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본격적인 더위가 시작되었다고는 안하나.. 그래도 더위는 추위보다 싫습니다..

더우면 끼어 입을 옷이라도 있지만... 덥다고해서 한없이 벗을수는 없는일 아니겠습니까..~~

그러다 보니 떠난지 언 4년이 되어버린 또 하나의 고향 알라스카가 생각이 나네요..

요즘 들어서 버라이어티에 자주 등장하는 알라스카.. 제 블로그 유심히 보신분들은 (얼마나 되려나..-.-)  아시겠지만 거기서 약 2년넘게 살았습니다. 아직도 그 당시를 생각하면 가슴에 활력이 넘치는 기분을 느낍니다..

그래서 경험은 소중한것입니다.. 아무리  버라이어티에서 광활한 알라스카의 땅덩어리를 보여줘도 가서 마음으로 눈으로 몸으로 체험하기전에는 감히 말할수 없는 땅이 알라스카입니다.. 국토 전체가 미국땅의 5분의 1이라는 큰 영토에서 전체인구가 50만명밖에 되지를 않습니다.. 더군다나.. 주도는 아니지만 그래도 우리가 알라스카 하면 생각하는 앵커리지에 30만명이 살고 있습니다... 나머지 20만명이 미국땅의 5분의1이 약간 안되는 지역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속된말로 범죄 저지리고 알라스카 들어오면 찾는것을 포기한다고도 합니다. 찾아낼 방도가 없다고 합니다.. 한국분들중에서도 그러한 분들 꽤 되는걸로 알고 있습니다만....^^ 확인한것은 없습니다..

무더위에 그 당시 여름즈음에 찍은 사진들이 있어서... 몇장 올려봅니다.


 
앵커리지에서 북쪽 고속도로를 타고 약 2시간정도 가면 forage glacier 라고  나옵니다.
(정확히 남쪽이었는지 북쪽이었는지는 지금 헷갈립니다)
가는길 휴게소에 들러서 찍은 사진인데.. 위 사진을 포함해서 아래에 나오는 사진 모두는
4월에서 6월사이에 찍은 사진입니다..
절대로 겨울에 찍은 사진 아닙니다..^^


이거 정말 5월에 산에 올라가서 찍은 사진인데요..
저때 생각난거 딱 하나 있습니다.. 그게 아마도 지금의 제 마인드를 갖게 해준것 같은데요..
평화롭게 살자.. 조금만 버리면  평화로울수 있다..
가지려고 하니 싸워야 하고.. 싸우다 보니 피가 터지는것이다..
지금도 이 마인드는 변하지를 않습니다..



밑으로 조금더 내려가면 6월이 다가오는데 호수는 녹지 않습니다..
셀카도 찍었는데.. 영 사진기가 후져서 인물이 안나오네요..^^


그나마 고속도로변은 좀 녹기 시작하는 6월입니다..
저기 보이는 물은 호수는 아니고 알라스카 바다입니다..
해수욕 못하는 검정바다요...


저기로 산위에 보이는 구름 보이시지요 ?
아... 그냥 말이 필요없습니다.. 넋좀 나갑니다..


이 사진 유심히 지켜보세요... 사진 정 가운데 계곡 같은곳에 푸른색 얼음 보이세요 ?
그게 빙하랍니다.. 얼음이 아니라 빙하요...
정말 4차원 세계 같았아요......


여기는 빙하공원 주차장인데요...^^
차 한대도 없어요...  내 차라도 찍을걸...


이게 알라스카가 여름을 맞이할즘의 시점입니다..

근데 실제로 여름이 오면요... 아마도 전세계에서 가장 멋진 날씨가 아닐까 싶어요... 여름 사진은 또 올릴께요...

정말 정말... 다시 가고 싶은곳이에요...


제가 원래 홍어를 무지하게 좋아하거든요.. 근데 아시다시피 삼합집이 그다지 저렴하지는 않아요..그쵸 ?

그래서 직접 만들어 먹겠다고 해서.. 홈플러스 갔습니다..

가서 우선  홍어.. 물론 칠레산이지요.. 두팩을 사서...삼겹살 파는곳으로 이동..

삼겹살 파는곳에서 조금이라도 더 좋은 부위 같은 가격에 사려고 아줌마랑 살짝 실갱이... (주부같죠 ?)

(아니.. 같은 부위인데.. 자꾸 다른 부위를 줄라고 해서... 이거 주세요... 그랬더니 아줌마 얼굴이 안습이 되어서.. 제가 한발 물러났지요... 곤란하시면.. 그냥 그거 주세요.. 했더니... 이번에는 아줌마가... 아니요 고객님 그냥 이걸로 드릴께요.. 그래서.. 네... 하고는  받아 나갔지만 웬지 기분이 묘하더라구요... 나 때문에 이 아줌마 피해보는건 아닌지.. 그냥 내가 욕심 부리지 말걸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암튼.. 그리고 나서 주류코너로 와서 막걸리를 샀습니다...

(이 막걸리 하니까 한 마디 할께요.. 국순당은 왜 살며시.. 기존 막걸리 종판하고 살짝 무늬만 바꾸어서 1,000원 더 받는지 모르겠네요... 휴.. 서민의 어쩌구 저쩌구 하면서..소주도 그렇게 많이는 안 올리는데.. 그래서 저 서울막걸리로 다시 돌아왔어요..)

다시 본론으로 와서.. 막걸리, 홍어, 삼겹살 사가지고 집으로 와서는 우선 삼겹살을 된장발라서.. 그리고 약간의 커피(베트남산)를 넣고, 통후추, 마늘 등등 냉장고에 있던 자질구레한 양념 야채들을 넣어버렸습니다.

그리고는 한 두시간 넘게 끊였나요... 근데 속이 잘 안 익어서 급한마음에 고기 한덩이 넣은것으로 4등분하였습니다.. 그랬더니 핏물이 살짝 질질 나오더군요...그래서 다시 탕속으로 풍덩~~ 한후 약 1시간 후에..꺼내서

채에 받쳐 놓고는 접시에 홍어를 담았습니다... 음식점에서 본것처럼... 예쁘게....ㅋㅋ


저 가운데 놈은 음....음... 묶은지요...

거제도에서 담았다던데.. 맛 기가 막혀요...

홍어냄새가 물신 풍기는게.. 칠레의 향이 그대로 전해져 내려옵니다..


이렇게 홍어를 준비하고.. 보쌈용 삼겹살을 완성하였습니다..
삶아서 자르고 나니까 그 양이 은근 많더라구요..



하여간 이렇게 해서 막걸리와 함께 먹었습니다..

어느 삼합집 부럽지 않더군요... 크하.... 시원하다...~~~

오늘은 무엇을 먹오볼까나요 ~~~   삼계탕 국물로 쌀국수를 만들어 봐야겠습니다...




행복의 정복 - 10점
버트란트 러셀 지음, 이순희 옮김/사회평론

참으로 많은 생각을 하게 한 책입니다.. 그냥 술술 넘어간다 싶으면서도.. 기존의 이러한 책들이 현상만을 짚었다면 러셀은 분명히 해결책을 주었음이 분명합니다.

저 시대에 글을 쓰면서도 어떻게 작금의 현실과 이렇게 같을수가 있는지에 대해서 읽는내내 놀라움을 금치 못하였습니다.

행복은 가만히 찾아오는것이 아니라는것은 누구나가 알고 있습니다. 그걸 위해서 우리는 아침부터 잠자리에 들때까지 일을 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행복을 위해서인지 돈을 위해서인지는 생각을 해볼 일입니다.

그 기준이 모호하여 자칫 잘못 생각하면 도피적인 생각을 할수도 있겠지만.. 러셀은 분명히 밝힙니다..

기본적인 사항들조차 갖추지 못한 상황에서는 나의 책은 의미가 없다.. 내가 무슨 말은 할지언정 이해를 하려고도 하지도 못할것이다..

나는 기본을 갖춘 상황에서 정녕 행복을 정복하고자 하는사람들에게 이글을 쓰는것이다..

이렇게 말하면서... 그는 해결책까지 언급을 해주고 있습니다..

2003년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의 오래된 미래 이후로 상업적인 마음을 벗어난 글을 보게 되었습니다.. 이제 3번째 읽습니다...

그리고 월든을 같이 읽기 시작하였습니다..

정말 깊은 생각을 하게 하는 책입니다... 감사합니다...







수영하다가 책읽다가... 맥주마시다가.. 자다가... 그렇게 오후가 되어서야 외출을 하기로 했습니다..

외출이라고 해봐야... 오토바이를 빌린다거나.. 지프투어를 한것은 아닙니다..

언제나 튼튼한 두다리를 가지고 횡보하였습니다..


리조트 나와서  처음 만난 식당..
솔직히 다 똑같이 생겨서.. 식당인지 집인지 모르겠음..
리조트 근처 식당은 다 다녀봤으나 맛은 다 비스무리 함...



혹여나 여기 묵으시는 분  오션스타요... 괜찮은거 같아요...(외관상)


리조트에서 나오니 바로 이런 돌맹이가 인도를 가로막았네요..
판티엣에서 11km....쌩뚱맞지요 ?


세일링 클럽이라고.. 여기는 요트타고.. 패러세일링 하는 곳이더군요
개인적으로 해보고 싶었지만..  독서로 퉁..^^



여기는 솔직히 뭔지 잘 몰라요..
리조트 중의 하나인데 그냥 찍었네여..



여기도  밥 먹었던 식당중의 하나...
쌀국수는 무조건 시킴... 싸니까...^^



웃기죠 ? 이게 칼라마리래요...
전 아웃백 칼라마리만 생각하고 있었는데... 헉...



여기는 외국사람들이 많길래 그냥 들어가서 맥주 한잔 먹은곳
더워 죽는줄 알았습니다..


이게 웃겨요... 치킨이라고 해서 시켰는데..
맛 완전 가관입니다...
저 식성 좋은데... 다 못먹음....


얘네들 가니쉬는 무조건 토마토 아니면 오이인가 봅니다...
나름 볶음밥인데.. 내가 더 잘할것 같음,...


호치민에서 출발한지 6시간만에 판티엣을 거쳐 무이네에 도착을  하였다. 90년대 한국을 누볐던 시외버스를 다시타고 6시간에 걸쳐 시끌벅적한 현지 아이들과 함께 온 소감은.....' Jesus Christ...... ' ^^



그래도 버스가 호텔앞에 바로 내려준다.. 첫 여정은 씨홀스라는 리조트이다.. 밤에 내려서인지 아무것도 보이지가 않는데 웬 청원경찰 같은 사람이 다가와 다짜고짜 손가락으로 손짓을 하면서 트렁크를 앗아간다.. 나름 벨보이인가보다.. 그날은 너무나 심신이 피곤하여 바로 떨어졌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객실복도.. 저기 보이는것도 룸..
커텐만 치면 방이다.. 너무 오픈인가 싶을정도다..


아침먹으러 가는길..
저기 파랗게 보이는것은 물론 수영장이고 바다다...

아침 10시정도인데 벌써부터 바다가 햇살을 따갑게 내리쬐 준다...
두근두근 거리는 마음으로  밥집으로..

여기는 수영장에 있는 Bar
나름 기대를 가지고 주문을 했었지만.. 맛이없다..
그냥 눈요기만 하세요...



여기가 식당 올라가는 입구..
2층에 마련되어 있고.. 서비스는 솔직히 기대하시지 말고..그냥 즐기세요 ^^


사진이 잘나온거 같아서요...
수영장하고 바다가 한아름에 들어오네요...
이제 수영장으로 들어갈때네요..

 


6월23일 아침비행기로 호치민으로 떠났다.. 비행기는 베트남 에어라인인데.. 비행기 참 구지다...ㅋㅋ

도착해서는 그간 알아본 정보들 말고 아는 사람을 통해서 택시를 잡아타고 갔는데 역시나 나중에 보니 50,000동 더 받더구나.. 그 사람 잘못이 아니라 택시 잘못인데도 아쉽다.

그 뒤로는 무조건 마이린 아니면 비나선만 타고 다녔다.. 이 두 택시 타고 다닌 경험에 의하면 한국 택시보다 훨씬 친절하다. 간혹 잔돈이 없다고 쩔쩔맬때가 있어서 그렇지.. 친절하다..

그  유명하다던 데탐거리에 도착해서 4시30분 무이네 버스를 기다리기 위해서 이집저집 돌아다니면서 쌀국수며, 맥주등등을 마셨다..

 

삼시세끼를 메인이던 사이드건 간데 쌀국수를 무조건 시켰다..
그중에 가장 맛있던 집이었다.. 한국적 맛하고 천지차이로 달랐다..


사전정보입수를 통해 알게된 구멍뚫린 얼음 이다..
돌아다녀보니  조금 있는집들은 구멍  뚫린 얼음이고 좀 싸다싶으면 조각얼음을 주는걸 알았다..
다행히 장이 튼튼했는지 이것저것 먹어도 탈은 나지 않았다.  


16:30분 데탐에서 풍짱 버스를 타고 출발을 했는데.. 운이 없는건지.. 내 버스는 왜이리 후진걸까.. 못벼개도 없고 더군다나 바로 옆으로 해서 아이들이 5명이나 탓다.. 중국사람보다 더 시끄러운 걸 그제서야 알았다..

무이네까지 거리는 200키로라는데 시간은 6시간이 걸린듯 하다.. 그도 그럴것이 오토바이 버스 사람 자가용 할것없이 무조건 합류다... 도로상으로.. 사고 안나는거보면 신기할 뿐이다.




벌써.. 1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네요.. 10년전 여권을 발급받으면서.. (그당시 5년만기에 5년연장이었지요...)

이거 죽을때까지 쓰겠구나.. 했는데.. 어느새 10년이 지났네요..

다음주에 해외 나갈일이 있어서 무심코 꺼내본 여권에 만기일이 7월 6일로 다가왔네요..

확인을 안했더라면.. 낭패를 볼뻔했네요.. 그런 의미에서 앞으로는 Alert를 주려나 모르겠네요..IT 한국이니까요..

하여간..

사진이 필요하다고 해서.. 네이버 열심히 뒤져서, 잠실에서 사진 싸고 잘찍는다는 집 갔는데요..^^ (신천역 위치)

글쎄요.. 그냥  사진기 가져다놓고, 엡슨 인화지에 찍는 집이에요.. 완전 좋은 사진품질은 안나와요..

급한김에 찍었어요... 섞어서 15,000원이더라구요... 네이버 리뷰가 좋아서 기대를 해서 그랬나봅니다..

하여간..

신천에서 오다가 롯데월드 들려서.. 여름바지 하나 구입하고... 송파구청으로 갔습니다..

구청 민원실 2층으로 가시면 여권민원실이 있네요...

공익 근무하시는 분들한테 신청서 받아서 작성한후 증지를 삽니다...

이 증지 싸지 않아요...만원이 올랐더라구요... 저 10년전 할때 45,000원이었는데...

근데요... 왜 이것도 신분증인데... 돈을 이렇게 비싸게 받나 모르겠어요... 아니 처음에 받는건 그렇다 쳐도.. 10년을 기한으로 연장하면서 또 받고... 왜 그런건지.. 여권장사하는 건지... 국제기금을 낸다 하더라도.. 넘 비싸요..

좀 있으면 주민등록증도  10년만기로 돈내라 할지도 모르는 대~~한민국입니다..

가격은 55,000원입니다.. 신규 재발급.. 다 그러네요... 연장이 가능하신분은 25,000이랍니다..

그리고 나서는 접수처에 가면.. 직원분이 한마디도 없이..^^ 신청서 스캔하시고... 그리고 두번째 손가락 지문 뜹니다..

이건 또 왜하는건지... 미국비자 때문에 따라 한다 소리도 있고... 하여간.. 죄진거 없으니 하지요..머...

그리고 나면.. 기존여권에 무자비하게 구멍을 뚫어요...

이렇게요..


저 사진에 빨간색 부분에 무효라고 구멍을 뚫습니다.. 가슴이 찡해요.... 내 인생의 또 하나의 추억거리가 생겼구나 하면서요..

그리고는 아무말씀 없으시던 직원분 한말씀 하시네요...

월요일날 오세요.........

이렇게 끝이 납니다..

아 접수증 가지고 가야 합니다...




비행기는 제 어릴적부터 지금까지의 로망입니다..

가끔 잠자기전에 '내일아침 조중훈 회장님한테 전화를 걸어서 전세계 돌아다닐수 있는 쿠폰 하나만 주세요. 정말 열심히  돌아댕기고 오겠습니다' 라는 망상을 하곤 합니다...

그렇게 비행기에 관심을 가지고 찾다보니 별에별  비행기들이 다 있네요... 물론 퍼온 사진들입니다..

그 첫번째..

실제로 날아가는 건지는 모르겠습니다.. 근데 너무나 귀여운 오리비행기인것 같습니다..
전시품인지 하여간 에어버스 기종이네요.. 공학도분들... 저거 날수 있습니까  ?






요거는 유나이티드  항공이 철도회사 유니온 퍼시픽을 합병한것을 풍자하는 비행기입니다..
좋다는건지 나쁘다는건지는 모르겠습니다..^^ 단지 은하철도가 생각이 나네요..




요고는 풍자가 확실한듯 합니다..
마이크로소프트 윈도우에서 공포의 블루스크린이 자주 뜨는것을 빙자한듯 합니다
꼬리부분에 sp3.... 인상적이네요...





요거이는 아메리칸 항공이 물류비 절약을 위해서 페덱스와 전략적 협정을 맺은것에 대한 퍼포먼스입니다
개인적으로 페덱스 너무 좋아합니다... 왜냐면... 글세요... 이미지가 좋아요...^^





요거이는 웃깁니다..
이 비행기를 탑승하면 이런 안내방송이 나옵니다.
"승객여러분 본 비행기는 여러분의 안전을 책임질수가 없습니다. 또한 잦은 결함과 부품의 손상으로 인하여 간혹 불시착의 위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가격면에서는 그 누구보다도 저렴하다고 말슴드리고 싶습니다
즐거운 여행 되세요 ~" ^^



요거는 비행기 탑승하면.. KFC가 무료라는 점...^^



그렇다면 이 비행기는 연료대신 짐빔으로 돌아가나요 ~~ @@@



이거는 뉴욕공항에 실제 있는 벽화라고 하네요...분위기 좋지요 ~~ ^^




마지막으로 이시대 저시대를 넘어선 최고의 승무원입니다.. 아웅 ~


여기있는 모든그림은 FreakingNews.com에서 가져온 것임을 밝힘니다..



스위치 - 10점
칩 히스 & 댄 히스 지음, 안진환 옮김/웅진지식하우스(웅진닷컴)


다음 네문장을 읽고 자신이 어떤 항목에 해당하는지를 생각해보라


1. 나는 특정한 유형의 사람이며 좀처럼 다른 유형으로 변화하기 힘들다


2. 내가 어떤 유형의 사람이든 나는 상당히 변화할수 있다.


3. 행동방식을 바꿀수는 있겠지만 나라는 사람이 지는 주요 특성들은 바꾸기 힘들다.


4. 나는 언제든 ‘나라는 사람’의 특정한 유형에서 기본적인 부분들을 바꿀수 있다.


스위치에 나오는 자기 판단형 질문이다. 곰곰히 생각을 해보았다.

나는 어떤종류의 사람인지를...  스위치의 저자 댄 히스는 책에서 1,3 번의 경우는 고정형 사고방식을 가진자.. 2,4번의 경우는 성장형 사고방식을 가진자라고 한다.


그리고 어디에 해당하는지를 잘모를경우에는 좀더 세심한 인생의 관찰이 필요하다고 한다.


그래서 나를 생각해보니.. 난 어디에 해당하는지 잘 모르겠더라구... 이런.. 세세한 나의 관찰이 필요한게구나... 근데 얼마나 더 나를 관찰하란말인가.. 하는 생각에 좀더 생각을 해보니
난 지극히 고정형 사고방식이더라구.. 그것도 성장형 인척 하면서  마음 안속에는 바뀔수 없는 강한것을 가지고 있는 그러한 방식의 소유자인것이다.


그러니 헷갈릴수 밖에 없었다... 맞다.. 고정형...


근데.. 위 두가지 방식중에 뭐가 좋다 나쁘다는 솔직히 판단할수는 없다.. 장단점이 있게 마련이니까... 단지 좀더 인생의 변화와 개혁(?)을 필요로 한다면 성장형이 낳지 않을가 싶다...


내가 본 차이는 그렇게 크지는 않다.. 단지 좀더 구체적이냐 아닌가 하는가의 차이인듯 하다.. 고정형의 경우는 어떠한 일에 대해 " 너 잘했다," "너 못했다" 로 나누지만


성장형의 경우는 " 이번일은 어떠어떠한 일이 이렇게 되어서 참 잘된것 같다" " 이번일에서는 이러이러한 점 때문에 조금 어려움을 겪은거 같다" 라는  표현을 쓴다고 한다..


비단 일에서 뿐만이 아니라.. 인생에서도  사람관계에서도 이러한 현상은 나타난다고 한다..


오늘 참 좋은날이야... 내일도 좋을거야...가 아니라...


"오늘은 비가 올랑말랑 하는 약간을 나를  긴장하게 하는날씨와 더불어 오전에 한강에서 펄떡이는 물고기를 보면서 내 하루도 펄떡이게 좋았던것 같아.. 그리고 내일또한 나에게 수많은 에너지를 가져다주는 나날이 될거야.."
라는 억지 문장으로 리뷰를 해봅니다..




딱히 특별한 주제도 없습니다.. 시간이 나길래 머리속을 가상화면으로 열어보니 할말은 많은데 정리가 안되네요..

사실상 이리저리 홍반장도 아니고 말할거리가 많은데 깊이가 없네요.. 그러면서 생각해봅니다..

내 지나온 시절은 어떠했는지를 말입니다..

먼저 지나온 시절을 생각해보면..  불행했던 시절은 없었던것 같습니다.. 마음 아픈 시절과 순간들은 너무나도 많았지만, 그것이 불행으로 승화(?)되었던 적은 없는것 같습니다..

1975년 태어나서 (사실상 태어났는지도 몰랐지요...누군들 아나요.. 부모님의 사랑으로 만들어진 작품인걸요..) 

1981년 유치원을 다니던 시절부터가 생각나네요.. 아 이당시 서울 여의도에 놀러가서 국풍81인가 하는 축제에 외할머니와 함께 간 기억이 나네요.. 거기서 마패를 샀던 기억도 있는데...중요한건 아래입니다.

(유치원 재학(?) 당시 엄마한테 받은 100원을  아무도 모르게 숨겨놓고 나중에 파면 1000원이 될거라는 생각에 유치원 앞 마당에 묻은 기억이 나네요..묻고나서 유치원졸업때즘 숨겨놓은 100원을 파려고 위치를 보니 어딘지 알턱이 있나요.. 동개 똥개가 먹을거 찾아다니듯 두리번 거리는 모습을 본 부모님은 뭘 그리 찾느냐고 물어보길래 아무 대답을 못했지요..) 

1982년 국민학교 ..(지금은 초등학교라고 불리는 그 학교를 들어가서 담임선생님의 이쁨을 받고 무럭무럭 자랐답니다. 왜냐하면 그 당시  그 지방에 차로 아이 데려다 주는 집이 드물었거든요..)

1983년 국민학교 2학년때인가요...

(서울에 가서 이모님댁하고 자연농원을 갔다가 누군가 사준 메달을 가지고 그 다음날 학교에 갔다가 골마루라고 하지요 ? 지금은 학교가 대부분 콘크리트나 뭐 이런거지만 그당시만해도 골마루가 대부분이었습니다. 하여간 그 골마루 구멍난곳으로 메달이 쑥 빠져들어갔습니다. 아 그때 처음 알았습니다.. 하늘이 노랗게 보일때도 있구나 하는것을 말입니다. 아직 순진할때였는지 친구들과 함께 (반강제지요)  그 뚫린 골마루를 보면서 " 하느님! 이 목걸이를 꺼내주세요~" 하면서 기도를 드렸는데, 기도가 약했나봅니다.. 무릅마 아프더라구요..)

1986년 5학년때이지요..

(학교  전교 어린이 부회장이 되던 때였습니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전체조회시간에 나가서 6학년 회장형이랑 6학년 부회장 누나 그리고 나 3명이서 교장선생님한테 임명장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무슨활동을 했는지는 기억이 안납니다.
꼭 지금의 정치활동 같지요.. 나름 선거할때는 "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거창한 선거유세를 했지만 막상 부회장이 되고나니 뭘 하는건지 잘 모르겠더군요...)

그리고 1987년 아.. 이래서 사람들이 정치를 하는구나..

(이제 내가 6학년이니 전교회장에 출마를 했습니다.  돌아다니면서 부회장후보와함께 바쁜 일정을 소화했지만 결국 옆동네 살던  친한 여자친구한테 회장자리를 내주었습니다. 그리고 아마 울었지요... 그 후로 지금 이순간까지 자리에는 절대 연연하지 않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렇게 초등학교 시절이 지났나 봅니다.

1988년 중학교를 들어가면서

(아 나도 이제 성인이 되어가는구나.. 공부라는거 정말 열심히 해야 하는구나 했지만.. 중학교가 남녀공학인지라 어려서부터 왜이리 예쁜애들이 눈에 뛰었는지 모르겠습니다. 더군다나 공부를 열라게 잘했던 우리친형 중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지금 그 문제가 많다는 대원외고에 입학을 했습니다. 그게 그렇게 유명한 학교인지는 몰랐습니다 그 당시에는요. 지금 뉴스보면 아.. 형 나온학교가 좋은곳이구나 라는 생각을 합니다.)

1989년 형 따라 서울로..

(형이 서울로 학교를 가다보니 저 또한 어쩔수 없이 전학을 가게 되었습니다. 일명 8학군으로 가야 했는데  거주기간이 모자라니 신청하고 기다리라고 하더군요. 그리하여 강남구 일원동에 거주를 하면서 동작구 상도동에 있는 장승중학교라는곳을 다녔네요.. 거기서는 딱히 생각나는게 없습니다..  한 8개월인가만에  학교를 집앞으로 옮겼습니다. 거기가 오세훈 시장이 나온 곳인줄은 그당시에는  몰랐지요...)

1991년 다시 흑석동으로...

(중동중학교라는  나름 명문학교를 졸업은했지만 이거 뭐 지방 촌놈이 올라와서 서울 그것도 강남애들하고 겨룰라니 뭐 하나 되는게 없더군요. 성적은 뚝뚝 떨어지고, 중3때는  어여어여 하다보니 일찍이 찾아온 질풍노도의 시기에 빠져서 담배를 피우게 되고.. 그나마 다행인건  술은 구역질 나더군요.. 그렇게 졸업을 하고 또 무슨 개월수가 모자란다고 다시 동작구 흑석동에 중대부고로 넘어갔습니다. 현실에서는 중대부고가 명문고로 탈바꿈했지요...사실상 여기서 친한친구들은 다 만난것 같습니다. 지금도 어제도 아침에도 대화를 하는 놈들이 다 이때 만났던 아이들 입니다..  누구나 그렇지만 고등학교 친구들이 오래가는것 같고, 추억도 많고.. 그래서 영화소재도 고등학교 소재가 많지, 중학교, 초등학교, 대학교는 없나 봅니다)

1992년 이제는 청주로...회귀

(무슨 이유에서인지 엄마는 저를 다시금 청주로 회귀를 시키네요.. 고향이긴 하지만 서울물에서 질풍노도의 시기를 겪은지라 촌스러운 느낌이 팍팍 들어서요...별로 도움이 안되더라구요.. 햄버거집 누나를 놓고 어릴때부터 친구랑 주먹다짐도 하고, 친구들 몽땅 데리고 서울로 가서 이태원에서 술도 마셔보고, 락카페에가서 여자도 꼬셔보고.. 하다보니 점점 수능하고는 멀어지더군요...)

1993년 난생 처음 수능이라는것을 보면서..

(이 당시 수능을 두번 보았지요... 여름에 한번 겨울에 한번 그리고는 잘 나온 점수를 택해서 대학갈수 있다고 해서.. 참 열심히 공부를 해봤는데... 점수는 영... 시원하지가 않더군요... 여름에 점수 잘 받은 애들은  학교 쉬엄쉬엄 다니는데.. 저를 포함한 일부 아이들은 휴휴... 하면서 겨울을 기다렸는데... 참... 그점수가 그점수더군요...  이렇게 졸업을 하는구나.. )

1994년  대학이라는곳에 입학..

(대학 1학년 시절... 나름  열린환경이다보니 공부도 잘되더라구요.. 근데 그것도 한때 이제 당구치고, 술먹고, CC끼리 놀러다니고 하다보니..  크.. 영장이 나오네요... 연기는 안했습니다. 빨리 가야지요...)

1995년 1월 12일 

(육군 제32사단 신병교육대에 입소를 하는 날이었습니다. 엄마차에 친구들, 애인 저까지 다 타고 갔습니다. 아아.. 군대라는게 무엇일까 ? 그냥 선배들이 말하던 그런 지옥같은 곳일까 .... 정말 병장되면 편해지는것일까 등등의 생각을 하고 어마어마하게 큰 위병소를 지나가고 커브를틀자마자... 이런 dog 새끼들 전부  대가리바가..~ 라는 조교의 말에.. 휴.. 그냥 다시 나가서 좀 연기를 하고 나중에 올까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근데 이게 웬일입니까.. 지금 글을 쓰는 지금 이순간 저 .. 이제 민방위도 아닙니다... 그렇게나 시간이 흐른 셈입니다...)

1996년 슬픈한해

(군대 상병시절.. 아직 제대날짜를 세어봐서는 안되는 짬이지만.. 그렇게 나름 적응을 하고 있던시절.. 중대장님으로부터 호출이 왔습니다.. "충수야.. 아버지가 운명하셨단다.." .... 아... 정작 왜 반응이 오지 않는것일까.. 아니 실감이 안나서.. 뭔가.. 마음이 설명할수 없는 블랙홀에 빠지는듯 했습니다.  그나마 근무하던곳이 논산이었고..집은 청주라서 빨리 갈수 있었지만, 가보니 정말 아버지는 영정사진에 계시더군요.. 가족, 부모잃은 슬픔이라는거.. 말하지 않아도 느끼실수 있을겁니다... 상상만해도.. 참.. 슬픈일입니다...)

1997년 공부...하자..

(아버지가 그렇게 가시고나서 예전에 서울에 계셨을때 하셨던 말씀이 지금도 가슴에  메아리를 치더군요..

"괜히 공부하라는거 아니다.. 다 필요가 있는것이다.. 그리고 그때를 대비해서 미리 공부를 하는것이다..니가 지금 하기 싫어도 언젠가는 그 필요성을 느낄것이다. 국영수만이 공부는 아니다.. 살기위한 공부도 해야한다.. 그 공부를 많이 한 사람은 좀더 편하게 살것이고, 아니라면 어쩔수 없이 힘든삶을 살아야 한다."

그리고는 복학을 앞둔 1년간 참 영어공부 많이 햇습니다.. 토플도 공부하고... 단어도 많이 외우고.. 그리하여 좀더 좋은 학교로 갈수 있었습니다...

1999년~ 2001년  새로운  인생..

나이를 한살 한살 먹어가면서 인생에 대한 생각을 참 많이 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도 선을 만들어야 하고..그래서 참 열심히 살았던것 같습니다. 과일도 열심히하고 주말에는 알바하면서 1주일 생활비 벌고, 각종공모대회에 나가서 입상하여 상금도 받았고... 그걸로  해외여행도 다니고 그랬습니다.. 한 대회에서는 입선 아니 장려상 받았는데, 50만원인가 상금이 나와서 제가 번돈하고 합쳐서 100만원을 만들어서 엄마한테 나 캐나가 다녀오렵니다.. 했더니 그건 용돈쓰고 비행기표는 엄마가 해준다고 하시더라구요.. 그렇게 캐나다에 가서 여름을 지내고 오면서 거기 거주하고 있던 베프한테 신세를 많이 지게 되었습니다.. 그때를 시작으로 해서.. 외국을 참 많이 나간것 같습니다. 학교에서 주최한 BK21 지원으로 일본 전역을 15일동안 돌아볼수 있는기회도 있었답니다..

2001년  대학원 시절... 2003년

누가 알았겠습니까... 제가 대학원까지와서 공부를 할줄을요... 참 알차게 보낸 2년이었습니다.. 학교일.. 조교일.. 연구실일.. 각교수님일들.. 그리고 학교 교직원분들과의 친분관계 거기다가  통계프리랜서를 통해서 하루 24시간이 짧을날이 많았습니다..  그리고 대학원 원우회에 들어가면서...(이거는 앞서 밝힌 한자리가 아닙니다^^) 원우회분들하고 학술자원답사도 가고.. 친한 선배랑 호주를 한 2주 다녀오고..  알차게 알차게 보내다보니... 어느세 졸업이더군요.. 논문을 마무리하고.. 학교에 남을지 취업을 할지 고민하다가.. 교육기관의 공부는 여기까지만 하자... 이제 일을 하자 라는 생각에 여기저기 원서를 냈는데 다행히도  빨리 취업이 되었네요... 그나마도 제가 유통으로 논문을 썼는데... 유통회사에 들어가게 되었지요... 현재는  GS리테일이엇다가.. 아마도 롯데마트로 또 넘어갔다던데...^^

2004년 유학준비...

첫직장을 1년정도 하고 사직을 하였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맘이 떠났습니다.. 그 이유는 공부에 대한 미련이었나 봅니다.. 그래서  한동안 손을 놓았던 토플을 다시 공부하고 그렇게 미국학교에 원서를 내고.. 갈망하던 I-20를 받고 나서 아... 또 새롭게 한번 가보겠구나 라는 마음가짐이 들더군요..

2005년 -2006년  미국에서의 2년...

결론먼저 말씀드리자면 학교 졸업 무사히 잘했습니다...^^ 근데 더 큰것을 얻었던 것은 한정된 제 머리속의 마인드였습니다. 그 큰 미국땅 반을 돌아다녀봤고.. 좋은 한인분들을 많이 만나뵙고.. 훌륭하신 교수님들도 만날수 있었던 기회였습니다. 미국땅의 5분의1을 차지한다는 알라스카를 차로 끝에서 끝까지 다녀기도 하고.. 일본사람들이 남아를 낳기 위해서 간다는 유황온천도 가보고... 연어사업을 위해서 연어상선도 보고... 참 유익한 시간들이었습니다..





2007년 -2009년
  다시 직장.....


점점..  말수가 적어지지요... 아마도 최근의 일일수록 점점 말할게 없어지나봅니다.. 아직 추억이라고 하기엔 기간이 짧아서일까요... 글쓰기가 망설여지네요...  아마도 한 10년지나면 또 많은 글들을 쓸 칸이 되리라 생각하고 비워두겠습니다.

2010년 오늘...

세상 누구보다도 행복하고 긍정적인 마음으로 살아가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과도한 욕심보다는 현명한 욕심으로 삶을 살고.. 내 몸도 아끼고.. 내 마음또한 아끼는 그러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누구와 비교하는 삶도.. 누구를 시기하거나 질투하는 삶도 아닌.. 그냥 이충수 만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그렇게 지금을 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