.

 

 

 

 

 

이사한 집 발코니에서 찍은 동영상이다. 4월4일인데 아직 한겨울의 퐁경을 보이고 있다. 누군가 그랬다. 과거에 사무쳐 살지 말라고. 과거는 쾌쾌 묵은거라고. 근데 과거를 생각하면서 살짝이나마 마음의 전화을 느낀다면 그거 또한 마음의 리프레쉬가 되는거 아닌가 싶다. 꼭 누군가의 말이 맞는건 아닌듯 싶다. 뭐든지 과하면 안좋은 거지만, 적당히 자기만족을 할줄 알다면 그다지 자기계발이 필요하지는 않을듯 하다.

 

 

참... 날은 벌써 4월까지 왔는데, 내 학교 이야기는 하나도 없었네..옆사진이 학교도서관이다. 땅이 넓어서인지. 정말 참 잘 지어놓았다. 바닥에 쓰레기 하나 없이 카페트로 깔아져있고, 책상과 책상의 거리도 정말 넓고.. 암튼 우리내 독서실 칸막이는 찾아볼래야 찾아볼수가 없었다.

 

그래도 나름 유학비자 였던지라 공부를 꽤 열심히 했다. 장학금도 받았고, 시험보면 한국인 특유의 암기실력으로 거의 A를 받았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여름방학이 시작되었다. 5월부터가 여름방학으로 9월까지 거의 4개월을 쉰다..

 

정말 안나가려고 했는데, 연어들고 사업한번 해보려고 연어샘플 들고 한국으로 잠시 나간다. 유나이티드 에어라인을 타고 1주일 여정으로 간다. 여기서는 자세한 내용은 생략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 왜냐 결과가 그다지 좋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나름 계획서도 만들고 샘플도 들고 나갔지만 아직은 시기상조라는 답변만을 가지고 다시 돌아온다.

 

근데 아직도 무슨 계획만 하면 다들 제일 쉬운말이 시기상조 아니면 이제 너무 많다는 말뿐이다. 그럼 도대체 누가 어떤 시기에 들어가야 하는건가.. 그들도 알지 못한다. 컨설팅을 하는 교수님들이 직접 사업에 뛰어드는 경우 보았나 ? 아마도 절대로 하지 않을것이다. 왜냐하면 그냥 그 위치에서 말로만 명맥을 유지하면 되는 위치이기 때문이다.

 

알라스카 생활도 어느덧 익숙해질즘 참으로 좋은 인연을 만나게 되었다. 스시집을 운영하시는 사장님을 알게 되었는데 모든일을 마치고 귀국하는동안 참으로 많은 도움을 받고 왔다..

 

그 이야기를 이제 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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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생각해볼것이다. 내 시기에 다다른 사람이라면 ..

 

39세의 12월.. 돌이켜보면 29세의 12월이 생각이 난다. 그때도 이러한 감수성에 젖어 있었던것 같네. 대학원을 졸업하고 첫직장의 합격통보를 받았던 시기 정식으로 된 첫직장에서 번돈으로 맞이했던 첫 크리스마스..

 

그로부터 10년이 지났다.. 뭐가 변했을까.. 나에게.. 정리해본다.

 

나이계산이 안된다.. 30살이면 몇년도였는지를.. 지금이 2013년이고 내나이 39이니까. 9를 빼면 2004년이 되겠네.

 

2004년 1월즘에 어렵게 들어갔던 직장을.. 3차까지 면접을 보고.. 난생 처음으로 집단토론 등의 다양한 면접을 거쳐 입사를 했다.. 지금의 GS 리테일.. 1년남짓즈음에 개인적인 이유로 퇴사를 하게 된다. 그게 뭐냐면 블로그 헤쳐보면 다 나오는 알라스카행이다. 아직도 난 의아하다. 내가 왜 거길 선택했을까 ? 준비된 영어성적이 안되서 그랬을까 ? 아니면 정말 난 연어가 좋았던 것일까 ? 아님 30대 초반의 무모한 도전이라고해야 하나. 그러나 지금 시점에서, 아니 49살의 12월에도 마찬가지로 생각할것이다. 내 인생 최고의 경험은 알라스카의 2년이었다고...

 

집의 도움없이 2004년 1년을 버티었다.. 버티었다기보다는 준비를 했다는 말이 맞겠다. 토플을 보고, 회화학원을 다니고 지금도 유명한 삼육 외국어학원.. 끊기 때문인지 뭔지는 모르겠지만 4단계에서 그만두었다. 그리고는 학비를 벌어야 했기에 이일 저일 머리쓰는 일을 많이 했다. 내가 회사 차리면 꼭 직장에서의 경력만 인정해 주는 그런 실수는 하지 않을런다. 회사일이라는것은 매뉴얼이다. 아무리 바보를 갖다 놓아도, 할수 있다는 내 신념이 있기 때문이다.

 

2004년 7월에 I-20가 도착했다. 일명 학교입학허가서 그걸 가지고 비자준비도 해야하고, 이제 정말로 가는구나 싶은 생각이 든다. 모든것은 나혼자 준비했다. 알라스카에 접촉을 한것도 나 혼자, 비자를 신청하고 모든 과정을 진행한것도 나혼자, 그리고 짐도 나 혼자 쌌다.

 

2004년 12월1일 비자 인터뷰가 있는날이었다. 배운건 있어서 여권을 대사관에서 가져가면 합격, 그렇지 않으면 불합격이라고 하였다. 심사관 누구를 만나는가도 관건이라고 하였다. 근데 신경 쓰지 않았다. 심사를 약 3분간에 걸쳐서 했고, 여권을 가져가 버리더라고. 아 이제 합격인가 보다.. "1주일안에 도착할겁니다" 라는 말과 함께. 나는 광화문을 걸었다. 잘하는 짓이겠지.. 하긴 이제 다 결정된건데.. 집에 전화를 걸었다.  엄마는 반기는건지 내내 뭔가 아쉬운건지 모르겠고, 형은 나에게 편도 비행기표를 끊어준다고 하엿다.

 

2004년 12월 17일 저녁 6시30분 대한항공을 끊었다. 그 당시만 해도 인천발 뉴욕을 갈때 앵커리지를 경유해서 갔다. 기름넣고 간다고 하더라고...  이제 남은 시간은 2주정도.. 친구들과도 많이 놀았고, 나름 송년회 겸 이별.. 아니 환송이라고 하나.. 하여간 별의별 이름을 붙여서 술을 마셨다.. 그 당시 친한친구 한명이 강남역에 바를 하나 내었을때라 장소는 더없이 좋았다.

 

그 바 사진도 있었는데 그건 어디로 사라졌나 보다.. 아니 어딘가에 또 잠자고 있을 사진이다. 옆 사진은 그날 송별회를 하는날 2차를 가서 놀았던 사진이다. 내 어깨동무한 친구가 바 사장이고. 그옆이 아직도 변함없는 우정을 보이고 있는 친구, 그리고 그 옆에 학수는 그날 이후로 본적이 없다. 안친해서냐고 ? 볼기회가 없어서라고 말하고 싶다.

 

이날 오랜시간 술을 마신걸로 기억이 된다. 그리고는 떠난다.

 

 

 

 

 

 

 

 

 

 

아직 남아있는 KE 마일리지다. 유효기간 적용적에 쌓여진거라 평생 안없어진다고 한다. 근데 어쩌나 난 이미 아시아나만 타는걸, 카드적립도 아시아나만 한다는걸..

 

그렇게 한국을 떠난다.. 30살 처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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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항상 생각합니다.


왜 나에게 이런일이 일어나는걸까..


왜 나에게만 이런일이 일어나는걸까..


하필 왜 나한테만..  세상은 불공평해..


아마 누구라도 저런 생각을 한번씩은 해봤을것입니다.


요즘 제가 그럽니다. 이리저리 머리쓰는일도 많지만, 생각이 많다보니 머리가 항상 맑지가 못하네요. 만성 스트레스, 두통, 공황, 불안, 등등 심리와 관련된 모든 단어가 원인이 아닌가 합니다.


근데 누구라도 아무리 행복을 가지고 사는 사람이라도 한번은 경험을 하는 일이 아닌가 합니다. 


왜냐하면 스트레스라는게 없다는 것은 걱정할게 없다는 것은 이미 이세상 사람이 아니라는 반증이 아닌가 하거든요


그 양을 어떻게 하면 줄일수 있는것인지, 아님 같은 스트레스를 어떻게 하면 좋은 쪽으로 바꿀수 있는지를 다양한 방법으로 접근하겠지요.


이를테면, 운동, 힐링, 귀농, 귀어, 버림, 등등의 단어들을 통해서요.


저 또한 그러네요. 생각이 너무나 많아서.. 뒤돌아 블로그에 쓴 글을 살펴보니 생각, 걱정에 관한 글을 많이 써놨더라구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자신은 오히려 더 많은 생각과 더 많은 걱정으로 살아가면서 육체가 아닌 정신을 파먹고 있더군요


육체가 아프면 사람들은 동정과 연민을 보내지요.. 어쩌나,, 아파서 어쩌나.. 곧 나을거야..


하지만 정신이 아프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약해 빠져서 그렇다.. 마음 강하게 먹어라.. 등의 대응을 하지요..


사실 정신이 아픈게 더 힘든일인텐데 말입니다. 


육체가 아픈건 답이 있습니다.하지만 정신이 아픈 사람들은 사실 답이 없습니다. 어찌보면 육체의 아픔은 의사가 치유해주겠지만 정신적인것은 본인자신과 주변 가족에 의해서 치유가 될것입니다. 


이글을 쓰는 저는 정신과 전문의도, 심리를 전공하는 사람도 아닌, 위의 일상을 겪고 있는 일반인입니다. 


내 몸을 너무 혹사시키지 말아야 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약간의 다짐을 하는 차원에서 글을 올립니다. 내가 막 대하든, 잘 대하든 내 몸입니다. 내가 나 자신을 비하하거나, 칭찬하거나 그건 내 자신의 몫입니다. 남한테도 그렇게 잘하고 좋은 모습만 보이려고 애쓰는데 하물며 왜 내 자신한테는 그렇게 관대하지 못한지 모르겠습니다.


내 자신에게 관대해지려고 합니다. 내 몸 힘듬에 짜중내지 아니하고, 더 친해지려고 노력해야겠습니다. 


좋은날만 함께 한다면 그건 친구가 아니겠지요. 힘든날도, 좋은날도 함께할수 있는 나와 내몸을 만들어야겠습니다.


왜냐하면 평생 같이 가야 할테니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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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셀은 말했습니다. 불행의 심리적인 원인은 다양하지만 모두 공통점이 있다. 전형적인 형태의 불행한 사람은 어린 시절에 정상적인 만족을 누리지 못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 결국 그 사람은 어느 한가지 만족을 다른 만족보다 소중하게 소중하게 여기게 되고, 자신이 이룬 성과에 대해서도 자신에게 만족감을 주는 활동과는 상반되는 것이라고 과소평가하면서, 인생을 외골수로만 몰아가게 된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요즘에는  여기서 한발짝 더 나간 불행한 사람들을 볼수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절망의 늪에 빠져 어떤 만족도 추구하지 않으면서, 고통을 잊으려고 기분전환만을 추구합니다. 이런 사람은 '쾌락'의 광신자가 됩니다. 그는 자신의 생명력을 줄여서라도 고통스러운 삶을 견디려고 합니다.  예를들어 술에 취하는 것은 일시적인 자살이라 다름없다고 합니다. 술에 취해서 누리는 행복은 불행을 잠시 중단시키는데서 오는 순간적이고 소극적인 행복이라고 합니다.

동감을 할수도 있고, 부정을 할수도 있지만 개인적으로 기독교는 아니지만 러셀을 굉장히 존경합니다. 지금 하고 있는 일에 대해서 얼마나 만족을 하고 있는지 저한테도 여러분한테도 물어볼 일입니다. 만족하지 못하다면 못한 이유나, 혹은 더 만족할수 있는 방법이 있는지도 궁금합니다.

몇일전 힘들어하는 누군가에게 이런답장을 보냈습니다 ' 조금 버리고 사니까, 조금 욕심을 내려놓으니까  저 같은 경우는 마음이 나아지네요, 내리고 버린만큼 또 채워진답니다'

그랬더니 바로 답장이 오더군요 ' 요즘같은 세상 욕심따위도 없으면 무슨 낙으로 살아요' 이렇게요.. 전 생각 했습니다. 정말 가치관이라는것이 다들 틀리구나.. 공지영선생의 지리산 행복학교에서 연봉 200만원의 할아버지도 행복하게 살아간다는데 우리는 너무 많은걸 크게 생각하고 있는게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욕심 부리다가 저는 사람 많이 잃었습니다. 물론 얻은것도 많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결국은 조금 손해보면서 살아가는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어차피 인생은 사람끼리 살아가야 하니까요..

무조건 뭘 하든,  행복한 마음을 가지고 하세요... 생각하기 나름이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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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본격적인 더위가 시작되었다고는 안하나.. 그래도 더위는 추위보다 싫습니다..

더우면 끼어 입을 옷이라도 있지만... 덥다고해서 한없이 벗을수는 없는일 아니겠습니까..~~

그러다 보니 떠난지 언 4년이 되어버린 또 하나의 고향 알라스카가 생각이 나네요..

요즘 들어서 버라이어티에 자주 등장하는 알라스카.. 제 블로그 유심히 보신분들은 (얼마나 되려나..-.-)  아시겠지만 거기서 약 2년넘게 살았습니다. 아직도 그 당시를 생각하면 가슴에 활력이 넘치는 기분을 느낍니다..

그래서 경험은 소중한것입니다.. 아무리  버라이어티에서 광활한 알라스카의 땅덩어리를 보여줘도 가서 마음으로 눈으로 몸으로 체험하기전에는 감히 말할수 없는 땅이 알라스카입니다.. 국토 전체가 미국땅의 5분의 1이라는 큰 영토에서 전체인구가 50만명밖에 되지를 않습니다.. 더군다나.. 주도는 아니지만 그래도 우리가 알라스카 하면 생각하는 앵커리지에 30만명이 살고 있습니다... 나머지 20만명이 미국땅의 5분의1이 약간 안되는 지역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속된말로 범죄 저지리고 알라스카 들어오면 찾는것을 포기한다고도 합니다. 찾아낼 방도가 없다고 합니다.. 한국분들중에서도 그러한 분들 꽤 되는걸로 알고 있습니다만....^^ 확인한것은 없습니다..

무더위에 그 당시 여름즈음에 찍은 사진들이 있어서... 몇장 올려봅니다.


 
앵커리지에서 북쪽 고속도로를 타고 약 2시간정도 가면 forage glacier 라고  나옵니다.
(정확히 남쪽이었는지 북쪽이었는지는 지금 헷갈립니다)
가는길 휴게소에 들러서 찍은 사진인데.. 위 사진을 포함해서 아래에 나오는 사진 모두는
4월에서 6월사이에 찍은 사진입니다..
절대로 겨울에 찍은 사진 아닙니다..^^


이거 정말 5월에 산에 올라가서 찍은 사진인데요..
저때 생각난거 딱 하나 있습니다.. 그게 아마도 지금의 제 마인드를 갖게 해준것 같은데요..
평화롭게 살자.. 조금만 버리면  평화로울수 있다..
가지려고 하니 싸워야 하고.. 싸우다 보니 피가 터지는것이다..
지금도 이 마인드는 변하지를 않습니다..



밑으로 조금더 내려가면 6월이 다가오는데 호수는 녹지 않습니다..
셀카도 찍었는데.. 영 사진기가 후져서 인물이 안나오네요..^^


그나마 고속도로변은 좀 녹기 시작하는 6월입니다..
저기 보이는 물은 호수는 아니고 알라스카 바다입니다..
해수욕 못하는 검정바다요...


저기로 산위에 보이는 구름 보이시지요 ?
아... 그냥 말이 필요없습니다.. 넋좀 나갑니다..


이 사진 유심히 지켜보세요... 사진 정 가운데 계곡 같은곳에 푸른색 얼음 보이세요 ?
그게 빙하랍니다.. 얼음이 아니라 빙하요...
정말 4차원 세계 같았아요......


여기는 빙하공원 주차장인데요...^^
차 한대도 없어요...  내 차라도 찍을걸...


이게 알라스카가 여름을 맞이할즘의 시점입니다..

근데 실제로 여름이 오면요... 아마도 전세계에서 가장 멋진 날씨가 아닐까 싶어요... 여름 사진은 또 올릴께요...

정말 정말... 다시 가고 싶은곳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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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봄을 말하는 입춘을 지나고도 몇차례의 폭설을 경험하고 이제나 저제나 봄이 오려나 하는 와중에 기온은 영하권을 오르락 내리락 하고, 이제 꽃이 좀 피려나 하니 수차례의 봄비 아닌 봄비로 봄꽃은 지었고.. 여름이 오려나 하는 생각이 들게 하는 날씨 입니다.

오늘 오전에 어머니 병원에 들렸다가 퇴원을 원하시는 어머니와 말리는 의사와 우리 형제사이에 기묘한 신경전이 펼쳐지고 결국은 다시 침상에 눕혀 드리고 왔네요..

그래도 서운할까 생각들어 의과대학 교정을 한바퀴 돌아드리려고 했는데.. 봄기운은 그렇다 치고 담배를 너무 많이 피워대셔서 그냥 빨리 들어왔습니다.

좀 그런생각이 드네요.. 병원만큼은 전지역 금연으로 설정을 하면 어떨까 하는생각이요.. 아니면 흡연실을 만들던지요.. 환자들 가득한  광장에서  심지어 의사샘들도 피워대니 말 다한거지요..

뭐 이 글을 가지고 자유 어쩌고 저쩌고 하면 할말없습니다.. 제가 말한다고 법이 되는것도 아닌걸요..그냥 하소연입니다.^^

국립병원이라지만 어마어마한 주차비를 징수한 후에 일을 하러 왔습니다.. 와서  아침도 거르고 해서 커피한잔 하면서 창밖을 바라보자니.. 갑자기 멍해지면서.. 아무생각이 안나더라구요...그래서 오랜만에 글좀 써봅니다..


한 4년전인가요 ? 알라스카 거주할때  봄맞이 여행  가서 찍었던 사진입니다.. 세상이 이렇게 맑고 아름다울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 무진장 많이 들게했던 곳이었습니다..

한때는 이곳이 우리나라 태안처럼 기름 유출 사고로 죽음의 도시가 될뻔했지만 나라와 정부의 적극적인 대처로 예전 그 이상의 모습을 찾을수 있었다고 합니다.

자꾸 이런생각이 들어요... 저기로 저 당시로 다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 

앞만보고 과거 생각안하고 달려가는것도 좋겠지만..좋았던 당시를  생각해 보는것도 해볼만 한것 같습니다...

항상 좋은일들만  다가왔으면 합니다.. 저도.. 여러분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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