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그때도 지금도 여전히 사랑합니다.
작은것을 사랑하는 나 2018. 5. 30. 19:38 |언젠가 가실것을 알고 있었지만, 막상 가시고 나니 그 허탈함이 이루 말할수가 없습니다.
가시고나서 후회할일 만들지 말자고 살아생전 가급적 최선을 다했지만, 막상 가시고 나니 더 할수 있었음을 알수가 있었습니다.
아파하는 엄마에게 “ 엄마 누구나 아프고, 누구나 생을 마감해야해” 라고 말을 하였지만, 막상 가시고 나니 엄마는 아니었었으면 하는 바램이 있었음을 알수가 있었습니다.
엄마가 가지고 간것은 엄마를 걱정하였던 나의 간사한 마음입니다. 그러나 막상 그 걱정이 없어지니 또한 허탈합니다.
무엇이 없어지면, 마음이 편해지고, 행복해질거라 우리는 생각합니다. 그러나 막상 그 대상이 없어지는 것을 바라보세요. 그러면 뭐가 남는지를요. 마음이 편해지고 행복해지는것은 순간입니다. 곧 다시 돌아옵니다.
그러니 부디 어딘가 있지도 않을 그곳을 향해 세상을 살지 않을것입니다. 알아차릴수 있는 순간은 오직 지금 뿐입니다.
엄마의 육신은 떠나갔지만, 하루에도 몇통씩 전화를 걸어서 대화를 나누던 우리는 서로의 마음속에 남아 있습니다. 슬프지만 슬퍼하지 않습니다. 이 눈에서는 물이 흐리지만, 엄마의 눈에서는 웃음이 보입니다.
아픔속에서도, 섬망속에서도, 기력이 떨어져가는 상황에서도 아들을 보면 웃음을 주었던 당신의 마지막 웃음을 영원히 간직합니다.
“엄마 내가 누구야 ?”
“내 이름이 뭐야 ?”
정말 엄마만은 병상에서 가시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는데, 이런 물음을 엄마에게 할줄은 생각도 못했습니다.
간혹 눈을 뜨면 이야기 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아들”
몇일동안 물도, 밥도 못먹어서 혀가 말려들어간 상황에서도 가급적 또박또박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너무 누워만 있어서 허리가 아팠는지, 일으켜달라고 하는 엄마를 등뒤에서 한참을 안아주었습니다. 거친 숨을 내쉬는 엄마의 체온을 한 껏 느꼈습니다.
그렇게 안아주었던 그시간, 좀 더 희망을 가지고 치료를 하고자 내려간 중환자실에서 엄마는 더 이상 이승의 끈을 붙잡지 않았습니다. 중환자실로 내려간지 20분만에 그렇게 68년의 물리적 시간을 마치고, 이제 시간 없는 평온한 세상으로 여행을 떠났습니다.
우리는 울었지만, 엄마는 울지 않았고, 떠나는 모습은 아프지 않고 평온했습니다. 그러니 우리도 더이상은 울지 않아야 합니다. 그걸 알면서도 계속 눈물이 나옵니다. 얼마지 않아 우리도 곧 만나리라는 다짐을 하면서 육신의 형상과도 이별을 합니다.
이제는 재가 되어 흙과 어우러져 다시 우주에서 또 다른 역할을 하게된 엄마,
나비가 되어 오시고,
꽃이 되어 오시고,
바람이 되어 오세요
몇해전 엄마는 아들이 살고 있는 제주도에 오셨네요.
저 하늘 어디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면서 둘은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손가락으로 가리키던 그곳으로 엄마는 먼저 떠났습니다.
이 아들도 열심히 살다가 함께 하겠습니다.
사는동안 삶을 알아차리면서 그리 살아가겠다고 약속합니다.
미워하고, 시기하고, 화내는 어리석은 삶이 아니라,
진정 이 안의 내가 바라고, 엄마가 바라는 삶으로 나아가겠습니다.
우리의 육신은 영원하지 않습니다.
엄마의 육신이 흙이 되었듯, 이 몸의 육신도 흙이 될것입니다.
그러나 마음만은 저 구름 너머의 환한빛으로 살아가겠습니다.
구름이 마음을 채울때는 빛이 있음을 알아차리고 살아가겠습니다.
Rest in Peace M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