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란 하면 뭐가 생각나세요 ?. 닭이 먼저냐 이게 먼저냐가 생각나나요 ?

저는 십여년동안의 자취생활 중 가장 뛰어나 음식재료라고 생각을 합니다..

배고플때는 삶아먹고.. 밥 먹을때는 프라이로 먹고... 술안주에는 계란말이... 강의할때는 날계란.. 소맥에는 노란자만..

빵만들때는 흰자만... 졸업식에는 밀가루와... 피로연에는 ^^ 상상하세요..

등등 정말 계란은 제 인생 최고의 식재료가 아닌가 합니다..

어제 저녁 술먹고 배고파서 계란 반숙을 두개 먹었으며.. 아침에 나오기 전에 완숙에 빵 한조각 발라서  먹고...

아... 중요한게 빠졌네요... 라면먹을때 계란 풀지않고 그대로 넣어서 먹으면 정말 좋잖아요...

하여간 문득 일하다가 계란 생각이 나서...

오늘 저녁은 계란 껍질 무침을 먹어야 겠네요...

계란 내사랑

하루치네요..







:

항상 영원한것은 없답니다. 차를 가지고 다니는 분들한테 이번 같은 폭설의 경우 정말 짜증나는 기간이었겠지만 반대로 저같이 눈오는것을 사랑하는 사람이나 눈을 대목으로 지내는 사람들 (아마도 스키장 분들이 아닐까 합니다)에게는 더 없이 행복한 나날들인것 같습니다. 저는 눈이 오면 항상 그런 생각을 합니다. 그냥 녹지 말아라... 영원히 하얀세상에 살고 싶어라... 날씨 그까짓것 추우면 얼마나 춥겠냐.. 겨울에는 끼어입을거라도 있지... 여름에 더위는 벗어도 한계가 있기에.. 전 겨울을 사랑하고 눈을 사랑한답니다..

저를 만나는 사람들중 일부는 "겨울에 그렇게 입고 다니면 춥지않냐" 는 질문을 자주 합니다.. 그럴때 전 항상 이렇게 대답을 합니다

"저요... 알라스카 살다 온 사람입니다..~" 하면 한바탕 의아해 하면서 웃곤 합니다..

꼭 그  지방을 살다와서가 아니라 옷을 아무리 끼어 입어도 마음이 춥다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전 항상 따뜻한 마음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을 하거든요.. 저만의 착각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게 살아요..

알라스카를 좋아했던 이유 중 하나는 눈 오고 난 후에도 길이 지저분해지지가 않습니다.. 어떻게 그럴수가 있냐 하겠지만.. 뭐 나름 주정부에서 청소를 잘하는 것일수도 있고, 날씨탓일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제가 좋아하는 눈이 없어지는건 참 마음이 아픕니다..

요 지난 몇일동안 참 마음이 행복했습니다. 특히나 서울에 몇년만에 폭설이 왔던 그날 새벽에 눈을 떠서 창밖으로 내린눈과 쌓인눈을 봤을때는 그 어떤 안식도 가져다 줄수 없는 고마운 마음을 가져다 주는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그날은 전화를 하는 모든 사람에게... "아..눈이 그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라는 동심어린 이야기를 하곤 했습니다.

오늘 도로를 보니.. 눈도 다 녹고.. 길은 지저분해지고.. 날이 좀 따뜻해져 가는것 같습니다.. 그게 싫어서 글 올립니다.

눈이 정말 영원했으면 좋겠습니다...

-눈사람- 


:

가끔 영화를 보면서, 아니면 일상을 보내면서 4차원적인 생각 한번씩 해보지 않으시는지요 ? 저는 비교적 그런 생각을 많이 하면서 살고 있는듯 합니다. 어제 오늘 눈이 정말 많이 내리고 있지요 ? 수많은 차들이 도로를 살살 달리면서 창문에 내려앉는 눈을 치우려 와이퍼를 작동하고 있습니다.. 눈이 오면 닦아내고, 또 오면 닦아내고 그렇게 와이퍼는 제거의 역할을 착실히 하고 있는것 같습니다.

그러면서 문득 그런생각이 들었습니다. 내 마음에도 와이퍼가 달려있다면 잊고싶은 기억, 가슴아픈기억 등등을 지울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말입니다.. 그러고보니 예전에 내마음의 지우개 인가 그 영화가 생각이 나네요.. 추석특선으로 했을때 뜨문 뜨문 봤지만 내용을 별 생각이 나지 않고 제목만 저의 뇌리를 스쳐 가네요..

어제 탄천을 또 뛰면서 눈밭에다가 크게 글을 썼습니다.. " 안녕 2009 모든 기억들 " 쓰고 나니까 좋은기억 까지 사라질까봐 " 안녕 2009 안좋았던 모든 기억들" 이라고 급 변경을 하고 트랙을 한바퀴 돌고 다시 왔는데.. 역시나 어떤분이 그 밑에 답글을 적어 주셨더군요..

"나도"

참 단순한 댓글이면서도 내 복잡한 마음을 다 보다듬는 그런 한마디가 아닐까 합니다..

실제로 스키너의 심리상자 열기라는 책을 보면  미국의 어느주에서는 합법적으로 기억을 없애준다고 하네요.. 나쁜기억을 없애기 위해서 좋은기억까지 희생을 하는것이겠지요.. 기억을 관장하는 곳이 해마라고 하는데 그 해마를 잘라낸다고 하네요..

근데 아무나 시술을 받을수 있는것은 아니고, 주(州)의 윤리위원회의 철저한 검증을 거쳐야 한다네요.. 

아무튼 2010년을 맞이하는 제 솔직한 심정이 그렇습니다.. 선생님이 1교시 수업을 마치고 칠판을 싹 지우고 2교시를 준비하듯이,  차들이 창문에 내린눈을 와이퍼로 없애고 새 눈을 맞이하듯이 내 마음도 2010을 새로운 마음으로 시작했으면 합니다.. 

기분이 야릇한 눈내리는 점심시간입니다..  식사들 맛있게 하세요...




 


:


알라스카 생활이후 참으로 오랜만에 사각거리는 눈을 밟아 보았네요.. 그것도 고등학교 친한친구랑 말입니다..

연휴 마지막인 일요일 점심에 다들 바쁜 친구들과 모임을 가지고 집을 가려 하는데 갑자기 내린 눈에 발이 묶여 버렸습니다. 집이 분당이니 그냥 친구랑 사우나하면서 천천히 가려고 친구네집을 가서 사우나 하고 저녁까지 먹으러 가는길에 골목길에 눈을 밟아보았습니다. 둘은 동심으로 돌아가서 재미나게 이야기를 주고 받으면서 고기집으로 향했습니다..

저녁을 먹으면서 차가 더 막힐것 같아서 차를 놓고 가려고 소주를 한잔 부었습니다. 우리 둘의 주제는 이제 나이가 차다 보니까 미래와 결혼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결혼에 대한 생각은 약간 다르나 결과적으로 생각하는것은 다 같은 우리 인생에 서로 맞장구를 쳐가면서 소주를 주거니 받거니 하였습니다.

일요일 저녁에 술을 먹는다는것은 예전에는 생각치도 못한 일이었는데 요즘은 별 부담이 없어지네요.. 하여간 그렇게 창밖에 살살 내리는 눈을 보면서 저녁을 먹고 집에 돌아왔습니다. 분당을 오니 분위기는 더 좋더라구요.. 집에까지 약간 추웠지만 그래도 기분나쁘게 추운 날씨는 아니었고 이제 몇일 있으면 30중반이 넘어가는 와중에 한번 또 뒤를 돌아보게 하더군요...

항상 그렇지 않습니까 ~ 남이보면 멋있는 삶을 살고 있지만 정작 내 자신은 백조의 발처럼 동동 구르고 있다는 사실을요.. 그리고 그 우아함만을 보여주기 위해서 고개를 들고 어깨를 편채 살아가는 비스무리한 인생들.. 그 인생의 한 무리가 되기 싫어서 발버등 치는 사람들이 또 한무리를 이루고... 또 이루고... 그렇게 세상 사람들이 구성이 되어가는게 아닌가 합니다.

그 세상속의 한명인 나는 과연 어느 부류에 속하는 사람인지... 잘 살펴봐야 할것입니다.. 또한 다른 부류는 어떤 생각을 가지고 사는지도 잘 살펴봐야 할것입니다..

왜냐면... 나 이외의 모든 사람들이 나를 먹여 살리기 때문입니다...



:

짧은 인생이지만 그래도 쌍방향 커뮤니케이션의 도구를 많이 접해본 세대 입니다..

그 어릴적 버튼식이 아닌 이렇게 돌리는 방식의 전화기를 시작으로 전자식 전화기 - 무선전화기 - 무선 호출기 - 이동전화기 - 씨티폰 - pcs - 그리고 현재 3g 이동통신까지... 정말 많은 변화를 경험하였네요.. 앞으로 제가 나이가 들면서 시대가 바뀌면서 더 진화된 도구가 나오겠지요...

오늘 아침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커뮤니케이션의 한 도구로 문자를 보내는데.. 과연 문자는 어떨때 보내는 것인가에 대한 생각말입니다. 우선 제 입장에서 한번 생각해 보았습니다..

1. 전화받기가 곤란할때 (?)

2. 상대방과 안 친할때

3. 시간절약을  위해서

4. 상대방 마음을 파악해 보이기 위해서

5. 전화통화할 자신 없을때 

등등이요... 뭐 내내 똑같은 이야기 인것 같습니다.. 물론 간단한 정보 교환을 위해서 문자를 주고 받기도 하지만 전화로도 할수 있는  내용들을 문자로 주고 받을때가 많습니다.. 그럼 6번이 생기겠네요.

6. 저렴한 통신요금을 위해서..

그렇다면 우리나라도 미국처럼 무제한 요금제(한달 40불정도)가 생기면 문자 대신 전화를 할까요 ? 지난달에 미국을 다녀왔는데 무제한 요금제에 아이폰까지 써가면서 문자를 신나게들 날리더라구요 .. 그럼 7번이 생기나여 ?

7. 습관적으로  아니면 재미 및 흥미로...

더군다나 인터넷에서 문자를 보내면 상대방이 문자를 받았는지 아니면 읽었는지까지 확인할수 있는 시스템도 있더라구요.. 

혹시나 모를 발뺌족을 위해서 만든 제도가 아닌가 합니다.. 가끔 전화 안받을때 

"너 왜 전화 안받아 "   

"응? 전화 안왔었어... 아 이거 이상하네.."

"그럼 문자는 어떻게 봤어 ?"

"어? 문자도 안왔던데...?"

"거짓말 ... 문자확인했다고 나한테 확인문자 왔거든......"

이런 상황이 아니더라도 비슷한 경험을 해보신 적이 있으실겁니다... 이 사람이 내 전화를 피하는지 아닌지도 말입니다...

그러고 보면 요즘 세상은 어딜가나 감시 속에 살아가는 거 같습니다... 집을 나서면 엘레베이터에서부터 화려하게 펼쳐진 CCTV 공익을 위한다지만 어쩔때는 가만히 날 노려 보고 있는 카메라한테 혀를 내밀기도 합니다... 

아.. 삼천포로 빠지기전에 다시 문자 이야기 해야지요... 더군다나 문자의 가장 희생량은 바로 스팸문자가 아닌가 합니다. 이 아침 벌써부터 3통의 스팸문자를 받았습니다.. 스팸거부를 해도 무슨수를 써도 전화번호를 바꾸어 가면서 교묘히... 단어등록을 해놔도 또 다른식으로 날면서 문자를 보내더군요...

근데  이런 스팸문자도 결국은 돈인데.. 이런 문자를 보고 영업이 되니까 이일도 하는게 아닌가 합니다.. 그럼 8번이요 ?

8. 좋지 않은  사람들의 영업수단

반대로 생각하면 좋은점도 많이 있습니다.. 좋다고 해야 하나 아니면 뭐라해야 하나... 카드 사용정보를 알려주는거 즉, 개인정보에 대해서 이상 발생시 즉시 알려준다는 좋은점도 있네요...

그러고 보면 참 우리 곁에 너무나 친숙하게 다가와 있는것이 이 문자 메시지가 아닌가 합니다. 지하철을 타고 가다보면 60대 노인분도 안경을 들춰내고 문자를 하나하나 찍어냅니다...  곁눈질로 살짝 보면 대부분 내용이 " 나 이제 들어간다.." ^^ 뭐 이런식의 간단한 내용들이더군요...

노인분들뿐만아니라 8살짜리 제 조카는 저보다 제 핸드폰을  더 잘 다루곤 하더군요... 문자도 저보다 빠르게 보내는거 같구요.. 학교에서 가르치지는 않을터인데... 참 신기하더군요..

이렇게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때로는 적절한 도구가 될수도 있지만 때로는 정신적인 스트레스 도구가 될수도 있는게 이 문자 메시지 아닌가 합니다..

한번 생각해봐주세요... 문자메시지로 행복할때와 불행할때가 언제 였는지를요....

그 옛날 공중전화




:

요즘 돈이라는것을 솔솔 벌면서 그만큼 또 본의 아니게 싸울일이 생기곤 하네요..

싸운다..  이 표현이 적절한 표현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정말이지 책상머리에서만 배웠던 고객만족이고 감성, 이러한 것들이 결국은 내가 몸소 겪어야 하는거구나 라는 생각이 듭니다.

나한테 돈을 주는 사람하고 싸운다 ? 좀 말이 우습지요.. 근데 살다보니 이런일이 생기네요.. 저도 항상 고객의 입장에서 뭐 좀 잘못되면 큰소리로 외치고 부르짖고 해서 내 이득을 찾아냈지만, 제가 실질적으로 제공자가 되어보니 크고 작음을 떠나서 결국은 같은 상황을 접하게 되네요..

근데요.. 웬만하면 정말 웬만하면 큰소리 내는거 싫어하고 싸우는거 더더욱 싫어하거든요 서로의 마음에 상처를 주는데 .. 근데 싸우게 되면 누군가는 지고 누군가는 이기고 그리하여 누군가는 득을보고 누군가는 실을 보는게 현실이지요..

그 자기 이득을 위해서 서로 그렇게 싸우나 봅니다..

오늘 관공서에 일을 납품하고 비용 문제로 좀 다투었습니다. 아니지요... 일방적으로 당했다 해야 하나요... 물론 그쪽 입장에서는 또 제가 이해가 안된다고 할수도 있겠지요.... 서로가 자기 위주로 생각을 하니까요..

얼마 되지 않는 금액이라서 그냥 예전 같으면 홧김에 네 됐습니다.. 제가 일 안한셈 치지요... 하고 날려버렸을텐데 저도 철이 드는지 아님 깨달아 가는지... 네.. 원하시는대로 서류를 다시 준비해보겠습니다... 라는 말과 함께 싸움아닌 언쟁을 종료하였습니다.

언젠가 하고 싶었던 말입니다.. 세상에 저와 같은 생각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이 있을확률은 50억분의 1이라고요...

싸우기 좋아하는 사람이 어디있겠습니까 ~ 고상하게 우아하게 위엄있게 눈빛 하나로 세상을 살아가고 픈게 남자의 아니 인간의 욕망 아니겠습니까 ? 근데 싸울일 생깁니다.. 그렇다고 이기는 것만이 능사는 아닙니다.. 때로는 져주는게 이길때도 있는것입니다.

오늘 같은경우겠지요...

날씨도 추운데 마음까지 우울해 지려던 순간 이었습니다... 퇴근길에 술 한잔 해야겠습니다...

------------
이름모를새

지난주에 가평가서 찍은 새 사진입니다... 이름이 뭐라했는데 잊어버렸습니다.. 사람을 무서워 하지 않더라구...


 


:

어제 오늘 비가 오는등 마는둥 하네요 어릴적에 정확히는 초등학교 5학년이었죠... 점심시간이었나 갑자기 비가 왕창 퍼부어 내리는데 운동장이 완전 진흙탕이 되어버리는거에요.

근데 아이들 끼리 나와서 깔깔거리면서 " 저기 운동장 한복판에 나가서 뒹굴고 올수 있는 사람 있으면 우리가 백원씩 거둬 준다" 라고 소란을 떨었지요...

그냥 서로의 얼굴만 쳐다보면서 누가 나갈것인지 히죽거리면서 쳐다보는데 어릴적부터 의외로 영웅심이 많았던 저는 " 야 내가 나갔다 올테니 돈 거둬 놔라" 하고 뒤도 안돌아보고 나가서 운동장 한가운데 누워버렸습니다.

그때 비오는 하늘을 쳐다본 기억이 납니다.. 그 당시에는 아무 생각이 없이 그냥 '이제 들어가면 약 천원이 생기겠구나' 하는 생각 뿐이었습니다. 하지만 인생을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그 기억은 저에게 천원 이상의 추억을 남겼습니다..

가끔 비가 오거나.. 학교 운동장을 보면 그때의 청순했던 마음으로 하늘을 쳐다보던 기억이 납니다.. 그때 봤던 하늘... 그리고 지금 생각 하는 그때의 하늘 그리고 앞으로 내가 봐야만할 그때의 하늘을 생각하면 요즘 한참 이야기 하는 긍정의 마음이 생긴답니다..

나이 30중반 이제 저는 철저히 혼자라고 생각을 합니다.. 가족이 없어서 혼자도 아니고.. 친구가 없어서 혼자도 아닙니다.. 혼자이고 혼자여야만 하기에 혼자입니다.. 혼자라는 말을 계속 한번 되뇌어 보세요... 그냥 공책에 무작정 혼자라는 말을 적어보세요.. 그러다보면 혼자라는 말이 과연 무슨말이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혼자 그리고 홀로 된다는거 그건 외로움 일까요... 아니면 자립일까요.. 저는 홀로 여행을 자주 떠납니다.. 시간이 허락하는한 그리고 아직 경지에 이르지 못해서인지 경제력이 뒷받침이 될때 떠납니다..  혼자 떠나는 여행은 자유와 외로움을 동시에 가져다 줍니다. 일정의 자유와 하고싶은일의 자유를 주는대신에 옆이 허전한 외로움을 가져다 줍니다. 여행전문가들은 그 외로움을 자연에서 해결한다고 하는데 저는 아직은 여행에서도 사람을 만나는것으로 외로움을 극복합니다.

그러니 아직 철저한 홀로서기는 아닌가 봅니다.  근데 철저하게 홀로서려고 하지도 않습니다.. 그렇게 저는 두리뭉실한 사람입니다. 인생에 기준점을 따라가기보다는 기준을 만들어서 살아가고픈 사람입니다..

30중반에 통장에 어느정도 있어야 하고, 직업은 뭐가 되야 하고, 뭐뭐뭐뭐.... 주욱 나열하는 결혼정보회사 기준을 따라 사는게 아니라, 그냥 내 인생에 내 기준을 잡아서 살아가고 싶습니다. ^^ 30 중반에 인생 기준점 잡는다고 이상하게 생각하실수 있겠지만... 이 기준이 저한테 20살에 만들어진 기준 이랍니다.

홀로... 그리고 또 홀로... 그렇게 살겠습니다...


:
언젠가 뉴스에 서울시청 공무원이 휴직을 하고 전세금을 빼서 가족과 함께 세계여행을 갔다는 기사를 보았습니다. 그 당시에 대단하다고 생각은 했지만, 역시나 갔다와도 비빌 언덕이 있기에 가능하다고 그냥 넘겼습니다.

근데 아래글을 보니 정말 모든걸 걸고 가나봅니다..존경을 표하고.. 정말 저도 결정할 그날만 남았나봅니다..

아래글은 http://by0211.x-y.net/ 의 안젤로 님이 쓰신글입니다... 제 생각과 참 맞는 분인것 같아서요..

---------------------

어느 학교 교실에 새뜻하게 급훈이 걸려있는 걸 보았다. ‘꿈꾸지 않으면 사는 게 아니다.’ 반 아이들에게 물어보니 공부를 하든, 운동을 하든, 점심을 먹는 그 순간에도 자신의 꿈을 되새기며 학교생활을 해나가라는 담임교사의 좌우명이라고 한다.


돌이켜 보니 20여 년 전 고등학교 시절, 우리 반 급훈도 그와 비슷한 ‘Boys be Ambitious!’였다. 지금 생각하면 식상하고 유치하기 그지없지만, 그땐 하루에도 몇 번씩 고개 들어 올려다보며 되뇌곤 했다. 열심히 공부해서 반드시 내 꿈을 이룰 것이라 다짐하며 하루하루를 성실히 보냈다.

그러나 지금, 열심히 공부했다는 기억은 또렷한데, 반드시 이루고야 말겠다고 다짐했던 그때의 꿈이 뭐였는지는 가물가물하다. 과학자? 대학 교수? 아니면 사업가? 교사? 아무리 기억해보려 해도 쉬이 떠오르지 않는다. 학창시절 밤낮으로 책과 씨름하면서, 또 사회생활을 해나가면서 정작 꿈은 시나브로 잊어버린 것이다.

내년이면 나이 마흔. 대학을 졸업해 취직하고, 서른 즈음에 결혼한 후 단 한 번도 내 나이를 구태여 헤아려 본 적이 없다. 결혼 즈음 아내가 나보다 연상인 까닭에 주변에서 나이에 관한 얘기를 종종 했던 걸 제외하면, 나이는 물론 올해가 무슨 띠 해인지도 모른 채 보냈다. 동문회에 나가 선후배 따질 일도 없는데, 살면서 별 의미가 없다고 여긴 탓이다.

공자는 마흔을 두고, 일찍이 세상의 번다한 일에 정신을 빼앗기지 않아 판단이 흐려지는 법이 없는 나이, 곧, 불혹(不惑)이랬다. 요새는 마흔이나 40보다도 더 흔한 나이 표현이 됐다지만, 호사가들의 말장난쯤으로 여겼다. 누구는 또 인생을 돌아보게 되는 때이고, 삶을 책임질 나이이며, 요즘 들어서는 재테크와 성공에 베팅하는 마지막 기회라고도 호들갑 떨지만, 모두 다 남들 얘기로 치부했다. 나이 마흔이 별 건가.

그러던 지난 5월 어느 날, 대학 시절 ‘절친’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그 전화는 내게 나이와 삶을 순간 되돌아보게 한 계기이자 일대사건이었다. 전화를 끊고 나서 한참 동안을 멍하니 앉아있었고, 그 날 저녁엔 새삼스레 마흔을 되뇌며 술 몇 병을 연거푸 비웠다.

너무나 행복한 목소리로 출국 인사차 전화한 거라고 했다. 회사에서 출장가게 된 건지 물었더니, 다니던 회사에 사표를 냈고, 아내와 초등학교 3학년인 아들 녀석을 데리고 세계 일주를 떠난다고 했다. 대략 1년 남짓한 여정이 될 것이고, 여행 경비를 위해 퇴직금만으로는 부족해 집까지 내놨다고 했다.

멀쩡하게 학교 잘 다니던 아이는 어떻게 하고, 또 돌아와서는 집도, 직장도 없이 어떻게 생활할 거냐고 따지듯 물었다. 근심과 걱정이 가득 담긴 질문이었지만, 답변은 어린 아이마냥 천진난만했다. “그때 가서 고민하면 되지, 뭐. 지금 고민한다고 해서 뾰족한 수가 있는 것도 아니고. 가족과 여행계획 짜는데도 정신없는데 1년 후의 고민을 미리 할 필요는 없잖아.”

“한두 살 먹은 얘도 아니고, 너 제대로 미쳤구나.” 전화를 끊는 순간, 하도 답답해서 나도 모르게 악담(?)이 튀어나왔지만, 그는 여전히 싱글벙글하며 여행 중에 혹 여유가 생기면 전화할 테니까 늦은 밤이라고 투덜대지는 마라며 작별 인사를 했다.

그 후 벌써 6개월이 지났고, 지난 8월 포르투갈과 에스파냐를 여행 중이라는 전화를 받았으니, 아마도 지금은 유럽을 벗어나 적도 넘어 아프리카 어딘가를 돌아다니고 있을 것이다. ‘한심한 녀석’이라고 나무라긴 했어도, 지금 나는 달력을 수시로 쳐다보며 그와 가족이 지금 어디쯤 여행하고 있을지 궁금해 하곤 한다. 처음엔 걱정스러운 마음 때문이었지만, 지금은 부러운 마음에 달력을 만지작거리고 있는 것이다.

아닌 게 아니라 대학 시절 그의 꿈은 ‘세계 일주’였다. 돌이켜 생각하니, 철부지 아이들이 나중에 커서 대통령이 되고 싶다고 말한 것만큼이나 나와 친구들은 황당해했지만, 그는 자못 진지했다. 무슨 철학자라도 되는 양, ‘어차피 한 번 사는 인생, 죽기 전 꿈은 이뤘다고 말할 수 있도록 살겠다’고 잘라 말했던 걸 기억한다.

어쨌건 그는 각오했던 ‘죽기 전’보다 훨씬 더 일찍 꿈을 이루게 됐다. 그의 아내와 아이 역시 비록 바란 건 아닐지라도 꿈만큼 값진 경험을 얻게 될 것이고, 돌아와 다시 일상생활을 하게 될 때 그 어떤 것보다 귀중한 재산이 되어 삶을 풍요롭게 해 줄 것이다.

말만 들어도 가슴 벅찬 세계 일주. 모든 꿈이 대개 그렇듯, 기실 그것을 이루기 위해서는 시간과 돈과 지식보다도 남다른 용기가 필요하다. 마흔을 코앞에 두고, 나이듦이란 어쩌면 용기를 잃어가는 과정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무모한’ 그와 ‘초라한’ 나. 지금껏 누구를 이토록 부러워해본 적이 없다.

철딱서니 없게도 나이 마흔에 다시 ‘꿈’을 꾼다. ‘꿈꾸지 않으면 사는 게 아니다’는 급훈은 입시를 앞둔 어린 학생들보다 바쁜 삶에 허덕이는 기성세대에게 더 어울리는 말이다. 학창시절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던 ‘네 꿈이 뭐냐’는 질문을 대학 졸업 후엔 받아본 기억이 없다. 하물며 마흔을 앞둔 지금, 꿈 이야기를 하면 철없다며 손가락질 받기 십상이다.

물론, 지금 난 행복하다. 고마운 아내와 듬직한 아들, 예쁜 딸이 늘 곁에 있고, 경제적으로 넉넉하진 않지만 그렇다고 쪼들리지도 않는다. 비록 아들이 아토피를 앓고 있지만, 그런 까닭에 외려 식탁이 간소해졌고 가족 모두가 꾸준한 운동을 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시쳇말로 ‘대한민국 표준 가정’으로 생각하며 늘 감사하게 생활하고 있다.

그런데, 안락한 행복감은 삶의 변화를 두려워하고 그대로 안주하게 만드는 것 같다. 이른바 ‘중년의 보수성’은 이렇게 시작되는 것 아닐까 싶기도 하다. 모두가 행복해지기 위해서 산다지만, 지금 나의 ‘행복’이 어렸을 적 나의 ‘꿈’은 아니었을 게다. 순간순간 최선을 다하며 열심히 살았고 불행하다고 여겨본 적 단 한 번도 없지만,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지는 미처 생각지 못했다. 그렇게 어느덧 마흔을 맞은 것이다.

누군가 말했다. 살면서 가장 허망할 때는 열심히 노력했는데도 꿈을 못 이뤘을 때가 아니라, 피땀 흘려 이룬 꿈이 정작 자기가 바라는 게 아니었다는 걸 느꼈을 때라고. 귀 너머로 흘려들었던 이 말이 이제야 가슴에 꽂힌다. 그의 전화 한 통이 잊어버린 나의 꿈을 일깨워준 것이다.

지금 나는 새로운 꿈을 꾸고 있다. 정확히 말하자면 꿈 꿀 용기를 되찾았다. 다른 이들은 모두 늦었다고, 또 남우세스럽다고 할지도 모르지만, 괘념치 않을 배포도 생겼다. 혼자 속으로 간직해야지, 꿈을 남들에게 말하면 안 된다고 하니 여기에 적진 않겠다. 하나 분명한 건 늦깎이 마흔에 꿈과 함께 새 삶이 시작된다는 거다. 가슴 설레는 일이다.


:


가끔 별미로 즐겼던 막걸리가 대세가 되었습니다. 어느순간 어떻게 누군가에 의해 빛을 보는날이 되었습니다.

이에 발맞추어 더 빠르게 움직이는게 일본이 아닌가 합니다. 몇일전 뉴스에는 우리 막걸리 상표를 일본에 빼았겼다는 소식도 들은듯 합니다.

다음주 정도에 다녀오려고 합니다.. 직접 가서 보고 와야겠습니다.. 그래야 시작을 하지요...





:

오랜만입니다.. 저한테도 그리고 몇분이나마 이 글을 정기적으로 보신다는 그 분들한테도 말입니다. 앵커리지 아니 대만행 비행기에서 글을 쓴 후로 처음이네요.. 한국에 와서 이리저리 또 바뻤네요.. 어머니는 항상 말씀 하십니다.. 사람은 바빠야 한다.. 그말에 공감은 하면서도 바쁘면 왜 이렇게 바쁘게 사나 싶은 생각이 드는게 사람의 간사한 마음입니다..

어제 오랜만에 집에를 내려가서 가족들을 전부 만났습니다. 가족 언제 들어도 언제봐도 즐거운 이름입니다. 서울에서 여러 여건상 운동을 못해서 내려간김에 운동을 좀 했는데.. 역시나 겨울이었는지 준비운동이 부족했는지 목이 결리네요.. 그거 아시지요 ? 목 돌릴때 몸 같이 돌려야 하는 그 통증이요..^^.. 지금 그 상태 입니다.. 거기다가 등,  허벅지 다 뻐근하네요.. 사우나하면서 맛사지를 받았는데도 영 풀리지가 않네요..

제목이 참 우습지요 ? 어제 저녁에 술을 먹으러 갔습니다. 친구들하고 여러명이서요.. 카페를 갔는데 한참 마시고 있는데 바텐더가 오더라구요.. 그 분 인상이 범상치가 않았는데 이야기를 좀 하다보니까 딱 저 제목이더군요.. 자기는 한국의 요란함이 싫다고 합니다. 그리고 냄비근성도 그렇고, 자기도 한국사람이지만 너무 심지가 없다고 합니다.. 듣는 한국사람인 제가 무안할정도로 불만이 많더군요..^^ 그래서 제가 물어봤습니다.. 혹시 독수리세요 ? 했더니... 독수리가 뭐에요... 라고 되묻더군요..  (미국인은 아닌가 봅니다)

이 얘기가 나온 이유가 신종플루 때문입니다.. 자기가 요 몇일 일본과 동남아를 돌아보고 왔는데 (경제사절인줄알았습니다.) 우리나라 처럼 신종플루 때문에 요란함을 떠는 곳은 없다고 합니다. 뭐.. 그말에 공감을 안하는것은  아닙니다. 저 또한 앵커리지에 있을때 그다지 사람들이 많은 신경을 쓰는 모습은 보지 못하였거든요.. 근데  그 이야기를 시작해서 한국의 미래경제까지 운운하시는것을 보아하니 논객수준이더라구요.. 그래서 제가 되묻습니다.. 혹시 한국이 아가씨한테 잘못한게 있는냐 ? 라고 했더니.. 아니래요.. 소위 말하는 재개발로 자기 집은 돈이 많고.. 자기도 지금 좋은데 살고 있고... 직장은 다니기 싫고.. 어쩌고 하면서 여기서 바텐더를 한다고 합니다.

음... 혹시나 내가 국가공무원이면 어쩔라고 그렇게 나라 비판을 하시나 하고 농을 건넸더니.. 대답이..국가공무원이 이 시간에 여기서 술먹는일은 드물어요... 그리고 외모가 공무원 외형은 아니시네요.. 라고 되 농을 건네더군요..

그렇게 술을 한병 비우는 사이 친구들은 라이브 반주에 맞추어서 노래를 부르고 있네요.. 어떤 친구는 기타를 직접 치면서 안돌아가는 혀로 "Yesterday"를 부르네요..^^ 제 친구지만 웃기네요..

그 와중에 또 질문을 하더군요.. "우리나라가 돈 많으면 제일 살기 좋은곳이라고 생각하세요 ?" 나 이거참 논술 문제도 아니고 대답을 할수도 안할수도 없는 와중에... "그렇게 돈이 많이 없어서 아직은 잘 모르겠습니다만, 익숙함이 그다지 좋지는 않습니다" 라고 대답을 해 주었습니다.

사실이 그렇지 않을까 합니다. 우리는  한국이라는 나라에 조국으로서 너무 익숙해져 있는게 아닐까 합니다. 저 자신도 항상 생각하지만 다른 나라에서는 내가 뭔가 할수 있을것 같고, 다른 나라가 나를 반겨줄것 같고, 다른 나라 정부는 나의 노후를 책임져줄것같고, 그런생각 많이 하지 않는지요.. 하지만 그 다른 나라가 해당 국민한테는 또 하나의 익숙함이 아닌가 합니다. 세계에서 가장 따기 힘든 자격증이 스위스 시민권이라고 합니다. 그만큼 혜택도 많고, 복지도 좋은 나라라고 하네요.. 그럼 스위스 시민은 다 행복한가요 ? 반면에 행복지수가 가장 높다고 하는 방글라데시아는 그만큼 혜택이 좋고 문명이 발달해서 행복한것일까요 ?

지극히 교과서적인 이야기를 또 퍼부었네요.. 괜찮아요.. 누군가를 위해서가 아니라 저를 위해서 저한테 쓰는 글이니까요...근데 버릴수 없다면 갖는게 맞습니다..

오늘 , 그리고 내일아침 또 새로운 고민거리와 걱정이 저와 당신 모두에게 다가올것입니다.. 지금 고민외에 또 다른 고민거리 말입니다. 아침 출근시에, 차안에서, 회의중에, 점심시간에... 생각지 못한 걱정거리를 가져다 줄것입니다.. 피하지 마세요.. 피한다고 그게 안오는게 아닌거 잘 아실겁니다..

가끔은 한국사람으로 가끔은 세계인으로, 그리고 가끔은 자연인으로 사세요...

알라스카 No.1 Highway to South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