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살다보면 무언가에 빠지곤 합니다.. 그게 무엇이 되었건 선악을 떠나서 뭔가에 빠지게 됩니다.. 다행이 공부에 빠지게 되면 남들이 봐주는 훌륭하고 명예로운 자리에 오를수 있게 됩니다.. 또 돈버는일에 빠져서 성공을 하게되면 사회적으로 경제적으로 부러움을 한몸에 받는 사람이 될수 있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나쁜.. 아니 정확히 말해서 좋지않은 일에 빠지게 되면 아픔의 결과가 다가옵니다.. 결국 그 아픔이 또 다른 아픔을 가져오고 그런 악순환이 결국은 우리가 보게되는 폐인이라는 그런 결과를 가지고 오게 됩니다..

하지만 이 또한 선의 노력은 선을 가지고 오고, 악의 노력은 악을 가지고 오는것은 아닙니다.. 죽어라 열심히 공부하고 쉬지않고 일해도 그 자리에 머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심심해서 산 복권이 당첨되서 인생의 역전을 맛볼수 도 있습니다.. 이게 인생입니다. 

하지만 결국 노력은 결과를 가지고 옵니다.. 얼마나 지금 현재 자기 자신에게 노력을 하고 있는지 생각해봐야 합니다.. 지금 글을 쓰고 있는 저는 커피숍에 3,300원이라는 돈을 주고 앉아 있습니다. 뭘 위해서 이 글을 쓰고, 뭘 위해서 별로 맛도 없는 쓰디쓴 커피를 마시고 있는지.. 이건 뭘 위한 노력인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하고 싶은 일을 한다는거 그게 인생의 최대,최고의 노력이 아닐까 합니다.. 물론 그렇게 살수만은 없는게 현실이기에 할수 있는한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해야 합니다.. 저는 이글을 쓰면서, 단 한사람이라도 이글을 읽는다는것에 조그마한 행복을 느낍니다.. 제일 우선을 저를 위해서 글을 쓰지만.. 제 글을 누군가가 보고 비판을 하건 긍정을 보이건 봐줄수 있다는것에 행복을 느낍니다.. 이게 인생의 얼마만큼의 행복인지는 모릅니다. 하지만 불행은 아닙니다.. 최소한 회사에서 받는 스트레스 엔돌핀을 어느정도 긍정의 엔돌핀으로 바꾸어 줄수 있는 그런 생활이 아닐까 합니다..



갑자기 나온 이 동영상은 제가 한참 룰렛에 빠져 있을당시입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철저한 제로섬 게임을 했습니다..

어머니가 일찍이 골프를 시작하신 관계로 저 또한 골프를 접할 기회가 어릴적 부터 있었습니다.. 그리고는 유학중 원없이 골프도 쳤습니다. 저렴한 이유가 가장 큰 이유 였지만.. 미국에서도 마찬가지로 인맥관계에는 골프만큼 좋은게 없더군요..

룰렛이라는것을 접할 기회가 없던 저에게 우선은 라스베가스 라는 도시자체가 위엄으로 다가왔습니다.. MGM에 숙소를 잡고 거리를 돌아다니고 구경을 하고 저녁이 되어서 저는 살짝 카지노는 들어갔습니다. 여기를 가기전에 아시는 형님들이 해주신 말씀을 굳게 가슴에 새기면서 돌아다녔습니다.. "처음에는 무조건 머신(machine)을 돌려라 거기서 벌게되면 그걸로 테이블로 옮겨라.. 절대 한계를 초과하지마라,," 등의 이야기 였습니다
 
그리고는 어떤 할머니가 한숨을 내쉬면서 떠난 머신 앞에 앉았습니다.. 머리속으로 굳게 다짐을 하였습니다.. 이거만 잃으면 그냥 미련없이 자리를 뜨자.. 하면서 $100을 집어넣었습니다.. (형님들이 하신 이야기 중에 또 하나가 머신을 하게되면 절대로 페니를 하지마라. 가장 판돈이 큰 자리에 앉아라..) 뭔지는 모르겠고 최대가 $3 베팅이 가능하여 눌렀습니다.. 핑핑 돌아가더니 아무런 반응이 없습니다.. 돈의 숫자는 100에서 97로 돌아갔습니다.. 아~ 이렇게 순식간에 3불이 날라가는구나.. 하지만.. 그런사이에 제 손은 어느새 베팅 버튼에 들어가 있습니다.. 다시 눌렀습니다.. 94-91까지 왔습니다. 처음의 마음이 벌써 무너집니다.. 그만 빼서 갈까 하는 소심한 생각이 들더군요.. 하는 찰나에 벌써 손은 다시 베팅 버튼으로 가 있습니다. 다시 눌렀습니다.. 그러자 화면에 뭔가 빨간줄이 가더군요.. 그러더니 위에 달려 있는 이발소 표시가 돌아가더군요.. 그리고는 제 돈의 표시가 갑자기. 돌더군요..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한두명씩 모여들고.. 제 바로전에 했던 할머니가 저와 모니터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습니다.. 이 모든 동시상황속에서도 돈은 돌고 있습니다..

이쯤 되면 예상을 하시겠죠... 잭팟이 터졌나 하는생각을 하실텐데 실망스럽게도 그건 아닙니다.. $5,000불 미만에서 멈추었습니다.. 멋있게 제복을 입은 분이 오시더니.. 칩으로 받을건지 티켓으로 받을건지.. 현금으로 하실건지 물어보고 저는 무조건 현금으로 달라고 했습니다.. 아직 현실감이 느껴지지가 않았습니다.. 그리고는 그 아저씨를 따라서 환전소로 가서 현금을 받았습니다. 그때야 실감이 되더군요.. $100 지폐를 한움큼 받아서는 이걸 어쩔까 하는 순간에 향한곳은 다름 아닌 머신 앞이었습니다.. 참 신기한 일이더라구요... 다시금 그 옆 기계에서 100불을 집어넣고 3번인가를 베팅 한후에 거짓말처럼 200불을 다시 벌었습니다... 아...

그리고는 소심한 저로서 바로 일어났습니다.. 마음을 가다듬고.. 배고픔도 모르고.. 향한곳은 Bar 입니다.. 가서 바텐더한테 내가 좋아하는 Absolut with tonic 을 시켰습니다.. 당신도 한잔하고.. 팁도 두둑하게 주었습니다.. 눈치밥인지 바로 알더군요.. 많이 벌었냐고... 그리고 처음이냐고... 그렇다고 했지요..  그렇게 한잔 두잔 먹다보니 술값만 한 200불정도가 나왔습니다.. 그리고는 제 자신이 대단해 보였습니다. 티브이에서 보던 그런 최고급 호텔 바에서 순식간에 200불정도의 술값을 아무런 느낌없이 낼수 있다는 것에 대해서요..

은근 취기를 가지고.. 간곳이 테이블이었습니다.. 룰렛입니다...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면서 확률적으로도 많이 이길수 있는 그런 게임이 아닐까 하는생각이었습니다.. 그 자리에서 앉은자리에서..정확히 $1,000 날렸습니다. 이 순간에도 아깝다는 생각은 없었습니다.. 취기도 있고 거기서 1,000불 정도 잃으니.. 바니걸스 들이 엄청 달라붙더군요.. 공짜 술에 칩을 5불,10불씩 주니.. 제 술잔만 쳐다보고 있는듯 하였습니다...그리고도 남은 100불 짜리를 들고 방으로 올라갔습니다.. 화장대 앞에 아직도 많이 남은 100블 짜리를 올려놓고 잠을 청하였습니다..

다음날이 되었습니다.. 어제의 잃었던 돈들에 대한 아쉬움이 몰려옵니다.. 그래서 안되겠다 싶어서.. 일정금액은 은행에 집어넣고.. 바로 쇼핑을 하러 갔습니다.. 뭐라도 남기는게 좋겠다 싶어서.. 아울렛으로 갔습니다.. 아 .. 갔더니 눈이 휘둥그래 집니다.. 어제 잃었던 그 돈이면.. 이거저거 명품이라는거 등등 엄청나게 살수 있겠더군요.. 아직도 남아있는 몇천불은 생각지 못한채... 거기서 점심을 홀로 먹고... 쇼핑을 시작했습니다.. 이것저것 살게 많더군요...

선물도 사고, 내 옷도 사고 사고  해도.. 돈은 남아있습니다.. 제 착각중에 하나가 그 $5000이 지금 환율로 750만원이라는걸 몰랐던거 같습니다.. 그당시 환율로도 600만원은 되는 돈을 가지고.. 써도써도 남네하는 우둔한 짓을 한겁니다.. 그렇게 3일을 지내고 L.A 로 떠납니다.. 지난 겨울 캐나나 록키산맥 여행이 만났던 형님과의 저녁식사를 위해서 갑니다...

쇼핑, 도박, 술과 함께 보낸  1주일이 지나도 돈은 남아이었습니다.. 그럼 왜 제가 처음에 제로섬 게임을 말했는가에 대해서 간략히 말씀드리겠습니다

물론 저 위의 동영상은  그 당시는 아닙니다.. 3번째 라스베가스 방문에 같이 갔던 골프 프로 동생하고 갔던 영상입니다.. 도박을 위해서 무려 6개월동안 4번의 라스베가스를 방문했습니다..

한번갈때만다.. 비행기값이 $ 800 * 4 = $3,200
숙박비용 $ 150 * 4= $600
도박비용 결국 두번째 부터 돈을 따지를 못했습니다...

그리고 나니...살짝만 계산을 해도... 마이너스가 됩니다... 물론 경험이 남았고... 제 머리속에는 돈 많이 벌면 라스베가스를 다시 가야겠다는 허황된 심리가 남아있습니다.. 다행이 6개월 후 저는 졸업이라서.. 한국으로 돌아와야 했지만.. 지금도 그 기억을 잊지 못하며 다시금 가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답니다..

그래서 제가 이미 올렸던 글 중의 어제도 중요하다는 말이 그 의미입니다.. 어제의 기억이 오늘을 살아가게 하고 또 내일을 생각하게 합니다.. 부디부디 과거의 기억이 좋은 기억으로 남아서 인생의 약이 되기를 바랄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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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스카는 수산물이 풍부하다.. 여느 다른 주보다 제일 유명한게 아마도 연어가 아닐까 한다.. 우리가 한국에서 먹는 대부분의 연어는 노르웨이산 훈제연어가 대부분이다... 단가도 싸고.. 어릴적부터.. 부페를 가면 어렵지 않게 경험할수 있는 그런 연어가 대부분일것이다.. 하지만.. 알라스카산 연어를 처음 접하고.. 잡아보고.. 먹어본 나로서는 그 매력을 잊을수가 없다..
저 물속에 들어가 있는 사람들이  연어를 잡고 있는사람들이다.. 여름철 레져로 연어낚시를 하지만.. 저것또한 낚시 라이센스를 발급받아야 한다.. 관광객은 아마 $100을 받은 기억이난다.. 난 주립대 학생이라서 $25 을 받고 라이센스를 발급받았다..

낚시 방법은 릴낚시가 아니라 그물 낚시로 한다.. 일변 Deep Net 이라고 하더라. 근데 솔직히 누구는 Dip net 이라고 하고.. 누구는 Deep Net 이라고 한다.. 아직까지 헷갈리고 있다..

저 바다 한가운데 들어가도 물이 가슴밖에 오지를 않는다.. 그래서 사람들이 연어 낚시 전용 옷을 입는다.. 어깨끈 달린 작업복으로 가슴까지만 올라오는 옷이다.. 근데 그것도 $100이 넘는다.. 그 와중에.. Sports Authorities에 갔더니 수상스키복이 $45 에 할인을 하고 있더라.. 이거다 싶어서 바로 구입을 했다.. 이모저모 쓸일이 많겠다 싶어서였지,, 아마도..근데 그 이후로 오늘 지금까지 한번도 수상스키복을 입은적이 없다.. 물론 수상스키를 한번타러는 갔지만.. 너무 더워서.. 거기서 반팔로 갈아입고 탔다..


저렇게 연어를 잡으면..
아래 사진처럼 몽둥이로 연어를 때린다.. 그거 한번에 때려야지 죄책감이 덜 들어간다.. 한번 때렸는데 피만나고 팔딱거리면.. 정말 울컥해버린다..그래서 정말 눈 감고 한번에 내려 때리는 장면이다.. 다행히 한번 가 주셨다..  다음단계는 바로 그자리에서 배를 갈라서.. 내장을 제거해주신다. 바로 먹는게 아니라 손질에 따라서는 1년을 두고도 먹을수 있기 때문에 상할 염려를 우려해서 내장손질을 한다.. 내장 손질을 한후 내장을 하늘로 날리면 땅에 떨어기지도 전에 새들이 낚아 채간다.. 잘 던져야 한다.. 잘못하면 내 손까지 물어간다.. 그만큼 빨리 잡아간다..





아까 손질한 연어 내장을 맛나게 먹어주시고 계신 갈매기님들이다.. 너무나도 순식간에 잡수셔서 차마 그 순간을 포착하지는못하고 다 드시고 그 다음 먹잇감을 기다리는 장면만 포착을 해버리다. 이렇게 해서 보통 한번 입수에 잘 잡으면 4-5마리.. 못잡아도 1마리는 잡아서 나온다.. 그만큼 고기도 많다는 증거다.. 그래서 아까 그 라이센스에 일인당 잡을수 있는 한계량을 정해 놓는다.. 지키는사람도 없고 신고는 해야 하지만 자진신고인지라 거짓말을 시켣도 아무도 뭐라 할사람 없지만.. 의외로 그 기준을 잘 지킨다..












잡은 연어는 바로 먹지를 못한다. 바다고기라고는 하지만.. 민물성격이 강해서.. 바로 회를 쳐먹거나 하지를 못하고 작업을 거쳐야 한다.. 설탕을 앞뒤로 발라서 1시간 이상 재운후 깨끗이 씻어서 냉동시킨 후 한 해를 먹을 양식으로 보관을 한다 그리고는 먹을게 없으니.. 인근에서 주워온 막잡은 조개를 구워먹는다.. 때에 따라서는 연어를 구워먹기도 한다.. 앵커리지 시내에서 사온 무지무지 시원한 맥주와 함께 조개를 먹다보면.. 인근 한인들이 한명 두명 몰려온다.. 개중엔는 소주를 들고 오시는분들도 있다.. 그렇게 되면 한여름밤은 끝없이 이어진다.. 원래 해가 지지를 않지만.. 밤 12시가 되어서야.. 노을이 질 준비를 한다..


이렇게 여름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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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2007년 미국을 다녀오면서 남겨온 돈이지 싶습니다.. 이리저리.. 나뒹굴다가.. 바꾸기도 귀찮고.. 20불이라서..또한 바꾸기도 챙피해서.. 그냥 내버려 두었는데.. 그냥 웬지 모르게 바꾸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회사 앞에 있는 기업은행으로 가서.. 휙~ 주면서 환전해 주세요...^^ 그랬죠... 근데 금액이 수월치 않게 나오네요... 30,400원 돈이 나오네요... 살때.. 20,000원 주고 산거 같은데.. 장사 할만하네요...

하긴 미국가서 장사하는 아는형은.. 요 몇달사이에.. 달라송금으로만... 꽤 차익을 벌었다고 하네요... 하여간.. 돈이 돈 버는거... 그리고 돈이 돈먹는거..재밌기도 하고.. 무섭기도 하고...그렇습니다..


저녁에 맛난거나 먹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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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쯤은 다들 생각해 보신 맥락이 아닐까 합니다.. 이중에서 뭐가 제일 중요하냐를 누군가에게 물어도 보았을것이고, 누군가에게 질문을 받아도 보았을거라 생각합니다..그때 여러분은 무엇이라고 답을 하였는지요 ? 3개가 있으니 우리 고등학교 때 배웠던 경우의 수를 따져보았을때.. 6개가 나오나요.. 어제, 오늘, 내일, 어제와 오늘. 오늘과 내일, 그리고 어제, 오늘, 내일 전부다...이렇게 나올수가 있겠네요..

고등학교 때인가.. 선생님이 저에게 위와같은 질문을 하더군요.. 그래서 저는 내일이 소중하다고 대답하였습니다.. 그랬더니.. 선생님이 어딘선가 낯익은 말씀을 해주시더라고요.. 어제는 지나가서 소중하지 않고.. 내일은 오지 않았으니 중요하지 않고.. 결국 지금 오늘이 가장 중요하다고요... 그 당시에는 그럴듯 하다고 생각했는데.. 나이가 먹으면서 점점 다른생각을 가지게 됩니다..

순위를 굳이 매기자면 내일>어제>오늘 이렇게 매겨 볼랍니다.. 굳이 다시 이유를 달자면

저는 오늘을 위해서 오늘을 살지는 않습니다..

오늘을 위해서.. 저축을 하고,, 오늘을 위해서.. 직장에서 머리를 숙이고..
오늘을 위해서.. 뛰지 않습니다..

오늘을 위해서.. 불안해하고.. 오늘을 위해서.. 초조해 하면서..
오늘을 보내지는 않습니다.

내일이 오리라는.. 밝은 희망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내일을 위해서..저축을 하고.. 내일을 위해서.. 스트레스 받으며
내일을 위해서 .. 뛰고 있습니다.

가끔은

어제를 생각하며.. 즐거운 적이 많습니다..

어제를 생각하며.. 오늘을 웃고.. 어제를 생각하며.. 반성을 하며
어제를 생각하며.. 다시 뛰고 있습니다

이 모든게 저에게는 내일을 위한 디딤돌입니다.. 내일을 위해 살고, 또 살고 싶습니다..

오늘이 지나면 내일이 옵니다.. 그 내일은 내일이 되면 오늘이 됩니다..

이번주 월요일 월례조회를 하는데.. 어느 초빙강사분이 오셨는데.. 강의가 너무 지루했습니다.. 솔직히.. 강사라기보다는.. 공직자 예우차원에서 불러준거 아닌가 합니다.. 하여간 그분이 이렇게 말씀을 하시더군요...

내일을 믿지마라.. 우리에게는 오늘밖에 없다... --.. 이게 내일을 사는 우리에게 할 강의내용인지도 싶었습니다..

관점의 차이입니다만..한번쯤은 생각해보면서 살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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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0억 빌딩 인수한 33세 청년재벌은 누구?

서울대 첫 비운동권 학생회장, 게임으로 돈벌어  정현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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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민 전 네오플 대표(33·사진)가 서울 강남 M빌딩을 인수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그의 성공 신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허 전 대표가 온라인 게임 사업에 뛰어든 것은 지난 2001년 4월. 허 전 대표는 서울대 재학 시절 친분을 쌓은 친구 5명과 네오플이라는 회사를 설립했다. 하지만 당시만 하더라도 네오플은 온라인 게임 회사와는 다소 거리가 멀었다.

네오플은 초기 제조업체로 시작했다. 고주파를 이용한 잠깨우기 장치가 네오플의 초기 제품이었다. 이 제품은 이후 특허까지 받았다. 그러다 본격적으로 온라인 게임 사업과 인연을 맺게 된 것은 2001년 출시된 '캔디바'라는 웹사이트가 큰 인기를 끌면서부터다.

캔디바는 당시만 하더라도 획기적인 사이트였다. 아바타 채팅과 아바타 게임이라는 신세대 취향의 소재로 오픈 10개월만에 누적 회원수 200만명을 돌파했다. 월 매출도 10억원을 넘어서며 효자 게임으로 등극했다.

이후 허 전 대표가 서울대 야구부 시절부터 관심을 가졌던 야구 게임 '신야구'가 출시되면서 탄탄한 성장세를 이어가던 네오플은 온라인 액션 게임 '던전앤파이터'로 이른바 '대박'을 터트리기 시작한다.

2005년 등장한 던전앤파이터는 아직까지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네오플의 대표 게임. 특히 삼성전자가 배급에 나서면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던전앤파이터는 누적회원수 1000만명, 최고 동시접속자수 17만명을 기록하며 여전히 승승장구하고 있다.

던전앤파이터가 큰 성공을 이루면서 허 전 대표의 성공 신화도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우선 국내 최대 포털 NHN에서 네오플의 성공 가능성을 내다봤다. NHN은 지난 2006년 5월 네오플의 지분 60%를 인수했다. 인수 금액만 240억원이 소요됐다.

이후에도 던전앤파이터의 인기가 사그라들지 않자 온라인 게임업체 넥슨은 네오플을 아예 인수하기에 이른다. 지난해 7월이다. 네오플의 개발력에 대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넥슨은 지난해 NHN이 보유하고 있는 지분을 제외한 네오플의 지분 59.15%를 인수하면서 1500억원 이상을 들인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넥슨이 인수한 네오플 지분 59.15% 중에서 허 전 대표가 가지고 있던 지분만 41.37%였다. 허 전 대표 입장에서는 거뜬히 1000억원 이상을 벌어들인 셈이다.

지난해 네오플 인수와 함께 대표직에서 물러난 허 전 대표는 현재 미국에 체류 중이다. 하지만 아직까지 네오플의 중요 경영 사안에 꾸준히 참여하면서 조언을 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한편 허 전 대표는 최근 서울 대치동 M빌딩 A·B동 2개동을 885억원에 인수해 성공한 청년 사업가 반열에 올랐다. 허 전 대표는 서울대 응용화학부 재학시절부터 서울대 최초 비운동권 총학생회장으로 언론의 관심을 끌었던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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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어디서인가 읽었던 시입니다.. 읽다보니 시라는 느낌보다는 제 자신이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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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호승님

                                    그대 울지 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 견디는 일.

                                  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

 
                              눈이 내리면 눈길 걸어가고 비가 오면 빗속을 걸어라.

                               갈대 숲 속에 가슴 검은 도요새도 너를 보고 있다.


                                   그대 울지 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가끔씩 하느님도 눈물을 흘리신다.

                                   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

 
                             산 그림자도 외로움에 겨워 한 번씩은 마을로 향하며

                                    새들이 나뭇가지에 앉아서 우는 것도

                                      그대가 물가에 앉아 있는 것도.

 
                                    그대 울지 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 견디는 일.

                              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 그대 울지 마라.

                                    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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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얘기 계속할께..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는 눈이 그치더라고.. 가는길도 여지없이 걸어갔어.. 내글 잘 읽어보면 겨울에 해가 몇시에 지는지 알거야.. 학교수업이 4시정도에 끝났는데.. 어두워서..위험하기도 하고.. 길 감각도 없는 와중에.. 공항에서 가져온 지도한장으로 집을 결국은 찾아갔어.. 나랑 맥주먹었다는 아저씨가.. "미스터리 ~ 어디가서 이렇게 늦어.." 그래서 다시금 그 아저씨와 맥주를 먹으며 오늘 이야기를 나누었지.. Tudor Rd 를 따라서 걸어서 학교까지.. 다시 36가 에 있는 캠퍼스로.. 다시 집에까지온 파란만장한 하루 이야기를 말이지..

아저씨가 그러더군... 내일 아침부터는 자기가 픽업 해주겠다고.. ^^.. 그렇게 해서 하나의 고민거리가 해결되었어.. 아저씨는 아침에 날 내려다 주고 일을 하러 가시고.. 난 집에서 싸온 샌드위치와 캠퍼스 센터에서 주는 공짜 커피 한잔을 들고.. 도서관으로 가서.. 열심히 나름 공부를 했지.. 일주일에 수업이 3일에 시간이 한 15시간정도 되었지.. 어느날은 야간수업까지 있었던날도 있고.. 그래도 그 아저씨는 암말하지 않고.. 늦은시간에도 날 데리러 오셨지.. 돈은 급구 거절하셔서...맥주는 항상 내가 사곤 했지.. 실제로.. 타 주에서는 픽업비용으로만 한달에 몇백불 내거든.. 알라스카 앵커리지 아직은 정이 있는 도시라고 봐야해..

이쯤되면.. 3,000불 가지고 어떻게 버틸까 하겠지.. 우선은.. 아르바이트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절실히 들었어.. 앵커리지는 몸값이 높아.. 일할사람 구하기도 힘들고.. 동시에.. 당연히 물가도 비싸고.. 근데 역시 그 아저씨가.. 자기 일하는데서 같이 일하자고.. 우리말로 노가다.. 집짓는 공사현장에서 일하는거지.. 그길고.. 구세군이 운영하는 중고가게에 가서.. 50센트짜리 구두와.. 1불짜리.. 바지를 샀어.. 작업복 하기에는 딱이더라고.. 다행히 일을 책임지는 아저씨도 한국사람이라서.. 채용에는 문제가 없었지.. 난 처음이니까.. 시간당 8불을 받을거라고 하시더라고.. 아저씨는 15불씩 받는다고 하더라고.. 하여간.. 학교 시간 빼고는 일할수 있을만큼 하라고 하셔서.. 열심히 일했지..

아마도 지금 이 컴퓨터 어딘가에 찾아보면 내 일했던 시간스케줄이 남아 있을듯해.. 아저씨가 일을 하고 있을때는 나보고 그냥 차 운전해서 다니라고.. 면허증은 없지만.. 국제운전면허증 있으니.. 괜찮다고.. 그래서 운전하고 다니다가.. 아무래도.. 불안해서.. 현지 면허증 덭컬 따버렸어...^^ 솔직히 덜컥은 필기시험만이고.. 실기는 두번을 떨어졌지... 운전을 못해서라기보다는 너무 잘해서.. 그런것 같다.. 스쿨존은 40으로 달렸거든...

그리고는 2주마다 주급을 받는데.. 처음으로 월급을 받았어... 이래저래 하니까.. 올데이 한날도 있고 하프데이 하날도 있고.. 보니까.. 500불정도 되더라고.. 그래서.. 그날.. 아저씨 차에 기름 가득 넣어 드리고.. 근처 바에가서  맥주 한잔씩 하고.. 들어왔지..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아저씨랑 나랑.. 교회 목사님 댁이 아무래도 불편하더라고.. 술먹는것도 그렇고.. 아저씨 담배피는것도 그렇고.. 하여간 그래서.. 아저씨랑 집을 구하기로 맘먹고... Low Income 아파트를 구하기로 했지... 내가 원래 그런곳으로 머리 잘 돌아가거든... 아저씨는 시민권자고.. 실제로 파산해서.. 신용불량자에.. 소득도 없으니.. 당연 구할수가 있거든.. 그날 바로 이리저리 돌아다니다가.. 정말 시설좋은 아파트를 만났지.. (그 아파트 제 글에 담겨져 있습니다) 그 아파트 매니저 여자가 언제 입주 가능하냐 해서... 우리 고등학교 때 엄청나게 많이 외우던 그 단어... As soon as possible~~

그리고 1주일후에 정부에서 연락이 왔어.. 심사 통과했으니.. 들어가라고.. 그날 아저씨랑 술 많이 먹었지.. 서로 좋아서.. 방도 2개.. 화장실도 두개.. 시설은 호텔급... 경치도 좋고.. 보안도 잘되어 있고.. 로인컴 아파트라서.. 임대료도 저렴하고.. 하여간.. 너무 좋아서.. 이사를 하고.. 살림살이도 사기 시작했지..(그 방 제가 올릴께요) 

그러다 보니.. 어느새.. 4월이 다가오고.. 한달만 있으면 방학이더라고..2년간 한국을 안들어가겠다는 생각이 한순간에 무너지는 사건이 있었지..

연어수입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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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은 글을 쓰기에 앞서 이런생각을 합니다.. 이 글을 소수나마 볼수 있겠구나.. 그러니까 약간은 재미성을 넣어야 겠구나.. 하는생각요... 그래서 제 진실된 이야기에 아니면 진실된 생각에 약간씩의 허구가 들어가기도 하는거 같습니다..

그러나 이건 여자들한테 군대 이야기 하는거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듣는 여자는 하나도 재미없게 생각하는데 정작 본인은  군대에서 자기 생활을 너무나도 화려하게 장식한다는거죠.. 남자분들 경험해보셨겠지만.. 휴가전날 군복을 엄청나게 다림질하고.. 전투화를 광이 나도록 손질하고.. 몰래 사들도 들오온 사제팬티를 입고 나름 뿌듯하게 휴가를 나갑니다.. 모든사람이 자신을 쳐다보는듯한 그런 느낌을 받죠..

그러나 실제 우리가 제대하고 사회인으로서 보는 군인은 어떠합니까.. 그냥 군인입니다.. 줄세워 옷입고 광나는 전투화를 신은 멋있는 군인이 아니라.. 그냥 힘들게 군생활 하는 군인일뿐입니다. 이게 아마도 꾸밈과 진실이 아닐까 합니다..

제가 아무리 여기서 제 인생을 꾸미어 본들 제 진실은 진실된 모습은 꾸미어 지지 않습니다.. 제 인생의 발자취를 남기기 위해서 쓰기 시작한 블로그입니다.. 단지 남들에게 공개를 하고 발행을 하는 이유는 나란 사람이 이렇게 살고 있고, 이런 고민을 가지고 있으니 혹여나 공감이 가시는 분들은 같이 한번 생을 생각해보자는 차원입니다..

어느 순간에 자기 자신을 부끄러워하고 숨긴적이 있는지 한번 생각해 봐주세요.. 저요.. 저는 부끄럽게도 자주 저 자신을 속이고 부끄러워 한답니다. 저란 작품은 누구의 작품도 아닌.. 물론 형체는 부모님의 힘을 빌렸지만.. 그 이후의 작품은 저 자신의 몫입니다.. 자기 자신이 얼마나 아끼고 잘 다루어 가느냐에 따라서 사랑받을수 있는 작품으로 거듭날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런 이야기 누구나 할수 있답니다. 실제로 그럴수 있는가가 문제입니다. 제가 처한상황, 하는일, 외모, 경제력 등등 한번도 자기 자신에 대해서 부끄러워 한적이 없다면 아마도.. 사이보그가 아닐까합니다..  잠깐 내얘기 들어볼래..^^

내가 처한상황~~ 난 나이가 30중반인가.. 아직 결혼은 안했고.. 인원수로 보면 대기업이지만 매출로 보면 아직은 중견기업에 근무를 하고 있지.. 나름 내 성격은 자유방임주의라고 생각을 해.. 30초반에는 그냥 생각만으로 모든것을 행동으로 실천으로 옮겼어.. 실제로 그래서 미국내 오지라는 알라스카 에서 2년간 생활을 했고, 지금 솔직히 그 2년이 내 생애 마지막까지 잊혀지지 않을 시간이 될거야.. 만일 그 당시 생각만으로 멈추어 버리고 직장생활을 했다면 어찌되었을까.. 우린 이걸 If 심리학이라고 하지.. 근데 아마도 돈 얼마 더 벌었을테고.. 결혼을 했을수도 있겠고.. 지금에서까지 그때 가지 못한 알라스카를 그리워 하고있을수도 있겠지.. 뭐가 더 좋은 것일지는  각자의 판단이야.. 난 절대적으로 전자를 택하고 있어... 2년간의 나의 생활.. 30년간의 내 마인드와 생활을 바꾸기에 충분한 나날들이었어.. 알라스카의 겨울은 춥고.. 어두워... 그리고 겨울은 볼것도 없고.. 그러다보니 술들을 많이 먹지.. 알콜릭도 많이들 있고.. 그래서 난 2년간의  겨울은 활기찬곳으로 나아갔지.. 첫해 겨울은 캐나다 밴쿠버에서 지냈고.. 두번째 겨울은 라스베가스에서 지냈지..

누군가는 팔자좋은 소리라고 할수 있겠지.. 내 얘기 더 들어볼래 ?.. 나 떠날때가 직장생활 1년차 였어.. 통장에 보니.. 1,000만원 정도 있고.. 월급통장에 한 500 있던거 같아.. 1,000만원으로 정기예금에 넣어놓고.. 500만원만 들고 떠났어.. 비행기 값 그 당시 앵커리지 편도가 한 70만원이었는데.. 형이 내주었어.. 그리고 바로 학비를 내야하는데.. 그게 한 200만원 되었지.. 나 조금 지원받고 갔지.. 그러다 보니.. 남은돈 300만원.. 그 당시 환율이 거의 1:1 이었거든.. 그러니 한 3,000불 남은거야.. 갑자기 아는 사람 하나도 없는데 너무나 막막하더라고.. 무슨 배짱으로 이걸들고 여길 왔는지.. 당장 미국 땅이라는곳 그중에서도 이곳 앵커리지는 정말 차 없이는 못사는곳인데..

학교가는 첫날.. 아는사람도 없고.. 말도 안통해서.. 학교를 걸어서 갔어... 눈이 내리는 날이었지.. 지나가는 모든사람들이 날 쳐다보더라고..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눈길에 걷는 사람은 거지 아니면 원주민 밖에 없다고 하더라고.. 그래서 학교 근처까지 가는데.. 한시간 걸리더라고.. 애써 도착했는데.. 캠퍼스가 두개라더군... 나는 제2캠퍼스로 온거고.. 제1캠퍼스까지는 차로 한 15분가야 한다고 하더라고.. 난 다시 걸어서 눈을 맞으면 걸었지..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셔틀버스가 5분에 한대씩 있었더라고.. 어쨋든 첫날부터 지각을 해서.. 문을 열고 들어갔는데.. 전공수업이라 그런지.. 학생이 10명정도 .. 교수를 포함해서 날 빤히 쳐다보더라고... 교수의 첫마디.. 아직도 기억에 생생해... 유 머스트 총~~ 내 이름이 Choong 인데.. 이걸 총이라고 발음을 하더라고.. 2시간 남짓을 걸어서.. 얼굴은 안면홍조증 걸린아이같지.. 옷은 눈에 많이 젓었지.. 지각했지.. 하여간 창피했어.. 거기다가 남은자리는 제일 앞자리 하나.. 그 3시간의 수업동안 난 뭘 생각했는지도 모르겠어...단 하나 생각 나는거.. 집에 가고싶다..

한국가서 다시 일하고 싶다... 울고싶다.. 도망가고 싶다.. 암울하다.. 그렇게 내 알라스카 생활은 시작이 되었어.. 

그게 2005년 1월 초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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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에 동료 과장이 자료를 보내주면서.. 이걸 끼워서 보내주네요.. 우리 일좋아하는 김과장이 또 뭘보냈을까 하고 보니.. 마음이 평온해지는 배경화면이 나오면서.. "세계가 만일 100명의 마을이라면".. 이라는 글이 나오네요..
이 배경의 화면.. 언젠가 제가 봤던 배경입니다.. 실제로요... 데자뷰는 아니고.. 실제로.. 제가 알라스카 도착한 그 다음날.. 오후 3시에 눈이 내리면서.. 세상이 그렇게 조용한 적은 없었습니다.. 여건탓에.. 오후 3시에 이미 한밤이 찾아왔고.. 가로등불 밑으로 눈이 오는 그런 경험을 했더랍니다..

그때는 그랬습니다.. 제 마음이 평온했습니다.. 버지니아에서 올라오신 아저씨가.. 저를 살짝 불렀답니다... 미국에 오새 사셔서 그런지.. "미스터리! 혹시 맥주 할줄 아나 ? 그러시더라구요..(전편을 읽어보신분은 아시겠지만.. 제가 처음 도착해서 들어간 집이 목사님 댁이라서.. 제가 아마도 절실한 기독교인인줄 알았던것 같습니다)

그때 먹었던 버드와이저 캔맥주는 아직도 잊을수가 없습니다.. 냉장고가 필요없이 바깥에 내놓았더니, 맥주위에 소복히 쌓인 눈을 후 불어내니.. 금새 녹아 없어지더군요.. 캔맥주와 함께 먹었던.. 생조개 또한 잊지 못할 추억이고 지금도 머리속에 너무나 선명하게 남아있습니다..

한캔을 금방 비우고 나서.. 심심해 하니.. "어이구.. 잘먹내.. 하면서 발코니 창문을 열어 주시더라구요.. 이런.. 맥주가 한가득 쌓여있습니다.. 그날 오후 3시부터.. 저녁 12시까지.. 둘이서 서로의 살아온 이야기 하면서.. 맥주를 2박스 (48캔이던가요) 먹었습니다... 화장실 들락거리면서... 이야기 하면서.. 아저씨는 담배도 피우시면서.. 그렇게 알라스카의 두번째 밤이 흘렀습니다..

그날 밤.. 그날밤의 느낌이 바로 이 세계가 만일 100명의 마을이라면 배경과 너무 흡사하답니다...읽어보세요...

평온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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엊저녁 일찍이 단잠을 자서.. 저녁 12시가 되니 눈이 번쩍 뜨이더군요.. 아 큰일이다.. 내일 월요일인데.. 잠 자야 하는데 그럴수록 잠은 더 안오고.. 냉장고에 하나 남은 맥주를 먹을까 말까 망설이다가.. 컴퓨터를 켰습니다.. 그리고 멍하니 네이버 홈페이지를 바라봅니다.. 뭘까.. 어떻게.. 전기를 통해서.. 사진을 보고.. 돈거래를 하고.. 정보를 얻고.. 저 멀리 타국에 있는 사람과 얼굴을 보면 대화를 하고.. 갑자기 1차원이 되어서 이 세상을 바라보았습니다.

전문가가 아니라서.. 인터넷의 수혜를 보고 있지만.. 아직도 그 원리에 대한것은 미지세계 입니다.. 이 블로그 운영하면서 광고 올리겠다고, 구글 애드센스 가입하고, 거기에 나오는 코드 복사해서 html 편집기에 올린것만 해도 많은 발전입니다..

그러고 보면 제가 알고 있고, 제가 사용하고, 제가 누리고 있는것은 세상을 100으로 보았을때 과연 몇이나 알고 사용하는 것일까요 ? .. 지금 제 앞에 수많은 비품들이 널부러져 있습니다.. 옆에는 커피도 있습니다..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듭니다.. 뭘까..

오늘 날씨가 좀 따뜻했습니다.. 옥상에 올라가니 햇빛이 따스하더군요.. 그러나 그늘로 오면 여지없이 아직은 겨울입니다.. 그러고보니 다음주가 3월입니다.. 봄이네요.. 봄을 생각하면.. 저는 문득 피천득 선생님의 연인이 생각납니다.. 작고하시기전.. 비오는 베란다에서 글쓰시기를 참 좋아하셨다죠..

봄비... 개나리... 글.. 피천득... 연관성이 많네요... 최소한 저에게는요.. 따뜻한 마음으로 살아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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