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이다 새해라는것이 또 한번 찾아온다. 1975년부터 인지를 하였던 아니던 나는 40번째의 새해라는것을 맞이한다. 


어느 드라마에서 그랬던가 '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 이렇듯이 연도도 숫자에 불과한것인가 ?


한해한해를 지나면서 아니 하루하루를 지나면서 우리는 수많은 생각을 하고 수많은 잡념에 빠져든다. 생각해보라 실제로 당신들이 일을 하면서 진정으로 일에 몰입하는 시간을 얼마나 되는가를..


나는 이글을 쓰면서도 머리속에 정확히 4가지의 생각을 하고 있다. 이글을 누가볼까, 저녁을 무얼 먹을까, 앞에온 커플들은 지금 어디서 오는걸까, 인테리어 되어 있는 저 나무는 어디서 온것일까 ...


그러나 중요한건 누가볼까를 생각하면서 또 생각이 생각을 낳는다. 누가 본다면 내 글을 보고 칭찬을 할것인가 쓰레기라고 버릴것인가.. 이렇듯 생각에 생각을 하다보니.. 우리는 생각이라는 둘레에서 벗어날수가 없다..


그럼 우리가 생각하는 생각이란 무엇인가.. 보자.. 과거, 추억, 미련, 기억, 사랑, 감성, 마지막, 이별, 눈물 청춘, 미래, 내일, 감정... 이런 모든것들이 뜻하는게 무엇인가..


아마도 써 내려간다면 끝이 없을거라 생각한다... 저 끝도 없는 단어를 우리는 머리속 하나로 생각한다. 더 정확히 말하면 머리속의 뇌로 생각을 한다 해야 하나.. 


그럼 생각을 하면 끝이 나나... 절대 그렇지 않다고 본다... 나도 생각을 많이 하면 한다고 사는 사람인데, 어느순간 어떤 사람들을 보면 내가 하고 사는 생각은 생각도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흔히들 말한다.. 나도 말한다.. '생각좀 하고 살아라' 


그래서 생각을 많이하면 좋은삶인가 ? 생각을 안하고 살면 잘못된 삶인가 ? 내생각에 이런말은 좀 바꾸어 줘야 한다. ' 올바른 생각을 해라..' 그렇다면 또 말해보자.. 올바르다는 판단은 무엇인가 ? 법에 저촉되지 않는 그런?, 아님 윤리, 도덕에 위배되지 않는 그런 ? 


그렇다면, 내가 내 행복을 위해서 오늘 회사를 그만두고 내 할일을 찾는다면.. 우리는 뭐라 하는가.. 


'참아라'.. '요즘 경기도 안좋은데'.. '로또 맞았냐'.. '아직은 시기상조다' .. '누군 그런생각 안하는줄 아냐..'대단한다'.. 등등의 긍정적인 부분보다 부정적인 부분들을 많이 이야기 듣게 된다. 


그렇다면 시기는 언제인가 ? 반문을 하고 싶다. 거기에 대한 답은 알고 있는가 ? 모른다.. 그렇듯이 그냥 일상적으로 하는 말이다... 


물론 모든일에 신중을 기하는건 맞는말이다.. 그러나 그 신중을 어디에 가하고 있는지도 생각을 해봐야 한다. 내 자신은 신중에 신중을 기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혹자들은 절대 사업하면 안된다고 한다.. 그렇다면 사업자들은 그냥 설렁설렁 해야하는가 말이다. 의사결정의 빠름과 신중은 다른것이다.. 신중을 기하여 의사결정을 빨리한다면... 그게 나은거 아닌가 싶은 생각이다.. 신중하지도 못하면서 의사결정만 한다면... 신중하면서 의사결정은 .. 흐지부지 해진다면.. 


그러나 위의 각각의 유형에 있어서도 당연히 성공하는 사람이 있다.. 감을 믿는 사람들이다.. 더군다나 사업을 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그 사람들의 유형이 다 같은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사람의 유형을 MBTI로 나누듯이 사업가들도 나름 성향이 있다... 그러니 이건 사람의 성향이지 사업가 할 기질이나... 뭐 할 기질로 나누기는 그렇다.. 사업을 하다보니 사업가 기질이 생기는거고...공무원을 하다보니 공무원스럽게 된것이다.. 


나는 태생이 사업가고 나는 태생이 공무원이라고 타고 태어났나... 직업이 사람을 정하게 되는것이다.. 최소한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하나더..


낭비하지 말지어다.. 내인생 살기에도 바쁘다.. 내인생 생각하기에도 정말 힘든 나날들이다.. 그럼에 다른 사람의 인생을  끼어 넣어서 더 피곤해 질필요가 없다.. 그 유명한 스티브잡스의 스탠포드 졸업식 축사이다.  


아예 생각을 안하고 살수는 없다... 남이라는 존재를...  왜냐하면 삶 자체가 나와 남이 공존해서 이루어지는 하나이기 때문이다.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을 누군가가 어떻게 생각할까를 버려야 할것이다.. 아마 이글을 쓰는 나 먼저 그 경지에 이루어야 할텐데.. 쉽지는 않은일이다.  


커피에 그렇게 관심이 있으면서 왜 포장마차에서 커피를 팔 자신은 못내는가... 스프를 그렇게 좋아하면서 왜 아침에 바구니에 넣어서 지하철 앞에서 팔 자신은 못내는가... 도대체 무엇을기다리고 있는것인가..


화려하고 인테리어 잘 된곳에서 오픈을 하고 동료들한테 찬사를 받고 싶은것인가.. 

.......


버리지 않으면 결코 채울수가 없는것이다.. 뭘 버리고 뭘 채울것인가를 우리는 항상 생각하는것이다. 그러나 버릴때도 의식, 채울때도 의식... 그러기에 삶이 더 힘들어지는것 같다..


내 머리속의 생각을 이 글을 통해서라도 좀 버리고 싶다.. 


어설프게 가지다 보니 더 욕심을 부리는 내 40이 시작되는 둘째날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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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몇일 잠꼬대를 하는 느낌이 듭니다. 어제는 잠꼬대를 제 자신이 확실히 들었네요.

 

유리잔이 깨졌는데 높으신분이 밟을까봐 제깍 치우는 대화였던것 같습니다. 꿈의 해석이라도 다시 펼쳐봐야 하는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전날 잠꼬대는 한 기억은 있는데 뭐라 했는지 기억이 없습니다.

 

잠꼬대가 뭔지 곰곰히 생각을 해봤습니다. 굳이 심리학자, 정신분석가들의 이야기를 빌리지 않아도, 잠재되어 있던 내 안의 모습, 내안의 소리가 나오는것 같습니다. 그게 그런데 본연의 모습으로 안 나타나고, 꼭 뭔가의 은유를 통해서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그걸 해석해 내는게 이제 심리학자, 정신분석가들의 일이겠네요.

 

제 나름대로 생각을 해보면 잠재되어 있다는것은 뭔가를 억누르고 있는것이고, 억누름을 당한다는것은 두려움의 일종이라고도 생각합니다. 그럼 뭐가 두려운걸까요 ? 두려움과 불안함은 어떻게 나한테 다른걸까요 ? 예전에는 두려움이라는게 별로 없었습니다. 내 자신이 가졌다고 할게 별로 없었을때인것 같습니다. 부러워 할것도 별로 없었습니다. 그러나 한해, 한해 지나면서 사회의 편익을 누리고, 내 인생에 하나씩 뭐가 붙어갈때마다 흔히 말하는 두려움이라는게 작용을 하는것 같습니다.

 

위에서 언급한, 있는 우리에서 있어야 하는 우리도 변해가는 과정에 제가 들어가 있는것 같습니다. 뭔가에 도전을 하는 사람은 두려움보다는 현실을 즉시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지금의 나는 지금의 나를 잃어버릴까봐 두려워하는 사람인듯 합니다. 지금의 나도 참으로 만족한 내가 아닌데도 말입니다.

 

제대로 도전을 취한게 언제인지 잘 모르겠네요. 해보고 실패를 하고 나서 느끼는 감정이 차라리 안하고 지금의 감정을 느끼는것보다 현명한 일인것 같습니다. 하지 않으면 해야 하는 불안감과, 했을때 결과에 두려움이 공존하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시작한다면 일단 불안감은 벗어내지 싶습니다.

 

두렵다면, 도전에 미련이 남는다면 2004년 12월 17일을 기억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두려움도 내안에 사는 일원입니다. 굳이 내치고 싶지 않습니다. 불안감도, 즐거움도, 내안에 사는 모든 감정을 굳이 내치고 싶지 않습니다. 지들끼리 부딪히고 살아가라고 하렵니다. 단지 무언가가 편파적으로 많은 비율을 차지하지 않게끔 조절하는건 ... 역설적이게도 그것또한 내 일원이네요..

 

과거를 기억한다는건 낡은 생각이라고 하지만 때에 따라서는 삶에 촉매제가 될수도 있습니다.

 

10년전 오늘 무슨일이 있었는지를 기억하면서 앞으로 삶을 한번 더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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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삶에 대해서 무단히도 무디지 않나 싶습니다.

 

오늘 하루가 우리 각자에게 어떠한 의미가 있는지를 한번 생각해봐야 할것 같습니다.

 

저요.. 전 그냥 오늘 하루가 오늘 하루입니다. 어제가 지나서 오늘이고, 오늘이 지나면 내일입니다. 생각없이 사는것 같다구요? 그럼 이런 대답은 어떤가요 ?

 

오늘은 내 인생 최대의 하루이다.  과거는 필요없다.. 미래도 필요없다 단지 오늘만이 소중하다... 책에서 많이 본 대답들 아닌가 싶습니다.

 

좀더 인생에 대해서 솔직해 질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항상 강요 받습니다.  올바른 생각만 하고, 올바른 행동만 하고, 올바르게 살아나가라고.. 그럼 올바르다는것은 무엇을 의미하나요 ? 누가 정하지요 ? 나라에서 ? 법에서 ? 법은 최소한의 지켜야할 도리라고 그러잖아요..

 

나를 숨겨야 하기 때문에 내 생각과 관계없이,, 올바르게 사는척, 올바른 생각만 하는척, 그렇게 살고 있지는 않나 한번 생각해봅니다.

 

서두가 너무 길었네요...

 

 

나를 누군가가 생각하고 기억해준다는건 참 좋은 일입니다. 물론 세상에 적이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 세상을 이롭게 하리라 노력하는 종교인들마저 적이 있는 상황에서 예수님, 부처님 모두 적을 가지고 있을겁니다. 단지 그분들의 드넓은 아량으로 포용을 했을 뿐이지요..

 

한번도 보지 못한 사람이 있습니다. 세상에는 없구요.. 근데 살아 있었다면 가족이었을 겁니다. 눈치를 채셨나 모르겠네요.. 와이프의 언니네요.. 처형이라고 하나요. 결혼하기전 짧은 세상 운명을 달리하였다 합니다. 처가집에 가면 동생들과 언니가 찍은 사진이 방에 걸려있고, 그 모습을 보면서 생전일면불식이었던 처형을 생각해보곤 합니다.

 

생각하고 기억한다는것에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기억을 하기위해서는 생각을 해야 하고,, 생각을 하다보면 기억이 나는게 우리 삶입니다. 삶에 있는 모든것들을 포용할수 있는 연습을 해야 하겠습니다. 하긴 이말도 어패가 있네요.. 인생에 연습이 없지요. 그냥 바로바로가 현실이니까요. 더 좋은 미래를 꿈꾸지도 않고, 과거의 기억도 내세우지 않고, 지금의 그대로를 인정하는 그런 기억을 가지고 싶네요.

 

뭔가를 자꾸 제어한다는거.. 슬픈일을 생각하지 않으려는거. 나쁜일을 기억하지 않으려는거, 그렇게 말처럼 쉽지는 않습니다. 아니 불가능에 가깝다고 봐야지요... 난 깨끗이 잊었어 라고 한들 그게 잊혀진게 아니라... 정말 잊고싶은 강렬한 메시지입니다.

 

그냥 오는기억, 오는 생각 막지마세요. 그래야 조금이라도 머물다가 또  떠납니다. 자꾸 밀어내면 더 오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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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YDAY

 

지난편에도 언급을 했지만 30대에서 가장 뚜렷히 기억이 남는건 미국생활 아니 알라스카의 2년간의 생활이었던것 같다. 한국을 돌아오고 나서의 일들을 기억하려고 하니 딱히 쓸만한 거리가 없다.

 

사실 남들과 똑같이 취직해서 월급받으면서 지낸 시절밖에는 생각이 나지를 않는다. 중간중간 뭘 해보겠다고 나와서 프리랜서의 길을 걸었던 기억들, 하지만 잘 연결이 되지를 않아서 경력상의 손해를 본점등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인생에 어찌 자기가  만족할 만한 삶을 살수가 있겠는가 싶은 생각을 하면서 나름을 위로해본다.

 

앞으로 또 다시 10년을 생각하면 먼일 같지만 이번 30대보다 더 훌쩍 지나가지 않겠는가 싶다.

 

오늘에 충실하면서 그나마 한달도 채 안남은 30대를 정리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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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에서 돌아온후 여행에 대한 재미에 더욱 빠져들었다. 본연의 일을 망각할 정도로 여행에 흥하여 버는 족족 여행을 떠났다. 라스베가스를 5번을 다녀왔는데 그중 3번을 골프를 치러가고 2번은 카지노를 위해서 갔던 기억이 난다.

 

갈때마다 다른느낌이 나는건 나만의 생각일까 ? 여기에서 놀지 않으면 마치 바보다 되는듯한 느낌의 도시 .. 라스베가스.. 그 일정중에 가장 기억이 나면서도 잼나게 놀았던 카지노에서의 잠시를 공개한다.

 

 

 

넓은 땅덩어리 알라스카에 인구는 50만명이며, 그중 앵커리지의 인구가 30만명이다.. 그중 한인이 대략 7,000명이라고 한다. 그러면 한인의 비중이 그리 작은셈도 아니다. 그중에 친하게 된 동생한명이 프로골퍼여서 베가스 모든 일정은 항상 같이 동행을 하였다. 지금도 생각이 나는 고마운 동생임이 틀림없다. 타이거우즈가 자주와서 연습한다던 골프장이다. 한여름을 피해서 갔는데도 9홀즈음에 날씨의 압박이 대단하였다.

 

 

다시 알라스카로 돌아와서 이제 겨울을 맞이한다. 알라스카 겨울 참 두려웠다.. 얼마나 추울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런 고민도 잠시 진정 알라스카의 겨울로 빠져들게 되었다. 눈을 사랑하는 나로서는 참 더할수 없이 좋은 알라스카의 겨울이다.

 

 

어디를 보면서 보드를 타고 내려가도 끝이 없다는 느낌밖에 안든다. 가고 가도 끝이 없다는 느낌.. 그리고 주변에 아무도 없다는 고요함을 느낄수 있었던 알라스카 겨울에 감사를  표한다.

 

이제 수많은 여행을 뒤로하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갈 시점이 다가온다. 2006년이 다지나가고, 2007년 새해를 맞이한다. 그간 정들었던 사람들과 인사를 하고, 한국에서의 삶을 살기 위한 사전준비도 하고, 알라스카하고도 작별인사를 하러 빙하근처로 떠난다.

 

 

 

 

이제 돌아갑니다.. 한국으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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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에 록키산맥을 볼수 있다는 것은 운이요.. 여름에 록키산맥을 볼수 있다는 것은 천운이라고 했다.. 누가 그랬냐고.. 내 느낌이다.

 

온통 사방이 눈이다. 눈을 그렇게나 좋아해서, 알라스카를 갔건만, 이곳 록키산맥의 겨울 눈은 그 거대함이 또 남다르다. 뒤에 보이는 호텔의 이름은 이제 기억이 안나지만 겨울철 1박에 5,000불은 기본이라는 가이드의 설명을 들은 기억이 난다.

 

눈의 나라에서 눈의 고장을 보면서도 느끼는 아름다움 감정.. 굳이 과거라고 표현할 필요는 없는것 같다. 단지 내마음속이라는 표현이면 충분하다.

 

 

 

잠시나마 여행을 같이 했던 무리들. 오른편 두번째에 백발의 젊은 분이 내 은사님이시다. 대학시절 인연으로 하여 대학원졸업후 지금까지도 종종 연락을 드리며 지내는 건방지지만 내가 인정하는 몇 안되는 은사님중의 한분이다.

 

나머지 동행들은 이제 이름도 모르고, 하는일도 모른다. 기억나는건 어떤 부부가 오셨는데, 나한테 자기딸 소개시켜준다고 연락처 받아가고, 어떤 선생님 커플은 자기학교 선생님 소개시켜준다고 메일주소 받아갔다. 그리고는 연락이.....

 

 

있었다.... 하지만 이몸 알라스카에 묶여있는몸 초대를 하고 싶어도 그러하지 못하여 만남으로 까지 이루어 지지는 못하였다. 그러한 불운(?) 때문에 지금의 와이프를 만난건지도 모를일이다..

 

 

캐나다에 오면 밴쿠버에 오면 반드시 들려야 한단다.. 랍슨 스퀘어라고 교수님 내외분과 가족들. 주현이 주희랑 같이 .. 이 아이들이 그당시 고등학생 대학생이었는데 벌써 졸업을 해서 귀국해서 나름 사회에서 자리를 잡고 있단다.

 

가서 보고싶은데, 인천이면 얼마 멀지도 않은데, 교수님한테 인사도 드릴겸 찾아가면 되는데, 마음의 거리는 그렇게 큰가보다.

 

그래서 의례적으로 하는말이

 

' 언제한번 들릴께... 언제한잔해... 자주 연락드리겠습니다...' 이말 자주하면서도 참 싫은 말이다.. 그냥 말없이 행동하는 사람이 었으면 하는 내 자심의 바램이다. 책을 읽다보니 세계 각국의 저자들이 하는말이 참 다르다.. 교수, 심리학자, 정신과 전문의, 행복전문가 등의 글을 읽어봐도 마땅히 답을 주는게 없다는건 누구나가 알것이다. 단지 그러한 책의 제목을 통해서 우리가 뭔가 얻을수 있다는 또 하나의 욕심으로 책을 접해서 그런게 아닌가 싶다.

 

30대를 마무리하면서 지금 드는 생각은 앞으로 인생의 반을 살았는지, 다 살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지금까지의 과다한 생각들이 과연 내 인생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었는가를 생각해보면 결론은 미미한 수준이다라는것이다. 너무다 과다한 생각이 가끔은 육체적으로 두통이라는 짐도 주어줄뿐 실질적으로 그렇게 과다하게 생각했던 걱정들이 아직까지 일어나지는 않았다.

 

단지, 그러한 면을 알면서도 또 과다한 생각을 하고 있다는 점이 아이러니 하면서도 내가 인간이기에 이럴수 있다는 점을 가간과하지 않으려고 한다.

 

생각나면 생각하면 된다.. 생각도 나의 일부인데 어찌 떼어버릴려고만 하는가. 나의 몸과 나의 정신은 하나지 결코 따로 분리할수가 없다는 너무나 당연한 논리를 가지고도 우리는 많은 생각에 접어 들기만 한다.

 

...... 아마 30대 마지막 한달의 글에서 미국생활 2년의 글이 가장 많을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제 라스베가스로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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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상권 침해라고 하면 어쩔수 없지만 어쨋든 날 도와주셨던, 무진장 도와주셨던 내외분이다. 형님은 나랑 띠동갑이시고 형수님은 나이가 하여간 동안이시다.

 

큰집에 두분만 사셔서 나한테 1층의 방하나를 선사하셨다. 그래도 나름의 양심은 있는지라 최소한의 생활비는 내고 살았다. 그리고 가끔 시간 되면 스시집 가서, 새우도 튀겨주고, 캐셔도 봐주고, 어쩔때는 스시바에서 롤도 말았다. 말그대로 전천후였다고나 할까..

 

물론 시간당 일당도 두둑히 챙겨주셔서 그걸로 생활비도 하고, 차 기름도 넣고.. 참..여기서 차를 소개해줘야 하겠네.. 참으로 타고 싶었던 차를 미국에서 그것도 눈의 주 알라스카에서 타게 되었네요... 이름하여... 비틀... 뉴비틀

 

 

 

 

참 애지중지 잘도 탓던 차다.. 차 살때 딜러도 잘 만나서 얼마 타지 않은차 좋은 가격에 샀고.. 2년동안 아무런 문제없이 잘 굴러가던 차다..

 

그 큰 알라스카 땅 덩어리 거의 두번은 돌았었다.. 겨울에도 스노우타이어 없이 잘 달렸고, 여름에는 더할나위 없이 좋은 성능을 발휘해준 고마운 발이었다.

 

그 여름 대학교 은사이신 박재호 교수님 가족분이 오셨을때도 저 차를 가지고 멀리 여행도 했던 추억이 남는차다.

 

아마 그당시 5명이 저차에 타지 않았나 싶다.. 지금의 미니보다 공간구성은 훨씬 잘되어있다. 사실 이번에도 비틀을 살까 싶었지만, 집사람의 반대로 미니를 선택했고, 역시 선택에 만족을 하면서 지내고 있다.

 

 

 

방학이 지나고 가을학기가 시작되고, 차도 사고, 집도 안정되어서 이제 나름 알라스카인이 되어가고 있는듯 하면서 본토를 가고싶은 충동을 느끼게 되었다. 그당시 막역한 사이인 석이형이 시애틀에서 사업을 하고 있기에 시간을 맞춰서 한번 보러 가기로 했다.

 

 

시애틀에 있는 스타벅스 1호점이다. 로고도 지금하고 많이 다르지 않는가.. 옆에 있는 길거리 악사가 깝치고 있다... 깝친기념으로 적선좀 하였다... 좋단다..

 

커피는 따로 사먹지는 않았고.. 석이형 아는 사람들 만나러 근처 폭포호텔로 향했다.. 참 거대하더라.. 폭포 바로옆에 호텔을.. 발코니 문을 열면 바로 폭포다... 발코니까지 물이 튄다..

 

정말 밤새 술을 먹고 싶었지만..일정상 밤늦게 다시 시애틀로 향한다..

 

아직도 좀 아쉬웠던 술자리였지 싶다.. 나중에 그 사람들 다시 만나러 아침비행기 타고 시애틀을 다시 온적이 있다.

 

 

 

 시애틀에서의 일정을 마치고 지난번에 교수님이 오셨던관계로 이번에는 내가 교수님이 살고 계신 밴쿠버로 넘어갔다. 

 

시애틀에서 밴쿠버는 바로 옆이다.

 

그러다보니 제트기가 아니고 프로펠러 비행기가 뜨는것 같다.

 

우리나라도 제주도 저가항공 초창기에 프로펠러 항공기가 떠서 그옆에 앉으면 정말 시끄러웠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50여분을 날았다.. 밴쿠버 공항에 도착하였다..

 

그리고는 교수님 댁에 여정을 풀고 록키산맥으로 갈 준비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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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스카에 도착한 시간은 아침 10시정도 였다. 그런데 뭔가 이제 해가 뜨려고 한다.. 마중 나오기로 한 목사님이 기다리고 계신다.

 

" 형제님 반갑습니다. " 약간은 어색한 말투였지만, 어쩌겠냐 그래도 나를 도와주시겠다고 나오신분인데.  

 

알라스카 앵커리지의 그 첫느낌이란... 아마.. 무슨말로 표현을 해도 이해가 안될듯 싶다.. 백문이 불여일견.. 아는 한자가 없어서 그냥 한글로 쓴다

 

처음 도착했을때 왜 우울증이 오는가를 이해할수 있겠더라고.. 아침 10시넘어서 해가 뜨고, 다시 오후 3시면 해가 져서 밤이 온다.. 오로지 할수 있는거라고.. 일찍히 술을 한잔 시작하는거.. 그뿐이다.

 

내가 처음 묵었던 곳은 교회 전도사님 댁이었다. 가보니 전도사 한분, 젊은 목사한분, 그리고 필리핀 목사 한분이 같이 살고 있었고, 2층에는 버지니아에서 오신 아저씨 한분이 살고 계셨다. 또 지하 한켠에는 보호수용을 받고있는 한인 2세가 있었다. 사실 이친구 좀 무서웠다. 밤에 와이프를 때리기도 한다. 그래서 경찰도 몇번 출동했다. 결국은 집을 나가버렸다.

 

그 집에서 술을 먹는 오직 유일한 사람들은 2층 아저씨와 나였다. 당연히 가까워질수밖에 없었다. 온지 1주일 정도 지날무렵 아저씨가 날 부른다..

 

"미스터 리" 아... 이 아저씨 정말 미국에 오래 사셨나보다.. 근데 영어는 잘 못하신다고 한다. 한때 버지니아에서 공장도 했고, 요트를 두척이나 끌었으며, 벤츠를 두대나 가지고 있으셨단다.. 근데 왜 여기에 있냐고 ? 여기 앵커리지의 많은 사람들이 사연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다. 한때 본토에서 날리다가 나름의 사정을 가지고 들어와서 재기를 하는 사람도 있고, 사고치고 숨어 있는 사람도 있고, 말 그대로 돈 많이 벌어서 여생을 알라스카에서 보내고자 하는 사람도 있다.

 

암튼 그날의 술은 버드와이저 24캔이었다. 눈이 엄청나게 내리는 가운데 아저씨가 한캔만 하자고 해서 둘이 앉았는데, 정말 앉은자리에서 24캔을 다 비워버렸다. 안주는 냉동 미루가이.. 아저씨가 안주가 모자라니 고기를 굽는다고 하여 고기를 굽는동안 나는 술을 사러가고 싶었지만 이놈의 길을 알아야지.. 아저씨랑 같이 리쿼 스토어로 가서 내가 술을 샀다. 그리고는 아저씨하고 같이 집을 알아보기로 했다. 아무래도 목자 집안에서 자꾸 술을 마시는게 꺼름칙해서 말이다.

 

 

그렇게 둘이서 알아보던중 Low Income을 대상으로 집을 싸게 준다기에 아저씨는 영주권자라서 해당사항이 될거같아서. 관할구청가서 상황설명하고 했더니 바로 집을 구할수 있게 도와주더라고.

 

이게 참 차이인듯 같다.. 저소득자를 위한 집이라고 후지지가 않아.. 엄청 좋단 말이다. 방이 두개고, 발코니가 있고, 화장실이 두개고, 부엌도 있고, 전망도 좋고. 저게 내 방이었다. 책상은 아저씨가 일하는 목공현장에서 만든거고, 좀 지나서 나도 아저씨의 목공현장에서 알바를 하기로 했다. 일명 노가다... 침대 매트리스는 누군가가 사용하던거 깨끗이 빨아서 사용을 했고, 그러다보니 그다지 돈이 들어갈 일은 없었다.

 

 

 

 

 

이사한 집 발코니에서 찍은 동영상이다. 4월4일인데 아직 한겨울의 퐁경을 보이고 있다. 누군가 그랬다. 과거에 사무쳐 살지 말라고. 과거는 쾌쾌 묵은거라고. 근데 과거를 생각하면서 살짝이나마 마음의 전화을 느낀다면 그거 또한 마음의 리프레쉬가 되는거 아닌가 싶다. 꼭 누군가의 말이 맞는건 아닌듯 싶다. 뭐든지 과하면 안좋은 거지만, 적당히 자기만족을 할줄 알다면 그다지 자기계발이 필요하지는 않을듯 하다.

 

 

참... 날은 벌써 4월까지 왔는데, 내 학교 이야기는 하나도 없었네..옆사진이 학교도서관이다. 땅이 넓어서인지. 정말 참 잘 지어놓았다. 바닥에 쓰레기 하나 없이 카페트로 깔아져있고, 책상과 책상의 거리도 정말 넓고.. 암튼 우리내 독서실 칸막이는 찾아볼래야 찾아볼수가 없었다.

 

그래도 나름 유학비자 였던지라 공부를 꽤 열심히 했다. 장학금도 받았고, 시험보면 한국인 특유의 암기실력으로 거의 A를 받았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여름방학이 시작되었다. 5월부터가 여름방학으로 9월까지 거의 4개월을 쉰다..

 

정말 안나가려고 했는데, 연어들고 사업한번 해보려고 연어샘플 들고 한국으로 잠시 나간다. 유나이티드 에어라인을 타고 1주일 여정으로 간다. 여기서는 자세한 내용은 생략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 왜냐 결과가 그다지 좋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나름 계획서도 만들고 샘플도 들고 나갔지만 아직은 시기상조라는 답변만을 가지고 다시 돌아온다.

 

근데 아직도 무슨 계획만 하면 다들 제일 쉬운말이 시기상조 아니면 이제 너무 많다는 말뿐이다. 그럼 도대체 누가 어떤 시기에 들어가야 하는건가.. 그들도 알지 못한다. 컨설팅을 하는 교수님들이 직접 사업에 뛰어드는 경우 보았나 ? 아마도 절대로 하지 않을것이다. 왜냐하면 그냥 그 위치에서 말로만 명맥을 유지하면 되는 위치이기 때문이다.

 

알라스카 생활도 어느덧 익숙해질즘 참으로 좋은 인연을 만나게 되었다. 스시집을 운영하시는 사장님을 알게 되었는데 모든일을 마치고 귀국하는동안 참으로 많은 도움을 받고 왔다..

 

그 이야기를 이제 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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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생각해볼것이다. 내 시기에 다다른 사람이라면 ..

 

39세의 12월.. 돌이켜보면 29세의 12월이 생각이 난다. 그때도 이러한 감수성에 젖어 있었던것 같네. 대학원을 졸업하고 첫직장의 합격통보를 받았던 시기 정식으로 된 첫직장에서 번돈으로 맞이했던 첫 크리스마스..

 

그로부터 10년이 지났다.. 뭐가 변했을까.. 나에게.. 정리해본다.

 

나이계산이 안된다.. 30살이면 몇년도였는지를.. 지금이 2013년이고 내나이 39이니까. 9를 빼면 2004년이 되겠네.

 

2004년 1월즘에 어렵게 들어갔던 직장을.. 3차까지 면접을 보고.. 난생 처음으로 집단토론 등의 다양한 면접을 거쳐 입사를 했다.. 지금의 GS 리테일.. 1년남짓즈음에 개인적인 이유로 퇴사를 하게 된다. 그게 뭐냐면 블로그 헤쳐보면 다 나오는 알라스카행이다. 아직도 난 의아하다. 내가 왜 거길 선택했을까 ? 준비된 영어성적이 안되서 그랬을까 ? 아니면 정말 난 연어가 좋았던 것일까 ? 아님 30대 초반의 무모한 도전이라고해야 하나. 그러나 지금 시점에서, 아니 49살의 12월에도 마찬가지로 생각할것이다. 내 인생 최고의 경험은 알라스카의 2년이었다고...

 

집의 도움없이 2004년 1년을 버티었다.. 버티었다기보다는 준비를 했다는 말이 맞겠다. 토플을 보고, 회화학원을 다니고 지금도 유명한 삼육 외국어학원.. 끊기 때문인지 뭔지는 모르겠지만 4단계에서 그만두었다. 그리고는 학비를 벌어야 했기에 이일 저일 머리쓰는 일을 많이 했다. 내가 회사 차리면 꼭 직장에서의 경력만 인정해 주는 그런 실수는 하지 않을런다. 회사일이라는것은 매뉴얼이다. 아무리 바보를 갖다 놓아도, 할수 있다는 내 신념이 있기 때문이다.

 

2004년 7월에 I-20가 도착했다. 일명 학교입학허가서 그걸 가지고 비자준비도 해야하고, 이제 정말로 가는구나 싶은 생각이 든다. 모든것은 나혼자 준비했다. 알라스카에 접촉을 한것도 나 혼자, 비자를 신청하고 모든 과정을 진행한것도 나혼자, 그리고 짐도 나 혼자 쌌다.

 

2004년 12월1일 비자 인터뷰가 있는날이었다. 배운건 있어서 여권을 대사관에서 가져가면 합격, 그렇지 않으면 불합격이라고 하였다. 심사관 누구를 만나는가도 관건이라고 하였다. 근데 신경 쓰지 않았다. 심사를 약 3분간에 걸쳐서 했고, 여권을 가져가 버리더라고. 아 이제 합격인가 보다.. "1주일안에 도착할겁니다" 라는 말과 함께. 나는 광화문을 걸었다. 잘하는 짓이겠지.. 하긴 이제 다 결정된건데.. 집에 전화를 걸었다.  엄마는 반기는건지 내내 뭔가 아쉬운건지 모르겠고, 형은 나에게 편도 비행기표를 끊어준다고 하엿다.

 

2004년 12월 17일 저녁 6시30분 대한항공을 끊었다. 그 당시만 해도 인천발 뉴욕을 갈때 앵커리지를 경유해서 갔다. 기름넣고 간다고 하더라고...  이제 남은 시간은 2주정도.. 친구들과도 많이 놀았고, 나름 송년회 겸 이별.. 아니 환송이라고 하나.. 하여간 별의별 이름을 붙여서 술을 마셨다.. 그 당시 친한친구 한명이 강남역에 바를 하나 내었을때라 장소는 더없이 좋았다.

 

그 바 사진도 있었는데 그건 어디로 사라졌나 보다.. 아니 어딘가에 또 잠자고 있을 사진이다. 옆 사진은 그날 송별회를 하는날 2차를 가서 놀았던 사진이다. 내 어깨동무한 친구가 바 사장이고. 그옆이 아직도 변함없는 우정을 보이고 있는 친구, 그리고 그 옆에 학수는 그날 이후로 본적이 없다. 안친해서냐고 ? 볼기회가 없어서라고 말하고 싶다.

 

이날 오랜시간 술을 마신걸로 기억이 된다. 그리고는 떠난다.

 

 

 

 

 

 

 

 

 

 

아직 남아있는 KE 마일리지다. 유효기간 적용적에 쌓여진거라 평생 안없어진다고 한다. 근데 어쩌나 난 이미 아시아나만 타는걸, 카드적립도 아시아나만 한다는걸..

 

그렇게 한국을 떠난다.. 30살 처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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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그런 경험을 해보셨을겁니다. 문득 뭔가 생각났을때..

 

이게 아이디어가 될수도 있고, 잊고 있던 비밀번호라던지, 해야할일인데 잊었던것등.. 문득  문득 새록새록 기억나는것들이 있을겁니다.

 

혹은 위에서 말한것처럼 그냥 내 머리속에 뇌리처럼 스치고 가는데 놓치면 잊혀질것 같을때.. 그럴때 메모를 하나요 ?

 

메모의 이유는 크게 두가지가 되지 않을까 합니다..

 

첫째는, 잊지 않기 위해서..

 

위의 언급대로 생각, 일정등 머리속에서 정리안되는것들에 대한 모든것을 잊지 않기 위해서 메모합니다. 저는 메모를 위해서 3가지를 사용합니다.

 

우선 가장 많이 쓰는게 종이메모.. 그냥 아무렇게나 끄적 거려도 나만이 알아볼수 있기 때문에 그리고 메모당시의 상황도 생각이 나기 때문에 가장 유용하게 씁니다. 단지 부피가 커서 항상 가방을 들고 다녀야 합니다. 그렇다고 조금한 수첩은 싫어요.. 왜냐하면 많이 쓸수 없으니까요..ㅋ

 

 

 

두번째로 많이 쓰는 에버노트.. 사진도 바로 찍고.. 크게 신경쓸것 없이 위치도 알아서 저장해주고.. 그럴때 씁니다. 미국의 어떤 실업자가 에버노트 사용 매뉴얼을 자기 나름대로 만들어서 이베이에서 만들어 팔아서 대박났다지요.. 더군다나 에버노트측에서는 고소는 커녕 그직원을 정식으로 채용하고 매뉴얼에 대한 수익에 대해서는 계속 가져가게 했답니다. 항상 탐구하세요.. 자기 자신을 탐구해야지 자기 자신과 비교되는 남을 탐구해서는 안됩니다.

 

 

 

 

마지막으로 사용하는것이 우리나라 솜노트... 사용빈도는 좀 적지만 그래도 열어보는 빈도는 가장 많아요.. 왜냐하면 요즘 아이디랑 비번이 너무나 많아서 그거 일일이 외울수가 없어서.. 비번에 특수문자 요구하는 경우는 십중팔구 다음번에 비번찾기 해야 합니다. 그래서 보안상 비번을 다 넣지는 않고.. 요약으로 넣습니다. 물론 저만이 알수 있겠지요..

 

 

 

메모를 하는 두번째 이유가 잊혀졌네요. 위의 내용들을 기술하다 보니까요

 

두번째는 바로, 잊기 위해서입니다.

 

위와같이 메모를 함으로 인해서 내 머리속에서 저들의 내용은 잊어도 됩니다. 저들이 기억을 대신해줄테니까요. 아이러니 하나요 ? 메모를 하는 이유가 ?

 

하루하루 내 자신에게 세뇌를 하세요.. 그냥 평범한 하루라고.. 그렇게 인생의 80%가 지나갈거라고. 뭔가 특별해 지려고 하지 마세요.. 행복을 찾지도 마세요.. 지금 제가 이글을 쓰고 있는 이순간.. 그리고 혹시나 이 글을 읽는 여러분의 그 순간이 행복이라 생각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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