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삶에 대해서 무단히도 무디지 않나 싶습니다.

 

오늘 하루가 우리 각자에게 어떠한 의미가 있는지를 한번 생각해봐야 할것 같습니다.

 

저요.. 전 그냥 오늘 하루가 오늘 하루입니다. 어제가 지나서 오늘이고, 오늘이 지나면 내일입니다. 생각없이 사는것 같다구요? 그럼 이런 대답은 어떤가요 ?

 

오늘은 내 인생 최대의 하루이다.  과거는 필요없다.. 미래도 필요없다 단지 오늘만이 소중하다... 책에서 많이 본 대답들 아닌가 싶습니다.

 

좀더 인생에 대해서 솔직해 질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항상 강요 받습니다.  올바른 생각만 하고, 올바른 행동만 하고, 올바르게 살아나가라고.. 그럼 올바르다는것은 무엇을 의미하나요 ? 누가 정하지요 ? 나라에서 ? 법에서 ? 법은 최소한의 지켜야할 도리라고 그러잖아요..

 

나를 숨겨야 하기 때문에 내 생각과 관계없이,, 올바르게 사는척, 올바른 생각만 하는척, 그렇게 살고 있지는 않나 한번 생각해봅니다.

 

서두가 너무 길었네요...

 

 

나를 누군가가 생각하고 기억해준다는건 참 좋은 일입니다. 물론 세상에 적이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 세상을 이롭게 하리라 노력하는 종교인들마저 적이 있는 상황에서 예수님, 부처님 모두 적을 가지고 있을겁니다. 단지 그분들의 드넓은 아량으로 포용을 했을 뿐이지요..

 

한번도 보지 못한 사람이 있습니다. 세상에는 없구요.. 근데 살아 있었다면 가족이었을 겁니다. 눈치를 채셨나 모르겠네요.. 와이프의 언니네요.. 처형이라고 하나요. 결혼하기전 짧은 세상 운명을 달리하였다 합니다. 처가집에 가면 동생들과 언니가 찍은 사진이 방에 걸려있고, 그 모습을 보면서 생전일면불식이었던 처형을 생각해보곤 합니다.

 

생각하고 기억한다는것에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기억을 하기위해서는 생각을 해야 하고,, 생각을 하다보면 기억이 나는게 우리 삶입니다. 삶에 있는 모든것들을 포용할수 있는 연습을 해야 하겠습니다. 하긴 이말도 어패가 있네요.. 인생에 연습이 없지요. 그냥 바로바로가 현실이니까요. 더 좋은 미래를 꿈꾸지도 않고, 과거의 기억도 내세우지 않고, 지금의 그대로를 인정하는 그런 기억을 가지고 싶네요.

 

뭔가를 자꾸 제어한다는거.. 슬픈일을 생각하지 않으려는거. 나쁜일을 기억하지 않으려는거, 그렇게 말처럼 쉽지는 않습니다. 아니 불가능에 가깝다고 봐야지요... 난 깨끗이 잊었어 라고 한들 그게 잊혀진게 아니라... 정말 잊고싶은 강렬한 메시지입니다.

 

그냥 오는기억, 오는 생각 막지마세요. 그래야 조금이라도 머물다가 또  떠납니다. 자꾸 밀어내면 더 오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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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YDAY

 

지난편에도 언급을 했지만 30대에서 가장 뚜렷히 기억이 남는건 미국생활 아니 알라스카의 2년간의 생활이었던것 같다. 한국을 돌아오고 나서의 일들을 기억하려고 하니 딱히 쓸만한 거리가 없다.

 

사실 남들과 똑같이 취직해서 월급받으면서 지낸 시절밖에는 생각이 나지를 않는다. 중간중간 뭘 해보겠다고 나와서 프리랜서의 길을 걸었던 기억들, 하지만 잘 연결이 되지를 않아서 경력상의 손해를 본점등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인생에 어찌 자기가  만족할 만한 삶을 살수가 있겠는가 싶은 생각을 하면서 나름을 위로해본다.

 

앞으로 또 다시 10년을 생각하면 먼일 같지만 이번 30대보다 더 훌쩍 지나가지 않겠는가 싶다.

 

오늘에 충실하면서 그나마 한달도 채 안남은 30대를 정리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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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에서 돌아온후 여행에 대한 재미에 더욱 빠져들었다. 본연의 일을 망각할 정도로 여행에 흥하여 버는 족족 여행을 떠났다. 라스베가스를 5번을 다녀왔는데 그중 3번을 골프를 치러가고 2번은 카지노를 위해서 갔던 기억이 난다.

 

갈때마다 다른느낌이 나는건 나만의 생각일까 ? 여기에서 놀지 않으면 마치 바보다 되는듯한 느낌의 도시 .. 라스베가스.. 그 일정중에 가장 기억이 나면서도 잼나게 놀았던 카지노에서의 잠시를 공개한다.

 

 

 

넓은 땅덩어리 알라스카에 인구는 50만명이며, 그중 앵커리지의 인구가 30만명이다.. 그중 한인이 대략 7,000명이라고 한다. 그러면 한인의 비중이 그리 작은셈도 아니다. 그중에 친하게 된 동생한명이 프로골퍼여서 베가스 모든 일정은 항상 같이 동행을 하였다. 지금도 생각이 나는 고마운 동생임이 틀림없다. 타이거우즈가 자주와서 연습한다던 골프장이다. 한여름을 피해서 갔는데도 9홀즈음에 날씨의 압박이 대단하였다.

 

 

다시 알라스카로 돌아와서 이제 겨울을 맞이한다. 알라스카 겨울 참 두려웠다.. 얼마나 추울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런 고민도 잠시 진정 알라스카의 겨울로 빠져들게 되었다. 눈을 사랑하는 나로서는 참 더할수 없이 좋은 알라스카의 겨울이다.

 

 

어디를 보면서 보드를 타고 내려가도 끝이 없다는 느낌밖에 안든다. 가고 가도 끝이 없다는 느낌.. 그리고 주변에 아무도 없다는 고요함을 느낄수 있었던 알라스카 겨울에 감사를  표한다.

 

이제 수많은 여행을 뒤로하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갈 시점이 다가온다. 2006년이 다지나가고, 2007년 새해를 맞이한다. 그간 정들었던 사람들과 인사를 하고, 한국에서의 삶을 살기 위한 사전준비도 하고, 알라스카하고도 작별인사를 하러 빙하근처로 떠난다.

 

 

 

 

이제 돌아갑니다.. 한국으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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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에 록키산맥을 볼수 있다는 것은 운이요.. 여름에 록키산맥을 볼수 있다는 것은 천운이라고 했다.. 누가 그랬냐고.. 내 느낌이다.

 

온통 사방이 눈이다. 눈을 그렇게나 좋아해서, 알라스카를 갔건만, 이곳 록키산맥의 겨울 눈은 그 거대함이 또 남다르다. 뒤에 보이는 호텔의 이름은 이제 기억이 안나지만 겨울철 1박에 5,000불은 기본이라는 가이드의 설명을 들은 기억이 난다.

 

눈의 나라에서 눈의 고장을 보면서도 느끼는 아름다움 감정.. 굳이 과거라고 표현할 필요는 없는것 같다. 단지 내마음속이라는 표현이면 충분하다.

 

 

 

잠시나마 여행을 같이 했던 무리들. 오른편 두번째에 백발의 젊은 분이 내 은사님이시다. 대학시절 인연으로 하여 대학원졸업후 지금까지도 종종 연락을 드리며 지내는 건방지지만 내가 인정하는 몇 안되는 은사님중의 한분이다.

 

나머지 동행들은 이제 이름도 모르고, 하는일도 모른다. 기억나는건 어떤 부부가 오셨는데, 나한테 자기딸 소개시켜준다고 연락처 받아가고, 어떤 선생님 커플은 자기학교 선생님 소개시켜준다고 메일주소 받아갔다. 그리고는 연락이.....

 

 

있었다.... 하지만 이몸 알라스카에 묶여있는몸 초대를 하고 싶어도 그러하지 못하여 만남으로 까지 이루어 지지는 못하였다. 그러한 불운(?) 때문에 지금의 와이프를 만난건지도 모를일이다..

 

 

캐나다에 오면 밴쿠버에 오면 반드시 들려야 한단다.. 랍슨 스퀘어라고 교수님 내외분과 가족들. 주현이 주희랑 같이 .. 이 아이들이 그당시 고등학생 대학생이었는데 벌써 졸업을 해서 귀국해서 나름 사회에서 자리를 잡고 있단다.

 

가서 보고싶은데, 인천이면 얼마 멀지도 않은데, 교수님한테 인사도 드릴겸 찾아가면 되는데, 마음의 거리는 그렇게 큰가보다.

 

그래서 의례적으로 하는말이

 

' 언제한번 들릴께... 언제한잔해... 자주 연락드리겠습니다...' 이말 자주하면서도 참 싫은 말이다.. 그냥 말없이 행동하는 사람이 었으면 하는 내 자심의 바램이다. 책을 읽다보니 세계 각국의 저자들이 하는말이 참 다르다.. 교수, 심리학자, 정신과 전문의, 행복전문가 등의 글을 읽어봐도 마땅히 답을 주는게 없다는건 누구나가 알것이다. 단지 그러한 책의 제목을 통해서 우리가 뭔가 얻을수 있다는 또 하나의 욕심으로 책을 접해서 그런게 아닌가 싶다.

 

30대를 마무리하면서 지금 드는 생각은 앞으로 인생의 반을 살았는지, 다 살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지금까지의 과다한 생각들이 과연 내 인생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었는가를 생각해보면 결론은 미미한 수준이다라는것이다. 너무다 과다한 생각이 가끔은 육체적으로 두통이라는 짐도 주어줄뿐 실질적으로 그렇게 과다하게 생각했던 걱정들이 아직까지 일어나지는 않았다.

 

단지, 그러한 면을 알면서도 또 과다한 생각을 하고 있다는 점이 아이러니 하면서도 내가 인간이기에 이럴수 있다는 점을 가간과하지 않으려고 한다.

 

생각나면 생각하면 된다.. 생각도 나의 일부인데 어찌 떼어버릴려고만 하는가. 나의 몸과 나의 정신은 하나지 결코 따로 분리할수가 없다는 너무나 당연한 논리를 가지고도 우리는 많은 생각에 접어 들기만 한다.

 

...... 아마 30대 마지막 한달의 글에서 미국생활 2년의 글이 가장 많을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제 라스베가스로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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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상권 침해라고 하면 어쩔수 없지만 어쨋든 날 도와주셨던, 무진장 도와주셨던 내외분이다. 형님은 나랑 띠동갑이시고 형수님은 나이가 하여간 동안이시다.

 

큰집에 두분만 사셔서 나한테 1층의 방하나를 선사하셨다. 그래도 나름의 양심은 있는지라 최소한의 생활비는 내고 살았다. 그리고 가끔 시간 되면 스시집 가서, 새우도 튀겨주고, 캐셔도 봐주고, 어쩔때는 스시바에서 롤도 말았다. 말그대로 전천후였다고나 할까..

 

물론 시간당 일당도 두둑히 챙겨주셔서 그걸로 생활비도 하고, 차 기름도 넣고.. 참..여기서 차를 소개해줘야 하겠네.. 참으로 타고 싶었던 차를 미국에서 그것도 눈의 주 알라스카에서 타게 되었네요... 이름하여... 비틀... 뉴비틀

 

 

 

 

참 애지중지 잘도 탓던 차다.. 차 살때 딜러도 잘 만나서 얼마 타지 않은차 좋은 가격에 샀고.. 2년동안 아무런 문제없이 잘 굴러가던 차다..

 

그 큰 알라스카 땅 덩어리 거의 두번은 돌았었다.. 겨울에도 스노우타이어 없이 잘 달렸고, 여름에는 더할나위 없이 좋은 성능을 발휘해준 고마운 발이었다.

 

그 여름 대학교 은사이신 박재호 교수님 가족분이 오셨을때도 저 차를 가지고 멀리 여행도 했던 추억이 남는차다.

 

아마 그당시 5명이 저차에 타지 않았나 싶다.. 지금의 미니보다 공간구성은 훨씬 잘되어있다. 사실 이번에도 비틀을 살까 싶었지만, 집사람의 반대로 미니를 선택했고, 역시 선택에 만족을 하면서 지내고 있다.

 

 

 

방학이 지나고 가을학기가 시작되고, 차도 사고, 집도 안정되어서 이제 나름 알라스카인이 되어가고 있는듯 하면서 본토를 가고싶은 충동을 느끼게 되었다. 그당시 막역한 사이인 석이형이 시애틀에서 사업을 하고 있기에 시간을 맞춰서 한번 보러 가기로 했다.

 

 

시애틀에 있는 스타벅스 1호점이다. 로고도 지금하고 많이 다르지 않는가.. 옆에 있는 길거리 악사가 깝치고 있다... 깝친기념으로 적선좀 하였다... 좋단다..

 

커피는 따로 사먹지는 않았고.. 석이형 아는 사람들 만나러 근처 폭포호텔로 향했다.. 참 거대하더라.. 폭포 바로옆에 호텔을.. 발코니 문을 열면 바로 폭포다... 발코니까지 물이 튄다..

 

정말 밤새 술을 먹고 싶었지만..일정상 밤늦게 다시 시애틀로 향한다..

 

아직도 좀 아쉬웠던 술자리였지 싶다.. 나중에 그 사람들 다시 만나러 아침비행기 타고 시애틀을 다시 온적이 있다.

 

 

 

 시애틀에서의 일정을 마치고 지난번에 교수님이 오셨던관계로 이번에는 내가 교수님이 살고 계신 밴쿠버로 넘어갔다. 

 

시애틀에서 밴쿠버는 바로 옆이다.

 

그러다보니 제트기가 아니고 프로펠러 비행기가 뜨는것 같다.

 

우리나라도 제주도 저가항공 초창기에 프로펠러 항공기가 떠서 그옆에 앉으면 정말 시끄러웠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50여분을 날았다.. 밴쿠버 공항에 도착하였다..

 

그리고는 교수님 댁에 여정을 풀고 록키산맥으로 갈 준비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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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스카에 도착한 시간은 아침 10시정도 였다. 그런데 뭔가 이제 해가 뜨려고 한다.. 마중 나오기로 한 목사님이 기다리고 계신다.

 

" 형제님 반갑습니다. " 약간은 어색한 말투였지만, 어쩌겠냐 그래도 나를 도와주시겠다고 나오신분인데.  

 

알라스카 앵커리지의 그 첫느낌이란... 아마.. 무슨말로 표현을 해도 이해가 안될듯 싶다.. 백문이 불여일견.. 아는 한자가 없어서 그냥 한글로 쓴다

 

처음 도착했을때 왜 우울증이 오는가를 이해할수 있겠더라고.. 아침 10시넘어서 해가 뜨고, 다시 오후 3시면 해가 져서 밤이 온다.. 오로지 할수 있는거라고.. 일찍히 술을 한잔 시작하는거.. 그뿐이다.

 

내가 처음 묵었던 곳은 교회 전도사님 댁이었다. 가보니 전도사 한분, 젊은 목사한분, 그리고 필리핀 목사 한분이 같이 살고 있었고, 2층에는 버지니아에서 오신 아저씨 한분이 살고 계셨다. 또 지하 한켠에는 보호수용을 받고있는 한인 2세가 있었다. 사실 이친구 좀 무서웠다. 밤에 와이프를 때리기도 한다. 그래서 경찰도 몇번 출동했다. 결국은 집을 나가버렸다.

 

그 집에서 술을 먹는 오직 유일한 사람들은 2층 아저씨와 나였다. 당연히 가까워질수밖에 없었다. 온지 1주일 정도 지날무렵 아저씨가 날 부른다..

 

"미스터 리" 아... 이 아저씨 정말 미국에 오래 사셨나보다.. 근데 영어는 잘 못하신다고 한다. 한때 버지니아에서 공장도 했고, 요트를 두척이나 끌었으며, 벤츠를 두대나 가지고 있으셨단다.. 근데 왜 여기에 있냐고 ? 여기 앵커리지의 많은 사람들이 사연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다. 한때 본토에서 날리다가 나름의 사정을 가지고 들어와서 재기를 하는 사람도 있고, 사고치고 숨어 있는 사람도 있고, 말 그대로 돈 많이 벌어서 여생을 알라스카에서 보내고자 하는 사람도 있다.

 

암튼 그날의 술은 버드와이저 24캔이었다. 눈이 엄청나게 내리는 가운데 아저씨가 한캔만 하자고 해서 둘이 앉았는데, 정말 앉은자리에서 24캔을 다 비워버렸다. 안주는 냉동 미루가이.. 아저씨가 안주가 모자라니 고기를 굽는다고 하여 고기를 굽는동안 나는 술을 사러가고 싶었지만 이놈의 길을 알아야지.. 아저씨랑 같이 리쿼 스토어로 가서 내가 술을 샀다. 그리고는 아저씨하고 같이 집을 알아보기로 했다. 아무래도 목자 집안에서 자꾸 술을 마시는게 꺼름칙해서 말이다.

 

 

그렇게 둘이서 알아보던중 Low Income을 대상으로 집을 싸게 준다기에 아저씨는 영주권자라서 해당사항이 될거같아서. 관할구청가서 상황설명하고 했더니 바로 집을 구할수 있게 도와주더라고.

 

이게 참 차이인듯 같다.. 저소득자를 위한 집이라고 후지지가 않아.. 엄청 좋단 말이다. 방이 두개고, 발코니가 있고, 화장실이 두개고, 부엌도 있고, 전망도 좋고. 저게 내 방이었다. 책상은 아저씨가 일하는 목공현장에서 만든거고, 좀 지나서 나도 아저씨의 목공현장에서 알바를 하기로 했다. 일명 노가다... 침대 매트리스는 누군가가 사용하던거 깨끗이 빨아서 사용을 했고, 그러다보니 그다지 돈이 들어갈 일은 없었다.

 

 

 

 

 

이사한 집 발코니에서 찍은 동영상이다. 4월4일인데 아직 한겨울의 퐁경을 보이고 있다. 누군가 그랬다. 과거에 사무쳐 살지 말라고. 과거는 쾌쾌 묵은거라고. 근데 과거를 생각하면서 살짝이나마 마음의 전화을 느낀다면 그거 또한 마음의 리프레쉬가 되는거 아닌가 싶다. 꼭 누군가의 말이 맞는건 아닌듯 싶다. 뭐든지 과하면 안좋은 거지만, 적당히 자기만족을 할줄 알다면 그다지 자기계발이 필요하지는 않을듯 하다.

 

 

참... 날은 벌써 4월까지 왔는데, 내 학교 이야기는 하나도 없었네..옆사진이 학교도서관이다. 땅이 넓어서인지. 정말 참 잘 지어놓았다. 바닥에 쓰레기 하나 없이 카페트로 깔아져있고, 책상과 책상의 거리도 정말 넓고.. 암튼 우리내 독서실 칸막이는 찾아볼래야 찾아볼수가 없었다.

 

그래도 나름 유학비자 였던지라 공부를 꽤 열심히 했다. 장학금도 받았고, 시험보면 한국인 특유의 암기실력으로 거의 A를 받았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여름방학이 시작되었다. 5월부터가 여름방학으로 9월까지 거의 4개월을 쉰다..

 

정말 안나가려고 했는데, 연어들고 사업한번 해보려고 연어샘플 들고 한국으로 잠시 나간다. 유나이티드 에어라인을 타고 1주일 여정으로 간다. 여기서는 자세한 내용은 생략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 왜냐 결과가 그다지 좋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나름 계획서도 만들고 샘플도 들고 나갔지만 아직은 시기상조라는 답변만을 가지고 다시 돌아온다.

 

근데 아직도 무슨 계획만 하면 다들 제일 쉬운말이 시기상조 아니면 이제 너무 많다는 말뿐이다. 그럼 도대체 누가 어떤 시기에 들어가야 하는건가.. 그들도 알지 못한다. 컨설팅을 하는 교수님들이 직접 사업에 뛰어드는 경우 보았나 ? 아마도 절대로 하지 않을것이다. 왜냐하면 그냥 그 위치에서 말로만 명맥을 유지하면 되는 위치이기 때문이다.

 

알라스카 생활도 어느덧 익숙해질즘 참으로 좋은 인연을 만나게 되었다. 스시집을 운영하시는 사장님을 알게 되었는데 모든일을 마치고 귀국하는동안 참으로 많은 도움을 받고 왔다..

 

그 이야기를 이제 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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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생각해볼것이다. 내 시기에 다다른 사람이라면 ..

 

39세의 12월.. 돌이켜보면 29세의 12월이 생각이 난다. 그때도 이러한 감수성에 젖어 있었던것 같네. 대학원을 졸업하고 첫직장의 합격통보를 받았던 시기 정식으로 된 첫직장에서 번돈으로 맞이했던 첫 크리스마스..

 

그로부터 10년이 지났다.. 뭐가 변했을까.. 나에게.. 정리해본다.

 

나이계산이 안된다.. 30살이면 몇년도였는지를.. 지금이 2013년이고 내나이 39이니까. 9를 빼면 2004년이 되겠네.

 

2004년 1월즘에 어렵게 들어갔던 직장을.. 3차까지 면접을 보고.. 난생 처음으로 집단토론 등의 다양한 면접을 거쳐 입사를 했다.. 지금의 GS 리테일.. 1년남짓즈음에 개인적인 이유로 퇴사를 하게 된다. 그게 뭐냐면 블로그 헤쳐보면 다 나오는 알라스카행이다. 아직도 난 의아하다. 내가 왜 거길 선택했을까 ? 준비된 영어성적이 안되서 그랬을까 ? 아니면 정말 난 연어가 좋았던 것일까 ? 아님 30대 초반의 무모한 도전이라고해야 하나. 그러나 지금 시점에서, 아니 49살의 12월에도 마찬가지로 생각할것이다. 내 인생 최고의 경험은 알라스카의 2년이었다고...

 

집의 도움없이 2004년 1년을 버티었다.. 버티었다기보다는 준비를 했다는 말이 맞겠다. 토플을 보고, 회화학원을 다니고 지금도 유명한 삼육 외국어학원.. 끊기 때문인지 뭔지는 모르겠지만 4단계에서 그만두었다. 그리고는 학비를 벌어야 했기에 이일 저일 머리쓰는 일을 많이 했다. 내가 회사 차리면 꼭 직장에서의 경력만 인정해 주는 그런 실수는 하지 않을런다. 회사일이라는것은 매뉴얼이다. 아무리 바보를 갖다 놓아도, 할수 있다는 내 신념이 있기 때문이다.

 

2004년 7월에 I-20가 도착했다. 일명 학교입학허가서 그걸 가지고 비자준비도 해야하고, 이제 정말로 가는구나 싶은 생각이 든다. 모든것은 나혼자 준비했다. 알라스카에 접촉을 한것도 나 혼자, 비자를 신청하고 모든 과정을 진행한것도 나혼자, 그리고 짐도 나 혼자 쌌다.

 

2004년 12월1일 비자 인터뷰가 있는날이었다. 배운건 있어서 여권을 대사관에서 가져가면 합격, 그렇지 않으면 불합격이라고 하였다. 심사관 누구를 만나는가도 관건이라고 하였다. 근데 신경 쓰지 않았다. 심사를 약 3분간에 걸쳐서 했고, 여권을 가져가 버리더라고. 아 이제 합격인가 보다.. "1주일안에 도착할겁니다" 라는 말과 함께. 나는 광화문을 걸었다. 잘하는 짓이겠지.. 하긴 이제 다 결정된건데.. 집에 전화를 걸었다.  엄마는 반기는건지 내내 뭔가 아쉬운건지 모르겠고, 형은 나에게 편도 비행기표를 끊어준다고 하엿다.

 

2004년 12월 17일 저녁 6시30분 대한항공을 끊었다. 그 당시만 해도 인천발 뉴욕을 갈때 앵커리지를 경유해서 갔다. 기름넣고 간다고 하더라고...  이제 남은 시간은 2주정도.. 친구들과도 많이 놀았고, 나름 송년회 겸 이별.. 아니 환송이라고 하나.. 하여간 별의별 이름을 붙여서 술을 마셨다.. 그 당시 친한친구 한명이 강남역에 바를 하나 내었을때라 장소는 더없이 좋았다.

 

그 바 사진도 있었는데 그건 어디로 사라졌나 보다.. 아니 어딘가에 또 잠자고 있을 사진이다. 옆 사진은 그날 송별회를 하는날 2차를 가서 놀았던 사진이다. 내 어깨동무한 친구가 바 사장이고. 그옆이 아직도 변함없는 우정을 보이고 있는 친구, 그리고 그 옆에 학수는 그날 이후로 본적이 없다. 안친해서냐고 ? 볼기회가 없어서라고 말하고 싶다.

 

이날 오랜시간 술을 마신걸로 기억이 된다. 그리고는 떠난다.

 

 

 

 

 

 

 

 

 

 

아직 남아있는 KE 마일리지다. 유효기간 적용적에 쌓여진거라 평생 안없어진다고 한다. 근데 어쩌나 난 이미 아시아나만 타는걸, 카드적립도 아시아나만 한다는걸..

 

그렇게 한국을 떠난다.. 30살 처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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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를 둘이 여행가는건 아마 처음이지 싶다. 그간 매번 형네 가족과 함께 다니다 보니 결혼후 처음이 아닌가 싶다.

 

몇번 안되는 여행 그래도 매번 외국을 나가다 보니 국내는 말만 많았지. 사실 처음의 여행

 

간략한 기록을 남겨보려 한다. 물론 언제나 그랬듯이 사진은 많이 없다.

 

아침 일찍 (09:00) ㅋ 나와서 출발해서 겨울 옷좀 보려고 여주 아울렛 들렸더니 웬걸 10:00 오픈이라 약간 기다려야 함. 오랜만에 주차장이 텅빈모습을 보고 어디에 주차를 해야 할지 고민했음..

 

항상 가면 가는곳이 정해져 있어서 후다닥 가봤더니 오늘은 별거 없어서 스타벅스에서 크리스마스 음료랑 푸드 먹고 쿠폰받고 평창 시장으로 고고씽..

 

여주에서 평창시장을 가려는데 아무래도 초행길이다보니 네비를 틀었더니. 고속도로 조금 안내하다가 국도로 안내를 하더라고.. 근데 국도가 고지가 높아서 기름 많이 먹은거 같음..

 

평창시장 가서는 사진 몇컷 찍었는데 일요일이라 그런지 휑한 모습이었는데 시장 안쪽으로 들어가보니 몇군데 문을 열었더라구요..

 

 

 

할머니 사진 찍는거 보시더니 움찍 하시더라구요. 한두번 찍힌거 아니실텐데.. 그래도 일요일 시장에서 제일 분주한 집이더라구요.  

 

 

간판 한번 올려줍니다. 진짜 가격이 압권입니다.. 가보신분들은 알겠지만.. 안가보신분들 정말 깜놀하실 가격입니다..

 

 

 

저게 손맛인가요 ?  ㅋㅋㅋㅋ

 

 

 

제일먼저 맛본게 메밀 동동주.. 근데 큰 기대를 해서 그런지 일반 막걸리랑 맛이 똑같더라구요.. 알고보니 메밀 함량 3.5% ㅋㅋㅋ

 

 

요게 메밀전병.. 가장 맛있던것인데.. 신김치, 청양 등등 다져서 넣었는데 그맛이.. ^^

 

 

요것은 배부름에도 불구 하고 시켰던 묵사발..배부름에도 한그릇 다 먹음...

 

마찬가지 묵사발...

 

전체적으로 배터지게 먹었음에도 불구하고.. 가격이 10,000원 ....ㅠㅠ .. 이제 메뉴가격 계산 되시겠죠 ?

 

여기서 나와서.. 다시 이효석 생가 본다고 갔는데.. 진짜 볼게 없더라구요.. 아마도 메밀꽃이 없는 시기에 가서 그랬겠지요 ? 그래도 길따라 산책좀 하다가.. 숙소로 갑니다..

 

숙소는 알펜시아 홀리데이인 스위트로 햇는데 조식포함 할인 등등 ihg 멤버쉽해서.. 10만원에 해결했네요.. 객실이 처음에 들어갔을때 방충망이 떨어져서 프론트 전화하니 친절히 방을 바꿔주더라구요.. 은근 업그레이드 기대했는데.. 그냥 바로 윗방으로 안내해주더군요.. 뭐.. 둘이 자는데 업그레이드 까지 욕심낼 필요는 없다 싶구요..

 

가는날이 바로 스키장 가오픈 하는날이라서 몇명이 슬로프를 내려오는데 그다지 타고 싶지는 않고, 그 예전 알라스카에서 설원보드 타던게 생각이 나더라구요..

 

저녁시간이 다 되어서 그 유명하다던 대관령 한우타운으로 갑니다.. 호텔에서 한 7키로 정도 되는데 멀지는 않습니다만.. 가봤더니 가격이 우리집 옆 사송동 한우집보다 비싸더군요.. 그리고 맨 부채살만 늘어놓고.. 그러다보니 아무리 일요일이라지만 사람도 없고...

 

하여간 농협인가에서 한다던데... 그리고 소값도 많이 떨어졌다던데.. 좀 합리적인 가격이었으면 하는 바램을 가지고.. 다른 맛집으로 이동합니다.. 어디선가 본 오삼불고기를 파는 고향이야기로 가서. 정말 맛나게...^^ 먹고 호텔로 돌아왔습니다.

 

호텔에서는 미리 준비한 칭타오 큰병 3개는 있는데 안주가 없어서 특산물 매장에서 오징어 두마리를 사서 전기 오븐에 구워서 맥주를 먹습니다... 아 좋네요... 이게 힐링이지... 뭐 다른게 없네요...

 

먹다가 잠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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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일어나자 마자.. 배가 무진장 고파서 조식쿠폰을 들고 몽블랑 레스토랑으로 향합니다.. 오... 생각외로 음식이 많네요... 제가 좋아하는 만다린도 있고.. (한 3그릇 먹음) ... 우리는 ihg 멤버라서 체크아웃도 2시간 연장...그래서 조식을 한 두시간은 먹은거 같아요.. 배터질때까지..ㅋㅋ

 

그리고 객실 들어와서... 한시간 더 잡니다..ㅋ 그리고 12시가 다 되어서 출발을 하는데.. 정말 강풍이 부네요... 차가 밟아도 안나가는게 이런 느낌이구나...

 

하면서 집으로 향하고.. 또 다음을 기약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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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모를일입니다.

 

어느것 하나 살때도 단돈 얼마라도 아낄려고 이리저리 비교하고 사는데 어찌 스타벅스 선불 상품권을 아무 꺼리낌없이 살수 있는가 곰곰히 생각을 해봅니다.

 

사실 이런 이야기는 참 오랫동안 나오면서도 쉽게 들어가지가 않는 이야기 입니다. 편의점에서 1,000원 짜리 삼각김밥을 먹고 스타벅스에서 5,000원짜리 라떼를 마신다는 등의 이야기.. 그 이유.. 구태여 제가 덧붙일 필요는 없을듯 합니다.

 

단지 내가 그러고 있다는 점에 대해서 좀 써보려고 합니다. 사실 저는 먹는것에는 그다지 아끼는 편이 아닙니다. 점심도 좋은거 먹고 커피도 좋은거 (?) 먹거든요.. 좋은거란것이 아마도 브랜드 파워를 말하겠죠 ? 커피원두를 평가할정도는 아니니까요 .

 

 

 

모든것에 대해서 브랜드 파워를 꽤 따지는 편이라서 그리고 편협한 브랜드 이기주의를 가지고 있는 한 사람입니다. 핸드폰은 뭐,,컴퓨터는 뭐,, 심지어 과자,, 음료수는 뭐,, 이렇게까지 정해 놓고 그걸 많이 벗어나지 않고 살려고 하는 사람입니다. 참 피곤하겠지요.

 

그러다보니 커피는 거의 이 스타벅스를 이용합니다. 물론 내돈주고 갈때는 스타벅스, 다른 사람이 낼때는 다른 사람 맘대로.. 그런 식이지요.. 방문횟수가 늘어나면서 이들의 (스타벅스) 행태에 점점 놀아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쓰지도 않을 다이어리를 위해 크리스마스 음료를 마시고, 매번 카드 내는게 귀찮아서 선불카드를 만들고.. (여기서 역설이지요.. 선불카드도 카드인데.. 더구나 난 체크카드인데) .. 도대체 왜 이렇게 경제관념이 과한 저에게 스타벅스는 선불권을 팔수 있었을까요 ?

 

 

 

 

제가 된장남이라서 그럴까요 ? 물론 100% 부정할수는 없겠네요. 이디야 커피숍 가는것보다는 있어보일테니까요 .. 하지만 단지 그것만이 아니라는거 스타벅스에서 3시간 이상 있어보신분들은 이해할겁니다.

 

스타벅스 거기는 어떠한 눈치를 주지도 않습니다. 손님이 주문을 하던, 책상을 두개를 쓰건, 뭐를 가지고 와서 먹던, 별 신경 안씁니다. 최소한 저한테는 그러네요. 그렇다고 다른 커피숍이 눈치를 주냐구요 ? 그건 아닙니다.. 근데 뭐랄까 나도 모르게 내가 눈치를 보게 되더라구요. 사실 혜택은 다른 커피숍이 더 많아요. 어디는 쿠폰제도 하고, 어디는 소셜에서 반값에 커피 팔고, 그거 이용하면 더 많이 커피를 마실수 있을텐데 그걸 버리고 여기를 오게 되네요.

 

그래서 회사는 저같은 사람을 연구하라고 수 많은 연봉을 주어가면서 마케팅 전문가를 영입하나봅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그리고 흔히 접하는 마케팅이라는거 사실 단순한거 같지만 참 복잡묘미스러운 것입니다. 마트나 백화점에는 동선만 연구하는 박사들이 수두룩 하다고 하지요 ? 진열위치를 결정하는 박사들도 있고.. 저같이 까다로운 고객한테도 선불카드를 팔수 있는 전략을 구사하는 박사도 있고.. 참 매력적인 일들입니다.

 

평생이라기보다 40에 가까운 나이동안 이름만 거창한 전략기획이라는 업무를 계속 해온 저로서 살짝 업무에 대한 아쉬움도 남습니다. 그러게 다 남의게 좋아보이는겁니다. 남의 하는일이 멋있어 보이고, 그래서 요즘  책 많이 읽으면서 단순하게 살려고 합니다. 지난 글에도 말했지만 단순하게 살기 위해서는 저처럼 복잡스럽게 살고 복잡하게 생각하는게 뭔지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그 반대로 단순하게 살수 있습니다.  

 

단순하게 사는거랑 생각없이 사는것은 다릅니다. 단순하다는것은 선택의 의미이고 생각없이 사는것은 ... 글쎄요 생각을 안해봤네요.. 항상 생각이 많아서..

 

아직까지 저한테 최소한 저한테 스타벅스의 경쟁자는 없는것 같습니다. 커피값을 올려도 이 헛똑똑한 저는 계속 여기를 오지 않을까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커피값을 벌어야겠지요.

 

갑니다.. 돈벌러..

 

 

 

언제 모아서 주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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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그런 경험을 해보셨을겁니다. 문득 뭔가 생각났을때..

 

이게 아이디어가 될수도 있고, 잊고 있던 비밀번호라던지, 해야할일인데 잊었던것등.. 문득  문득 새록새록 기억나는것들이 있을겁니다.

 

혹은 위에서 말한것처럼 그냥 내 머리속에 뇌리처럼 스치고 가는데 놓치면 잊혀질것 같을때.. 그럴때 메모를 하나요 ?

 

메모의 이유는 크게 두가지가 되지 않을까 합니다..

 

첫째는, 잊지 않기 위해서..

 

위의 언급대로 생각, 일정등 머리속에서 정리안되는것들에 대한 모든것을 잊지 않기 위해서 메모합니다. 저는 메모를 위해서 3가지를 사용합니다.

 

우선 가장 많이 쓰는게 종이메모.. 그냥 아무렇게나 끄적 거려도 나만이 알아볼수 있기 때문에 그리고 메모당시의 상황도 생각이 나기 때문에 가장 유용하게 씁니다. 단지 부피가 커서 항상 가방을 들고 다녀야 합니다. 그렇다고 조금한 수첩은 싫어요.. 왜냐하면 많이 쓸수 없으니까요..ㅋ

 

 

 

두번째로 많이 쓰는 에버노트.. 사진도 바로 찍고.. 크게 신경쓸것 없이 위치도 알아서 저장해주고.. 그럴때 씁니다. 미국의 어떤 실업자가 에버노트 사용 매뉴얼을 자기 나름대로 만들어서 이베이에서 만들어 팔아서 대박났다지요.. 더군다나 에버노트측에서는 고소는 커녕 그직원을 정식으로 채용하고 매뉴얼에 대한 수익에 대해서는 계속 가져가게 했답니다. 항상 탐구하세요.. 자기 자신을 탐구해야지 자기 자신과 비교되는 남을 탐구해서는 안됩니다.

 

 

 

 

마지막으로 사용하는것이 우리나라 솜노트... 사용빈도는 좀 적지만 그래도 열어보는 빈도는 가장 많아요.. 왜냐하면 요즘 아이디랑 비번이 너무나 많아서 그거 일일이 외울수가 없어서.. 비번에 특수문자 요구하는 경우는 십중팔구 다음번에 비번찾기 해야 합니다. 그래서 보안상 비번을 다 넣지는 않고.. 요약으로 넣습니다. 물론 저만이 알수 있겠지요..

 

 

 

메모를 하는 두번째 이유가 잊혀졌네요. 위의 내용들을 기술하다 보니까요

 

두번째는 바로, 잊기 위해서입니다.

 

위와같이 메모를 함으로 인해서 내 머리속에서 저들의 내용은 잊어도 됩니다. 저들이 기억을 대신해줄테니까요. 아이러니 하나요 ? 메모를 하는 이유가 ?

 

하루하루 내 자신에게 세뇌를 하세요.. 그냥 평범한 하루라고.. 그렇게 인생의 80%가 지나갈거라고. 뭔가 특별해 지려고 하지 마세요.. 행복을 찾지도 마세요.. 지금 제가 이글을 쓰고 있는 이순간.. 그리고 혹시나 이 글을 읽는 여러분의 그 순간이 행복이라 생각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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